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4대사령관 김성은

국방의 멍에 - 17. 휴전후 해병교육단(海兵敎育團) (14) 해병대 창설 5주년 기념식(記念式)

머린코341(mc341) 2014. 8. 30. 08:23

국방의 멍에 - 17. 휴전후 해병교육단(海兵敎育團)

 

(14) 해병대 창설 5주년 기념식(記念式)

 

  1954년 4월 15일, 해병교육단 연병장에서는 휴전 후에 처음 맞이한 해병대 창설 제5주년 기념식을 이승만 대통령 내외분과 국방부 장관, 미 8군사령관을 비롯한 한·미 고위장성들과 진해시의 여러 기관장과 유지 및남녀학생 대표 등 수많은 하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거행되었다.

 

  창설 5주년 기념식을 계획할 때 나는 창설 이래 가장 본떼있고 규모가 큰 행사가 되게 하기 위해 많은 신경을 썼다.

보급정비단의 협조를 받아 필요한 목재를 가지고 와선 70~80명의 귀빈들을 단상에 모실 수 있는 큼직한 사열대를 만들도록 했고, 초청장을 발부할 때도경무대를 비롯해서 국회 국방위원회, 국방부, 연합참모본부, 각 군 본부, 주한 유엔군사령부와 8군사령부 등 주요 기관장 앞으로 두루 발송을 했다.

 

  내가 5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거행하려 했던 것은 지난 5년 동안 해병대에 대한 감회가 켰고, 또 뿌듯한 긍지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400명으로 출발했던 전투병력은 이미 2만 5천명 수준으로 늘어나 있었으니 감개가 무량한 일이 아닐 수 없었고, 더구나 6·25동란 중 우리 해병대가 세운 불패상승의 전통은 너무나 큰 영예가 아닐 수 없었다.

 

  그날 이승만 대통령은 부산 교두보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 있던 1950년 9월 중순경 수세에 몰려 있던 아군의 전세를 공세로 이전시켜 전략적인 반격의 기틀을 마련했던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과 수도탈환작전에서 수훈을 장식한 한·미 해병대 장병들의 혁혁한 전공을 높이 치하했고, 또 창설 연월이 연천한데도 불구하고 조국에 대한 뜨거운 충성심과 필승의 감투정신으로 허다한 격전장에서 무적해병의 전통을 세운 우리 해병들의 용감성을 극구 치하해 마지 않았다.

 

  한편 5주년 창설기념식 식순 가운데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해병대에서 키가 가장 큰 사람으로 알려져 있던 8척 장신의 박제욱(朴濟旭) 상사와 키가 가장 패소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던 양상국 해병에게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자른 대형 생신케익을 수여하는 장면이었다. 8척 장신인데다 뺨과 턱에 시커먼 털이 더부룩하게 나 있던 박제욱 씨는 평남 양덕군(陽德郡) 출신의 이름난 반공투사로 1950년 12월 초 3대대가 양벽에서 항토치안대를 조직하여 목숨을 걸고 싸워 왔던 수많은 반공애국청년들과 함께 남하한 후 해병대에 지원입대한 사람이었고, 제주도 출신 학도병이었던 양상국 해병은 내가 전투단장으로 있을 때 전투단 본부에서 근무하고 있던 재원으로 두 사람 모두 교육단 소속이었다.

 

  이 밖에 특별히 언급해 둘 이야기는 그날 미 해병 제1사단장과 해병제1여단의 수석고문도 식전에 참석했다는 사실이다. 두 사람은 해병교육단에서 거행된 전년도의 제4주년 창설기념식에도 참석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전시하에 거행된 4주년 창설기념식 때는 제1전투단장으로 있던 나 자신도 함께 갔다가 당일로 돌아오자고 한 사단장의 권유로 미 해병사단의 3인승 경비행기에 탑승하여 함께 진해를 다녀 왔었는데, 그러한 기회를 통해서 나는 한국해병대의 창설기념일을 마치 미 해병대의 창설기념일처럼 생각하고 그토록 극진하게 축의를 베풀어 준 미 해병대 장병들의 형제적인 전우애에 깊은 감명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