★해병대 사령관 글/4대사령관 김성은

국방의 멍에 - 17. 휴전후 해병교육단(海兵敎育團) (6) 대륙횡단여행(大陸橫斷旅行)

머린코341(mc341) 2014. 8. 27. 21:38

국방의 멍에 - 17. 휴전후 해병교육단(海兵敎育團)

 

(6) 대륙횡단여행(大陸橫斷旅行)

 

  그 다음 경유지는 시카고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카고로 갈 때는 미군 수송기를 타고 가지 않고 풀만카(Pullmancar)를 타고 대륙횡단 여행을 했다.

 

  침대가 딸려 있는 특급열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나는 여러 가지 인상깊은 장면을 많이 목격했다. 그러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풀만카의 내부시설에 관한 이야기부터 먼저 해두어야 할 것 같다.

 

  크기로 따지자면 약 한 평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독실 공간 속에서 나는, 내가 앉은 의자 바로 밑에 수세식 변기가 있는 것을 알게 되고, 또 등 뒷쪽 벽면에 붙은 있는 작은 손잡이를 당기니 수도꼭지가 달려있는 세면기가 벽 앞으로 튀어 나오고 의자 맞은편 쪽 벽에 붙어 있는 손잡이를 당기니 눈에 띠지 않던 침대가 마치 요술을 부리듯이 벽 속으로부터 밀려 나오도록 시설되어 있는 것을 이용해 보고서는 손바닥 만한 작은 공간 속에 어쩌면 이토록 요긴한 시설물을 저토록 과학적인 조립방식으로 설치해 놓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열차를 타고 가능 동안 가장 불편스러웠던 일은 식당에 가서 식사를 주문할 때 의사소통이 잘 안된 일이었다. 설흔 두 가지나 되는 많은 메뉴 가운데 우리가 먹어본 것은 고작 돈까스나 비후스테이크 뿐이었다.

 

  그래서 다들 비후스테이크를 주문했으나 네 사람 모두가 서양사람 식당에서 요리를 시켜 먹은 경험도 있었고, 또 요리에 관한 지식이 생소한 사람들이었는지라 비후스데이크를 주문받은 식당 종업원이 무엇이라고 씨부려대며 물어보는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여간 딱한 처지가 아니 었다.

 

  그래서 주문을 했던 안명남 중위가 그 직원이 묻는 세 가지 낱말 가운데 하나를 택하여 그것이 좋겠다고 하여 일단은 난처한 처지를 모면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잠시 후에 날라온 쇠고기를 나이프로 썰어보고서는 의사소통이 잘못된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큼직한 접시에 담긴 그 넙적하고 두둑한 쇠고기 덩어리가 지나치게 살짝 구워져 나이프로 썰어보니 살점 속에서 시뻘건 피가 나와서 비위가 상해 먹기가 거북한데다 고래 심줄같이 어떻게나 질긴지 다들 겨우 삼분의 일 정도만 먹고 포크들을 내려 놓고 말았는데 그때서야 나는 비후스테이크를 주문받은 식당차 종업원이 무엇이라고 되풀이해서 묻고 있었던 말이 곧 어떤 식으로 고기를 구워 주기를 원하는지를 알아보라고 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종업원이 비후스데이크를 가져 왔을 때 야채가 전혀 없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설익은 고깃덩어리 뿐이기에 베지터블을 왜 주지 않느냐고 했더니 "오 베지터블" 하더니만 광우리 같은 큰 그릇에 양배추를 수북이 담아 가지고 왔었다.

 

  또한 식사 후 디저트를 주문할 때도 말문이 막혀 애를 먹었다 그때는 바닐라 이이스크림을 먹고 싶었으나 '바닐라'라는 말을 알지 못해 결국 입가에 쉽게 맴도는 시커먼 '초콜릿아이스크림'을 시켜 먹었다.

 

  시카고로 가는 동안 가장 인상깊은 풍경으로 등장이 되었던 것은 아리조나의 사막을 지날 때 그 사막지대에 자라고 있는 선인장과 철로변에 뛰놀고 있는 야생노루들의 무리와 서부영화에 단골메뉴처럼 등장이 되는 머리를 길게 땋고 전통의상을 걸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모습들이었다.

 

  대륙횡단 여행을 하는데는 48시간이 걸렸다. 그 긴 시간의 여로를 때로는 진종일 울창한 숲을 지나기도 했고, 아리조나의 사막을 가로지르기도 했던 특급열차는 시카고에 진입하기 전 광활하기 이를데 없는 옥수수밭 사이를 통과했는데, 그 곡창지대를 바라보면서 나는 과연 미국은 무진장한 식량의 보고를 지니고 있는 부자 나라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시카고시는 거대한 미시간호의 호반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인데 시카고에서 이틀간을 머무는 동안 김석범 사령관과 나는 코스트가드(해안경비대) 기지에서 과거 해안경비대(海岸警備隊) 시절에 진해 해군 특설기지(통제부의 전신)의 고문관을 역임한 적이 있는 기지사령관 백가원 대령과 해후의 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날 맥가원 대령은 우리 일행을 기지 내의 장교클럽으로 안내하여 융숭한 대접을 해 주었다.

 

  시카고에서 체류하는 동안 나는 영어로 스톡야드(Stock Yard)라고 표현되는 대규모의 도살장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하루에 수천 두의 소를 잡아 각처로 공급하고 있는 도살장에 가본 즉 도살장 안까지 인입(引入)되어 있는 철로를 이용하여 한 머리에서는 무수한 소들이 무개화차에 실려 오고 있었고, 다른 한 머리에서는 포장이 된 우육을 잔뜩 잔뜩 실은 집체와도 같이 큰 대형 콘테이너가 뻔질나게 외부로 떠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도살장에는 카우보이 복장을 한 덩치도 크고 생김새도 험상궂은 무시무시한 인부들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을 보니 서부활극에서 악역을 맡고 있는 배역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카고에서 일박을 한 우리 일행은 그 다음날 만 1일간의 기차여행끝에 미 해병대 사령부가 있는 여행의 목적지인 워싱턴에 도착했다.

 

  그리하여 우리 일행을 마중해 준 안내장교의 안내를 받아 사령관과 나를 초청해 준 미 해병대사령관 쉐퍼드 대장을 사령관 공관으로 예방했다. 쉐퍼드 대장은 인천상륙작전 때 미 태평양함대 해병대의 사령관을 역임한 장군이었다.

 

  사령관과 인사를 나눈 다음 김석범 사령관과 나는 쉐퍼드 대장의 안내로 미 해병대 막사(幕舍)로 가서 미 해병대의 의장대를 사열했다. 그리고 미 해병대 사령부를 방문하여 궁금하게 여기고 있던 우리 해병대의 병력씨링 문제에 관해 문의도 하고 진지한 의견교환도 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