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4대사령관 김성은

국방의 멍에 - 19. 海兵隊 司令官 時節 (5) 설마 했던 일

머린코341(mc341) 2014. 9. 6. 14:44

국방의 멍에 - 19. 海兵隊 司令官 時節

 

(5) 설마 했던 일

 

  방송을 통해서 사실을 확인하게 된 나는 설마하고 생각했던 엄청난 불상사가 마침내 일어나고 말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바로 그 무렵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은 항간에서도 들리고 신문지상을 통해서도 비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국회의 대정부 질의석상에서도 거론이 된 적이 있었다.

 

  항간에 그러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던 시기는 1960년 9월 하극상(下剋上) 사건을 일으켰던 육사 8기생들이 군법회의에서 중징계 처분을 받고 군에서 쫓겨난 바로 그 해 연말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육사 8기생들의 하극상 사건은 1960년 9월 중순경 김종필(金鍾泌) 중령을 비롯한 11명의 8기 출신 영관급 장교들이 현석호 국방장관에게 정군(整軍)을 건의했던 사건과, 같은 해 9월 하순경 김명환 대령 등 16명의 장교들이 4·19혁명 직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다가 다시 합참의장으로 영전한 최영희 장군의 사퇴를 요구한 사건이었다.

 

  쿠데타에 관한 소문은 당시 국방부 정무차관으로 있던 박병배(朴炳培) 씨에 의해서도 터뜨려지고 있었다. 물론 우정 그러한 소문을 터뜨리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다 알고 있으니 서툰 짓들 하지 말라고 경고를 하기 위해 그런 말을 했던 것으로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는 공군 장성들을 만나게 되면 "국군의 날(1960년 10월 1일) 행사 때 쿠데타에 가담한 공군장교들이 한강변에 만들어 놓은 공격목표물을 공격하지 않고 귀빈들이 앉아 있는 관망대를 공격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하는 투의 넘겨짚는 말을 했고, 육군이나 해병대 장교들에게는 "육군에서 쿠데타를 모의하고 있다던데‥‥?“ ”해병대도 쿠데타에 가담한다면서‥‥?" 하는 식의 말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또한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민의원)으로서 정무차관을 겸하고 있던 그 박병배 차관은 험구가로 이름이 난 경찰관 출신이었는데 국회에서의 대정부 질의 때는 국회의원의 자격으로 쿠데타에 관한 질의를 하여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런데 대정부 질의 때 육군이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소문을 들은 어떤 의원이 "서울 근교에서 육군이 대규모 야외훈련을 하고 있는데 혹 쿠데타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닌가" 고 질의하자 답변에 나선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은 수도 서울의 치안을 운운하면서 데모군중을 진압하기 위해 실시하는 '비둘기 작전'이라고 해명을 했고,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고 있는 줄을 알지 못하고 있던 장면 총리는 자기를 기만하고 있는 장도영 총장의 말만 믿고 그러한 소문들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답변한 적이 있었다.

 

  그러한 일 외에 나는 군사정변이 일어나기 수일 전 육군사관학교 교장 강영훈(姜英勳) 장군의 방문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강 장군은 학생들이 계속 거리로 뛰쳐 나와 데모를 하고 판문점으로 가서 북한 학생들과 통일문제를 논의하겠다며 소란을 피우고 있는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쿠데타와 관련된 소문 얘기는 서로가 하지 않았지만 강 장군과 나는 행여 그러한 일들이 쿠데타의 명분과 동기로 작용이 되지는 않을까 하고 내심 염려를 했었는데, 결국 그러한 염려가 적중이 되고 말았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부사령관으로부터 그러한 보고에 접한 나는 불편한 몸을 무릅쓰고 작업복을 입고 사령부로 출근을 했더니 어느새 비상연락을 받고 달려온 몇몇 참모들이 굳은 표정으로 돌발사태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아침 9시경에 이르러 나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령관실을 방문한 예비역 대령 염봉생(廉鳳生)씨를 접견하게 되었는데 코가 대포 같이 크기도 하고 대포 알을 펑펑 날려 보내듯이 허풍을 잘 떨기도 하여 '염대포'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던 그는 모처럼 나를 만나게 되었는데도 인사도 없이 덥석 나의 손을 잡으며 "사령관님, 큰일 났습니다.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모양인데 주모자인 박정희 소장 그 자가 빨갱이 아닙니까. 저지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았다간 빨갱이 나라가 되고 합니다." 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자리에 앉게 한 다음 내 앞에서 그런 말 하는 것은 괜찮지만 딴 곳에 가선 그런 말 함부로 하다가 무슨 변을 당하게 될지 모르니 말조심하라고 했는데, 나에게 그런 말을 하고 사령관실을 물러갔던 그는 걱정이 태산 같았는지 그 길로 해병대가 집결해 있는 남대문 시경찰국으로 가서 그런 말을 하고 나오다가 누군가에 의해 경찰서로 연행되었다가 풀려 났다는 소문이 전해지고 있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