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역사/해병대 명인·기인

창설기 - 급행열차를 세운 홍정표 보급관

머린코341(mc341) 2014. 9. 10. 20:53

창설기 - 급행열차를 세운 홍정표 보급관

 

해병대가 창설된 그 해(‘49년) 10월 25일 아침 해군본부(서울)로부터 무기 수령증을 받게 된 해병대 사령부(진해) 보급관 홍정표(洪正杓) 소위는 26일 아침 서울에서 인수하여 진주로 운반해 오게 돼 있던 다량의 무기 인수를 위해 그 인수증을 수령함과 동시에 진주역으로 가서 진주발 삼랑진행 완행열차가 진주역을 출발하기 전 진주역장에게 그 무기 인수증을 제시하고서는 “이 문서에 적혀 있는 무기를 정해진 시각에 인수하여 운반해 오지 못하게 되면 군 작전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니 당일 아침 자신이 타고 갈 유일한 차편인 진주발 삼랑진행 완행열차가 삼랑진역에 도착하기 약 1시간 전에 삼랑진역을 무정차로 통과할 부산발 서울행 준급행열차를 삼랑진역에 약 1시간 동안 정차시켜 자신이 그 완행열차에서 내려 그 차 (준급행열차)를 바꿔 타고 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한 끝에 부산철도국의 각별한 협조로 그 일을 성사시키는 전설과도 같은 화제를 남겼는데, 무정차로 통과하게 돼 있는 준급행열차를 약 1시간 동안 삼랑진 역에 서 있게 했던 그 일은 교통사정이 열악하고 치안상태가 매우 불안했던 그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코미디 같은 화제가 되기도 하지만 홍정표 소위 같이 책임감이 투철하고 임기응변의 기지와 배짱이 있는 장교가 아니었으면 그런 발상조차 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편 그날 서울에 갈 수 있는 유일한 차편이었던 그 준급행열차를 타고 상경했던 홍정표 소위는 그 다음날 아침 남산에 있는 해군본부에서 이미 수령하여 용산역 화물차에 적재해 놓은 무기를 직접 진주역으로 호송해 왔으나 그 다음날(27) 꼭두새벽 공비 내습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그 무기들을 공비들에게 탈취당할 뻔했다.

 

그날 밤(26) 10시경 화차와 함께 진주역에 도착했던 그는 무기를 부대로 운반하여 무기고에 입고시켜 놓고 진주호텔로 가서 손님(지리산 지구 전투 사령관 김백일 대령)을 접대 중인 부대장(김성은 중령)에게 귀대보고를 한 다음 약간의 술을 마시고 법원 뒤편에 있는 자기 집으로 가서 잠을 자고 있다가 그 이틑날(27) 새벽 1시 40분경 집 근처에서 일어난 요란한 총성에 놀라 잠을 깨고 보니 법원과 진양군청에 불길이 치솟고 있었고,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는 사범학교 쪽에서도 불길이 치솟고 있어 급히 진주호텔로 달려가 때마침 호텔에서 나오고 있는 부대장과 같이 부대로 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주지의 사실인 공비 내습사건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고 다만 홍정표 소위가 수령해온 무기와 관련된 부분에 한해 약간의 설명을 부연해 두고자 한다. 그때 해병대에서 수령한 그 무기는 그해 8월 26일 대구(大邱)에서 가진 육군참모총장 이응준 소장과 해병대 사령관 신현준 대령의 특별회담의 결과에 따라 그때까지 육군에서 맡고 있던 진주지구에 대한 경비를 해병대에서 맡게 됨에 따라 육군에서 해병대로 넘겨 준 것이었는데, 육군 병기창으로부터 공급받은 그 무기는 권총15정, 기관단총28정, 겅기관총6정, 칼빈소총251정 중기관총 4정, 99식 소총 141정 등이었다. 따라서 그때까지 낡아빠진 99식 소총과 목총 등으로 무장하고 있던 해병대로서는 엄청난 장비가 아닐수 없었다.

 

다만 그런 무기들을 조작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 난감한 형편이었으나 사령부 고문관이 마산에 주둔하고 있던 육군16연대(그때까지 마산 진주지구에 대한 경비를 담당했던) 고문관에게 요청하여 소수의 병기 취급 교관요원을 16연대 고문단으로 파견하여 연수교육을 받게 한 다음 그들에 의한 자체교육을 실시했는데, 자체교육을 하기 전 각종 무기에 대한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한 시사회(試射會)를 가졌을 땐 난생 처음 그런 무기를 본 대원들이 99식 단발소총에 비해 열배 천배의 위력을 발휘하는 그 무기들의 가공할 위력에 얼마나 감탄을 했던지 마치 부쉬맨 들처럼 시종 입을 다물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해병대 사령부의 초대 보급관으로 많은 활약을 했고, 또 군복무기간 중 많은 화제를 남기기도 했던 홍정표씨(경남진주태생. 1927년생)는 그가 보급정비단 참모장으로 있던 62년 12월 보급정비단의 비자금(秘資金)사건에 연루되어 고등군법회의에 회부되어 불운하게도 보급경비단장 한예택 대령과 정비부장 강용 대령과 함께 1등병으로 강등되어 불명예 제대를 당했다. 현재 울산에서 거주하고 있는 홍정표 대령은 노태우 정권때 복권(復權)이 되었으나 지병(중풍)으로 어려운 처지에서 투병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 1 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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