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멍에 - 18. 사단장 시절(師國長 時節)
(6) 봄·겨울의 귀빈(貴賓)들
해병사단이 주둔하고 있던 파주지구의 임진강변에는 일제 때 일본인들이 뚝을 쌓아 조성해 놓은 약 20~30만 평에 달하는 삼정농장(三井農場)이 있었다.
물론 해방 후엔 우리의 농지로 귀속이 되고 우리 농민들에게 배분이 된 것이었지만 전쟁 때문에 농사를 짓지 못했던 넓은 전담의 수로(水路)와 작고 큰 수류지(水溜池)가 있었는데 그 수로와 수류지에는 메기, 가물치, 붕어 등 많은 종류의 물고기가 득실거리고 있었고 겨울철이면 갈대가 우거진 황량한 들판과 야산에는 정과 노루 등 많은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어 여름철이면 간혹 강태공이 되어 낚시를 즐기고 겨울철이면 엽총을 메고 작전지역에 대한 순찰도 할 겸 사냥을 즐길 수가 있었다.
내가 사단장으로 부임했던 그해 여름철 어느 주말에는 예비연대로 있던 2연대장 강기천 대령과 부연대장 이봉출 중령과 함께 휴일의 무료한 시간을 낚시질을 하며 즐겼는데, 그런 날이면 으레히 야전 요리사로 둔갑한 이봉출 중령이 부엌칼과 도마와 초고추장 등을 준비해 와서 가물치나 잡힐 경우 즉석에서 회를 떠서 시뻘건 고추장에 찍어 먹곤 했다.
해군의 모체부대인 해방병단(海防兵團)과 그 후의 해안경비대 시절에 병조장(상사)의 계급으로 해방병단의 취사반장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던 이봉출 중령은 그 시절에 익혔던 요리솜씨를 발취하여 특히 가물치가 잡히기만 하면 즉석에서 솜씨를 부려 일품요리를 만들어 내곤 했는데, 월남전때 초대 청룡부대장으로 임명되어 용장으로서 많은 전공을 세웠던 그는 이미 고인이 된지가 오래이다.
한편 겨울철의 주말에는 사냥을 즐기러 온 몇 분의 귀빈들이 있었다. 당시의 국회 부의장 이재학(李在鶴)씨와 김용우(金用雨) 국방장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정열(金貞烈) 장군, 재무부 장관을 지낸 인태식(印泰植)씨 등이었다.
그리고 X마스가 다가온 1957년도의 세모에는 이승만 대통령 내외분이 일선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해 사단을 방문했었다. 그날 김용우 장관을 대동하고 미 8군 헬기편으로 사단을 방문했던 이 대통령 내외는 사단본부의 작전방카에서 브리핑을 청취한 다음 미 해병 고문단에서 베푼 칵테일과 오찬 모임에 참석한 후 부대를 떠났다.
그런데 그날 고문단 식당에서 오찬을 마친 뒤 이승만 대통령이 페치카앞에서 뒷짐을 지고 서서 환담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아메리카 인디언출신인 수석고문 윌리암 대령이 나의 사냥실력을 이 대통령에게 자랑하고 싶은 생각이 났던지 느닷없이 나를 "명포수" 라고 소개하면서 "제너럴 킴이 사냥터로 나가기만 하면 노루 서너 마리와 꿩 20~30 마리 정도를 잡아온다." 고 말하는 바람에 나 자신의 입장이 매우 난처했다.
그의 입에서 느닷없이 그런 말이 나왔을 때 나는 그의 말을 제지하기 위해 그를 바라보며 연방 눈을 껌벅거려 봤지만 그는 눈치를 채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을 죄다 해 버리는 것이었다.
내가 그의 입을 막으려고 했던 이유는 바로 그해 봄철 이 대통령께서 선진국처럼 우리나라도 자연보호와 야생동물의 보호를 위해 노력을 해야 할 것이며, 특히 야생동물을 남획하는 일이 있도록 하라는 특별담화문을 발표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날 윌리암 대령으로부터 그러한 말을 들은 이승만 대통령은 내가 교육단장으로 있을 때 부도(釜島)와 가적토에서 벌였던 사냥작전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있음인지 싱긋이 웃으시며 "아이 노우 힘 웰" 하고 받아 넘기는 바람에 조금은 찜찜했던 나의 마음이 푹 놓이는 것 같았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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