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멍에 - 17. 휴전후 해병교육단(海兵敎育團)
(12) 발티고개의 일화
간부후보생 16기생들의 졸업기가 임박하고 있던 1954년 5월 말경이었다.
어느 날 오전 10시 함대사령부를 방문하기 위해 진해 군항에 도착할 예정인 미 해군 봉쇄함대사령관을 영접하기 위해 재진 해군부대 지휘관들과 함께 군항 귀빈부대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는 나보다 약간 늦게 도착한 박옥규 총장이 나를 보자마자 잔뜩 화가 난 얼굴로 "해병대 무서워서 어디 진해로 오겠나. 해병대 데리고 어디든지 떠나가시요!" 하기에 필시 무슨 언짢은 일이 있었구나 싶어 총장을 수행한 부관에게 넌지시 알아보았더니 잠시 전 웅천에서 진해로 넘어오는 발티고개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즉, 웅동(熊東) 저수지가 있는 곳까지 행군을 해 가고 있던 사관후보생들의 행군부대가 전방에서 질주해 오는 별판이 붙은 참모총장의 승용차를 길가에 세워놓고 경례도 하지 않고 통과도 시키지 않아 총장께서 노발대발했다는 것이었다.
부관으로부터 그러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나는 총장에게 정중히 사과를 드리고 용서를 구했으나 얼마나 화가 나 있었던지 좀처럼 노여움이 가시지를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총장의 노여움을 풀기 위한 나름대로의 묘안을 생각하는 한편 관계 참모로 하여금 그 진상을 조사해서 보고하도록 지시를 했는데, 약 2시간 후 나에게 보고된 사고의 내용은 대충 이러한 것이었다.
즉, 그날 해병학교에서는 16기생들이 구대장 박희태 대위의 인솔 하에 목적지인 웅동저수지로 향해 전술대형을 유지하는 가운데 행군을 하고 있었는데, 가는 도중에 한 대의 승용차가 누런 흙먼지를 일으키며 발티고개를 넘어 질주해 오자 행군대열 맨 앞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던 향도후보생이 행군대열의 안전을 위해 그 승용차의 앞 범퍼에 붙어 있는 파란색 별판을 의식하지 못하고 일반 차량에게 해 왔던 것처럼 일단 그 승용차를 도로 옆에 정차시킨 것이 문제가 되어 상사 계급장을 단 승용차의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려 “왜 총장 승용차를 함부로 세웠느냐” 고 하면서 향도후보생의 뺨을 갈기는 바람에 행군대열은 멈춰지게 되었고, 그 때 행군대열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던 박희태 대위가 승용차가 있는 곳으로 뛰어 가서 노발대발한 총장에게 자신의 관직성명을 대며 거수경례를 하자 다짜고짜 차를 세운 것을 힐책하며 빨리 길을 비키라고 했고, 그러면서 박 총장은 혹시 박희태 대위의 이름을 잊어 버릴까 싶어서 그랬는지 "박희태, 박희태" 하며 박 대위의 이름을 되풀이 뇌고 있더라는 것이있다.
한편 그날 저녁 나는 참모총장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통제부사령장관(정긍모 제독)의 협조를 받아 박 총장을 진해 시내에 있는 칠락(七樂)이란 요정으로 모시고 가서 술대접을 하게 되었는데, 박 총장의 일진이 몹시 사나운 날이었던지 그 요정에서도 박 총장은 거나하게 취한 기분으로 화장실에 갔다가 옆방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해병대 장교들이 변기에다 오줌을 누지 않고 화장실 입구에 서서 변기 밑바닥에 잔뜩 갈겨 놓은 소변에 발목까지 빠져 기분을 잡치는 바람에 노여움을 가라 앉히려고 했던 나의 공작은 완전히 도로 아미타불이 되고 만듯한 느낌이었다.
그런 변을 당한 박옥규 총장은 결국 통제부사령장관이 집으로 사람을 보내어 가져오게 한 새 양말을 신고 그 길로 부산으로 행차하고 말았는데 일이 그렇게 되자 나는 여전히 마음이 찜찜하여 그 다음날 오후 박옥규 총장과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해병 진해막사장 김동준 준장을 대동하고 부산으로 가서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는 박 총장을 억지로 동래 온천장으로 모시고 가서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대접하여 기어코 목적을 달성하고야 말았다.
다른 한편, 직속상관에 대한 불경죄로 다스려졌던 그 사건은 사고가 있은 직후 총장 특명에 의해 진해 해군헌병대에서 조사에 착수하고 있었는데 결국 해병학교에서 열린 징계위원회에서 총장의 승용차를 정차시켜 놓고 경례를 하지 않았던 향도후보생은 퇴교처분을 당하고 구대장 박희태 대위에게는 중근신 처분이 내렸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해병대 사령관 글 > 4대사령관 김성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방의 멍에 - 17. 휴전후 해병교육단(海兵敎育團) (14) 해병대 창설 5주년 기념식(記念式) (0) | 2014.08.30 |
---|---|
국방의 멍에 - 17. 휴전후 해병교육단(海兵敎育團) (13) 가덕도(加德島) 사냥作戰 (0) | 2014.08.27 |
국방의 멍에 - 17. 휴전후 해병교육단(海兵敎育團) (11) 임흥순 위원장(任興淳 委員長) (0) | 2014.08.27 |
국방의 멍에 - 17. 휴전후 해병교육단(海兵敎育團) (10) 釜島의 사슴 (0) | 2014.08.27 |
국방의 멍에 - 17. 휴전후 해병교육단(海兵敎育團) (9) 미 해병대 박물관(博物館) (0) | 2014.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