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멍에 - 18. 사단장 시절(師國長 時節)
(5) 尹中領의 환상(幻像)
사단에서 지휘소훈련(CPX)를 하고 있던 1957년 겨울철 어느 날이었다.
흰 눈이 쌓여 있던 그날 새벽 5시경 침대에서 깜박 잠이 들어 있던 나는 참모장 김윤근 대령이 나를 일어나라며 깨우기에 무슨 일로 그러느냐고 했더니 회의준비가 다 돼서 깨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회의는 무슨 회의냐고 되물어 보았더니 그는 뚱단지 같은 사단장이 지시한 '단위부대장회의'라고 했고, 내가 언제 그런 지시를 했느냐고 했더니 당직근무를 서고 있는 공병참모 윤승선 중령이 자기 방카로 찾아와선 잠시 전 사단장이 당직실에 들어와서 그런 지시를 했다고 하기에 새벽 3시경에 일어나서 각 연대장과 직할부대장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회의를 소집하느라 눈도 제대로 붙이지를 못했다고 했다.
참모장의 입에서 공병참모 윤승선 중령이란 말이 나봤을 때 나는 혹 윤 중령이 참모장과 각 부대 지휘관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 조작한 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윤 중령을 잠시 사단장실로 오게 하여 내가 언제 그러한 지시를 윤 중령에게 했느냐고 했더니 과연 그는 내가 짐작했던 대로 별 희한한 말을 꾸며대는 것이었다.
그의 말인즉슨 자기가 난로 가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사단장이 철모와 권총을 착용하고 당직실에 들어와 그런 지시를 하고 돌아가지 않았냐는 것이었다.
따라서 마치 잠결에 헛것을 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실제로 그렇게 한것처럼 말하는 그의 말에 다소 기차 차서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키 크고 안 싱거운 사람 없다는 말이 있듯 호인(好人)이면서도 간혹 싱거운 장난질을 잘 하는 위인으로 알려져 있던 윤승선 중령은 그 후 그가 진해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자기와 친한 친구 및 사람을 해군장교 구락부로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하던 중 슬그머니 그 자리를 빠져 나와 제3자에게 부산으로 간다는 말을 남기곤 어디로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초대받은 사람들을 골탕먹인 일이 있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리고 제2공화국 때의 대통령이었던 윤보선 대통령의 종제(從弟)였던 윤 중령은 일제 때는 일본 관동군 시설장교로 근무하다가 해방 직후 우리 해군에 입대한 사람이었는데 내가 사령관으로 있을 때는 윤 대통령의 측근인사로부터 윤 대령을 장군으로 승진시켜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었으나 그 측근인사에게 과거 사단장 시절에 겪었던 그 난로가의 환상에 얽힌 추억담을 들려 주면서 때가 되면 고려해 보겠다고 했더니 그 후 두 번 다시 그런 청탁을 하지 않았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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