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4대사령관 김성은

국방의 멍에 - 17. 휴전후 해병교육단(海兵敎育團) (10) 釜島의 사슴

머린코341(mc341) 2014. 8. 27. 21:45

국방의 멍에 - 17. 휴전후 해병교육단(海兵敎育團)

 

(10) 釜島의 사슴

 

  내가 교육단장으로 복귀했던 그 해 겨울철 어느 날이었다.

 

  나는 이승만 대통령의 분부에 따라 대통령을 모시고 부도에 있는 사슴을 사로잡기 위한 사냥작전을 한 적이 있었다.

 

  진해 군항으로부터 약 5킬로 남쪽 해상에 있는 작은 무인도인 부도에는 일제 때 일본 해군에서 공사를 해놓은 10여 게의 탄약저장소가 있어 그 섬을 탄약섬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름 그대로 생김새가 가마솥(釜)을 닮은 섬이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이 나에게 그런 분부를 하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사연이 있었다.

 

  즉, 정부수립 후 농림부장관을 역임한 공진항(孔鎭恒) 박사가 1·4후퇴때 정릉(貞陵)에서 사육하고 있던 40~50마리의 사슴을 그대로 두고 떠날 수가 없어 손원일 해군 참모총장에게 그 사슴들을 후방으로 운반해가서 이 대통령의 몸보신을 위해 사육해 달라고 부탁하여 해군에서 그 사슴들을 LST에 싣고 가서 부두가 있어 접안이 가능한 그 탄약섬에 부려 놓았던 것인데, 그 후 그러한 이야기를 손 총장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 대통령이 문득 그 사슴들 생각이 떠올라 나에게 그러한 분부를 하게 된 것이다.

 

  한데, 그 후에 알게 된 일이었지만 부도에 부려 놓은 그 사승들은 군인들이 LST에서 몰아내자마자 그 동안 배 안에서 얼마나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지 바닷물을 벌컥벌컥 마신 것이 화근이 되어 군인들이 보는 앞에서 절반 가량은 픽픽 쓰러져 죽고 말았고, 모질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던 나머지 사슴들 중 일부는 인근 섬으로 헤엄쳐 가버리기도 하고, 그 일부는 그 당시 진해 덕산 비행장에 주둔하고 있던 미 공군(F-51) 조종사들과 정비사들이 쾌속정을 타고 와서 사냥을 하는 바람에 그때까지 살아남은 사슴들은 불과 몇 마리 밖에 없었다.

 

  이 대통령으로부터 그러한 분부를 받은 나는 허탕을 치지 않기 위해 사전에 그 섬을 답사하여 지형정찰도 하고 실제로 사슴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 본 연후에 작전계획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D데이 약 10일 전 30명 가량의 대원을 데리고 LCVP를 타고 그 섬으로 갔던 나는, 지형정찰을 해 본 결과 가마솥 같이 생긴 그 섬 전체를 포위할 수는 없는 일이고 해서 섬 북쪽 방향으로 솥발처럼 뻗어있는 두 개의 능선줄기 가운데 시험삼아 길이나 폭이 약간 작은 윗쪽(西) 능선줄기를 훝어보기 위해 대원들을 섬기슭 양쪽으로 내려 보내 삼면으로 포위하여 빈 깡통을 두둘기며 섬 윗쪽으로 올라오게 했더니 그곳에서는 능선을 타고 섬 윗쪽으로 모습을 나타낸 단 한 마리의 사슴이 목격 되었을 따름이었다.

 

  은빛을 띤 사슴은 길목에 엽총을 들고 서 있는 나를 눈치쳤는지 몰라도 내가 서 있는 곳에서부터 10여 미터 전방에 있는 큰 소나무 등걸 뒤에 몸을 숨긴 채 꼼짝을 하지 않고 있다가 대원들이 바로 등 뒤까지 다가왔을 때 펄적 뛰어 놀라 대원들의 뒷쪽으로 달아나고 말았는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사슴이 연출한 즉석 높이뛰기의 묘기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슴은 대원들로 하여금 재차 몰이를 하게 하여 섬 위쪽으로 달아나는 것을 내가 쏘아 그 현장에서는 탈주에 성공한 듯 했으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던지 수일 후 그 섬 뒷편에 죽어 있는 것이 그 섬에 땔나무 하러 간 민간인들에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바 있었다.

 

  그날 사전답사를 해 본 나는 두 개의 솥발 같은 능선줄기 가운데 길이나 폭이 훨씬 더 큰 아랫쪽을 대상지역으로 선정하여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세웠다. 직접 확인을 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곳에는 노루나 사슴이 반드시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약 500명의 병력과 2척의 LCVP가 동원된 D데이의 본(本) 작전에는 이승만 대통령 외에 해군총장 박옥규(朴沃圭) 제독도 동행을 했는데, 6마리의 노루와 한 마리의 사승을 사로잡은 D데이의 작전에서는 지능이 낮은 노루들은 삼면에서 능선줄기를 포위한 군인들이 깡통을 두들기며 몰이를 하자 기겁을 해서 정신없이 섬 윗쪽으로 달아나다가 그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4선으로 된 군인들의 종심깊은 차단선에 걸려 거의 대부분이 초고공 높이뛰기를 거듭하다가 다리가 부러진 상태에서 생포가 되고 말았지만 노루보단 휠씬 지능이 높은 사슴은 다응과 같은 방법으로 일단 그 포위망을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즉, 군인들에게 몰이를 당해 섬 윗쪽으로 쫓겨오고 있던 한 마리의 사슴은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군인들을 의식하고 잠시 전망이 좋은 능선위에서 주의를 두리번거리다간 그곳에서 좌측 섬기슭으로 내려간 다음 놀랍게도 얕은 바닷물 속으로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가 산 모퉁이의 차단선을 무난히 돌파하는 것이었으니 참으로 놀라운 지능을 가진 동물이 아닐 수가 있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사슴은 내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약간 후방에 쳐놓은 제2의 차단선 때문에 왔던 길로 되돌아 가다가 그것을 알아채고 현장으로 달려간 LCVP에 의해 수중에서 버둥거리다가 생포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사로잡힌 사슴은 그 이튿날 새벽 놀랍게도 다음과 같은 뒷 이야기를 남겼다.

 

  즉, 신병들과 함께 LST로 운반이 된 6마리의 노루들은 훈련소 신병들의 특식으로 제공이 되었으나 LCVP로 운반이 된 그 사슴은 해군공창에서 만든 우리 속에 가두어 그 다음날 이 대통령이 상경할 때 비행기로 실어 보내기 위해 별장 뜰에 놓아 두었는데 그 이튿날 날이 밝은 후에 보니 나무를 얼기설기 얽어서 못질을 해 놓은 그 사슴 우리를 힘센 뒷발로 걷어차 부숴버리고 어디론지 달아나버린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날 아침 통제부에서는 달아난 사슴을 잡기 위해 갓 출근한 장교들까지 동원되는 등 큰 흥역을 치뤘으나 결국 별장 뒷산으로 달아난 사슴을 찾아내지를 못해 덕산비행장에서 비행기가 떠날 때까지 이 대통령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