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멍에 - 17. 휴전후 해병교육단(海兵敎育團)
(8) 스네디커將軍의 持論
한편 미 해병대사령부에서 병력씨링 문제를 매듭지은 사령관과 나는 관티코의 미 해병교육단을 방문한 다음 미 해병대의 신병훈련소가 있는 동해안의 캠프 레쥰과 LA의 캠프 펜들턴에 있는 미 해병대기지와 군사시설 등을 두루 시찰했는데, 특히 관티코의 미 해병교육단을 방문했을때, 교육기지사령관 스네디커(Snediker) 중장으로부터 해병대의 병력씨링 문제와 관련된 매우 소중한 이야기를 들었다.
스네디커 장군은 인천상륙작전 때 미 해병제1사단의 참모장을 역임한 지휘관이었다. 그는 우리 해병대에서 32,000명의 병력씨링을 요구했으나 결국 미 해병대사령부에서 절충선으로 제시한 27,500명 선으로 결정을 보게 되었다고 하자 다음과 같은 말로써 나의 정신자세를 가다듬게 했다.
즉 해병대는 소수 정예부대가 되어야지 인원수가 많으면 육군과 같은 존재가 되기 쉽다는 것이었고, 적은 병력으로 적은 예산을 쓰면서 부여된 임무를 매우 만족스럽게 수행하는 것이 해병대의 특성이라고 말하면서 씨링을 늘이기 위해 애를 쓰는 것보다 적정선을 유지하는 가운데 해병대의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 정예부대를 육성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는 것이 자신의 지론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면서 스네디커 장군은 이런 설명을 곁들였다. 즉,해병대의 총 예산을 총 머리수로 나눈 수치를 육군의 그것과 비교해서 해병대의 것이 많으면 그것으르 인해 해병대의 존폐문제까지 거론될 염려가 있으니 특별히 명념하라는 이야기와 관례상 해군과 육군의 예산은 그런 식의 대비를 하지 않으니 해군과 긴밀히 협조하여 해병대의 예산이 적어질 수 있도록 많은 부분을 해군에서 떠맡도록 하는 방향으로 예산편성을 고려해 보라는 말도 했다.
스네디커 장군으로부터 그러한 말을 들은 나는 그 후 미 해병대에서 책정해 준 27,500명의 병력씨링에 만족을 표명하고 양보다 정신적인 풍토조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휴전 후 국방장관으로 영전했던 손원일 전 해군참모총장도 간혹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즉, 지원병제도를 택하고 있는 해병대를 프로에 견주고 의무병제도에 의존하고 있는 육군을 아마추어에다 비유한 손 장관은 우리 해병대도 미해병대를 본받아 소수 정예부대가 되어야 한다고 했고, 또 단가(單價) 면에서 해병대의 예산이 육군보다 비싸지가 않고 오히려 더 싸야만 해병대의 존립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두 분으로부터 틀은 그러한 이야기는 뒤에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그 후 나로 하여금 지극히 소중한 교훈으로 간직하게 했다.
콴터코의 미 해병교육단을 방문했던 날 김석범 사령관과 나는 미 해병학교의 기초반 과정에 입교하여 교육을 받고 있는 남상휘, 김윤근 중령과 홍성철, 김진근, 탁한관, 홍성은 대위 등을 만나 그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격려했는데 그들은 그 해 6월에 입교했던 제2차 도미유학 장교들이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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