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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기 - 97대의 빳다를 맞은 이문희 해병

머린코341(mc341) 2014. 9. 10. 20:52

창설기 - 97대의 빳다를 맞은 이문희 해병

 

해병사(海兵史)의 자랑스런 주춧돌이 된 300명의 해병1기 신병들 중 연대(連帶)기합이 아니고 개인적인 특별한 잘못으로 인해 빳다를 가장 많이 맞은 대원은 4소대 1분대 당번이었던 이문희 해병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매점에서 팔고 있는 ‘앙꼬빵’이 얼마나 먹고 싶었던지 지급된 양말(관품)과 앙꼬빵을 맞바꾸어 먹은 것이 주말 점검 때 들통이 나는 바람에 4소대 대원들(30여 명)이 지켜 보는 가운데 당직분대장인 4소대 2분대장 김연상 하사로부터 기본자세인 ‘엎드려 뻐쳐’ 자세로 30대의 빳다를 맞고 견디다 못해 땅바닥에 엎프러지고 말았는데, 그 정도론 일벌백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맹수의 조련사와도 같았던 당직 분대장은 바케츠에 담긴 물을 퍼부어 정신을 차리게 한 다음 대원들로 하여금 유도복 허리띠로 그의 두 손목을 철봉대에 묶어 매달리게 한 다음 67대를 더 가격함으로써 의무실로 운반되어 5일만에 가까스로 퇴실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당시의 의무실장은 (해병대의 초대 군의관) 이호선 중위였으며, 활주로 쪽에 위치하고 있던 4소대의 퀀세트 뒷편에는 4소대에서 세워 놓은 철봉대와 평행봉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창설기의 해병대 신병 1기생들이 맞았던 빳다의 기본 대수(일 규정량)는 15대 정도 였으나 특별한 잘못이 있을 경우는 개인 또는 단체기합으로 규정량 보다 훨씬 많은 대수의 빳다를 맞았고, 또 빳다를 맞을 때 마다 그들은 대부분이 일본 해군 출신이었던 호랑이 같은 분대장들의 지시에 따라 “충무공 하나” “충무공 둘”하며 대수를 외쳤는데, 대개의 경우 30대 정도 맞게 되면 대수를 세는 소리가 모기소리 같이 되면서 버틸 힘을 상실한다고들 말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해병대의 1기생들이 맞았던 그 빳다는 비록 그것이 훈련 초일부터 훈련이 끝나는 날까지 그들의 허벅지(뒷쪽)와 엉덩이를 끔찍스런 피멍으로 얼룩지게 했지만 맹수의 조련사들과 같은 창설기의 분대장들이 무적의 강병을 길러 내기 위해 강훈(强訓)의 일환으로 가격한 것이었을 뿐 사감에 의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 1 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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