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4대사령관 김성은

국방의 멍에 - 20. 國防部長官 時節 (13) 派兵의 成果

머린코341(mc341) 2014. 9. 27. 12:57

국방의 멍에 - 20. 國防部長官 時節

 

(13) 派兵의 成果

 

  한국군의 월남 파병은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인 면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행했던 브라운각서를 통해서도 대체적인 성과를 측정해 볼 수가 있는 일이겠지만 우선 국가안보의 강화문제와 관련해서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지원 하에 현역 전투사단의 장비현대화와 3개 예비사단의 전투력 강화, 대간첩 장비의 확보와 병기창의 시설 확장, 보충병력의 확보 및 무장 등을 차질없이 이루어 나감으로써 국가 안전보장에 만전을 기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정치적인 면에서는 한국 정부가 파병을 하지 않았을 경우 미국이 주한 미군의 일부를 월남전에 전용하는 문제를 고려할 수도 있었을 것으로 판단이 되는데, 만약에 사태가 그런 방향으로 진전이 되었다고 한다면 한국의 국가안보 능력은 그만큼 저하되었을 뿐더러 한·미 양국의 정치적, 군사적인 결속력이 그만큼 약화될 수밖에 있었을 텐데 결국파병을 하게 됨으로써 그러한 염려를 해소시키고 한·미 양국의 정치적, 군사적인 결속을 그 어느 때보다도 공고하게 다질 수가 있었다.

 

  다음은 주월 한국군의 전투경험 축적을 통한 한국군의 전투역량 강화와 관련된 것인데, 파월기간 중 한국 정부는 32만명의 병력(교체병력 포함)을 투입했고, 월남전에 투입된 그 한국군 부대는 열대의 정글과 베트콩의 지하진지로 연결된 촌락지대에서 도합 1,170여회의 대대급 이상 대부대 전투와 576,300여회의 소부대 전투를 치르는 가운데 풍부한 실전경험을 쌓았다.

 

  또한 그러한 과정에서 한국군은 적과 주민을 분리 차단하는 매복전술과 중대 전술기지의 운용 등으로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한의 전과를 거두는 특수한 전술교리를 개발했고, 연합군과의 협동작전을 통한 통합지휘능력의 향상 등 총체적인 전투역량 강화를 위해 많은 성과를 거두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리고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는 한국 정부에 대한 미국 정부의 군원이관이 중지됨으로 인해 입게 된 재정적인 부담의 감소를 비롯해서 일반적인 무역의 진흥과 국내 건설업체와 수만 명에 달하는 유휴노동력의 월남진출을 통해 이루어진 용역군납과 건설군납 및 물품군납 등을 통칭된 이른바 월남특수로 우리나라는 한국군의 월남 파병이 단행되기 전인 1963년에는 8,700만불에 불과했던 대외수출고가 파병 4년 후인 1968년에는 4억5,500만불로 늘어나게 되었는데, 바로 그 해에 기록된 대월 수출고가 전체 수출고의 7.6%에 해당하는 5,625만불을 기록하게 됨으로써 대월 수출구성비에 있어 미국·일본 다음 가는 나라로 부상을 했었다.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졌던 1965년 6월을 전후하여 우리나라는 특히 일본 등 일부 외국으로부터 도입한 지속적인 시설재(施設材)의 도입으로 인해 무역수지면의 적자폭이 해마다 커지고 있는 실정이었는데 그러한 시기에 적자폭을 메꾸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던 것이 곧 월남특수였다. 그러므로 한국군의 월남 파병기간 중 월남특수로 획득했던 외화는 그 당시 우리나라의 국제수지면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월남특수는 결국 1971년에서 1972년 사이에 단행된 한국군의 철수와 뒤따라 이루어졌던 건설업체 및 근로자들의 철수, 1975년 4월 30일에 종말을 고하게 된 월남공화국의 패망으로 명맥이 끊어져 월남에 진출했던 수만 명의 인력이 귀국 즉시 실업자로 전락하는 사태가 빚어졌으나 1975년 후반기부터 진출하게 된 국내 건설업체들과 근로자들의 중동진출때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 건설업체들과 근로자들의 중동진출은 1973년 10월에 일어난 중동전쟁(10. 6~23) 때 이스라엘군의 아랍 점령지 철수와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 중지를 촉구하며 그들의 원유가를 10배 이상 인상하는 일방적인 유가인상조치를 단행하여 세계경제를 위기에 몰아넣은 중동 산유국들이 유가파동으로 벌어 들이 오일달러를 가지고 자국의 산업시설 건설에 열을 올릴 때 월남에 진출했던 국내 건설업체들과 근로자들이 선두대열에 서서 국제 경쟁입찰을 거쳐 과감하게 뛰어 들게 됨으로써 이루어졌던 것이며,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중동건설 붐은 우리나라의 국제수지 개선과 국력의 신장에 사상 유례없는 기여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어떤 개인이나 국가에 주어지는 기회 가운데는 개인이나 국가의 장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회가 10년이나 100년 또는 그 이상의 세월을 건너 도래할 경우가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한국군의 월남파병이 바로 그러한 기회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또 하늘이 준거나 다를 바 있는 그와 같은 기회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포착하려는 국가경영자들과 국민들의 현명한 판단과 과감한 노력이 없이는 놓쳐버리기 마련이나 우리의 경우는 그 기회를 정확하게 포착하게 됨으로써 역사상 유례없는 대역사(大役事)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국운의 융성과 국가의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본인은 국군 통수권자로서의 탁월한 식견과 선견지명을 가지고서 역사를 주재(主宰)한 박정희 대통령의 영단에 새삼 깊은 경의를 표하며 역사적인 월남 파병 때 박 대통령을 보필하여 국방을 맡은 주무장관으로서의 소임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을 매우 큰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약 8년간의 파병기간 중 적지 않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것은 너무나 애석하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으며, 이 자리를 빌어 6·25 때 우리가 입었던 크나큰 은혜에 보답하고 우리의 국가안보와 자유민의 전우를 위해 목숨바친 전몰장병들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빌어 마지 않는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