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6대사령관 공정식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21) - ‘귀신잡는 해병’

머린코341(mc341) 2015. 1. 4. 11:32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21) - ‘귀신잡는 해병’

 
진동리 전투에서 ‘귀신 잡는 해병’이란 애칭이 생겨난 사실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대부분 해병들은 진동리전투를 이은 통영 상륙작전을 계기로 『뉴욕 헤럴드 트리뷴(New York Herald-Tribune)』지의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Marguerite Higgins)가 쓴 「귀신잡는 해병(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이라는 기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기사는 입증되지 않은 반면 진동리전투에서 가진 UPI의 인터뷰 타전은 보관되어 있어 이로부터 귀신 잡는 해병이 잉태되었다는 사실이 타당하다.

 
즉 진동리전투가 끝난 직후인 8월 5일 본부중대장 안창관 중위와 입담이 좋은 염태복 상사를 인터뷰한 것이 UPI에 소속된 한국인을 포함한 4명의 기자들이었다. 인터뷰 내용은 우리 해병대의 가치관으로서 명예와 전통 그리고 전투 목표인 국가와 민족 등이 부각되었다.

 
좁고 옹색한 사무실에서 인터뷰가 시작됐다.

 
“인민군의 총공세로 지금 부산 교두보가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당신네들은 누구를 위해 싸우고 있는가?”

 
이 물음에 염상사는 “해병대의 명예와 전통을 위해 싸운다”고 답변했다. 기자들의 관심을 자극한 좋은 대답이었다.

 
“명예는 무엇이고 전통이란 어떤 것인가?”

 
“명예는 싸워 이김으로써 얻는 긍지이고, 전통은 그렇게 얻은 긍지를 계속해서 지켜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명예와 전통을 위해 싸우는 것이 곧 국가와 민족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이다. 또한 우리 해병대원들은 지휘관을 위해 싸우는 것이 곧 명예와 전통을 위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있다. 지휘관은 우리들의 친아버지나 친형 같은 분들이다.”

 
이 인터뷰가 타전되어 해외 여러 신문에 대서특필된 뒤 8월 23일 한국전쟁 취재로 명성을 떨치던 마거리트 히긴스가 김성은 부대를 찾음으로써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애칭이 우리 해병대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다.

 

 

마거리트 긴스 기자


통영작전 - 김성은 선배와 재회

 
태평양을 건넌 704함의 부장인 나는 1950년 7월 25일 진해에 입항하였고 그 다음 날인 26일 선착한 703함과 합류하여 진동리 및 통영상륙작전 지원을 위해 투입되었다. 이를 계기로 김성은 선배와 내 인연은 더욱 굳어졌다.

 
초기 소탕작전이 마무리될 즈음, 김성은 부대장은 당시 해군 임시정대사령인 이성호 703함장 등과 연석회의를 가졌는데 나도 참여하게 되었다. 이때 거제도와 통영 사이의 작은 섬에 잔적 7~8명이 남아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내가 "그 정도면 제가 해치울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자

 

"공 소령! 그 용기가 대단하지만 귀관은 해군이다!" 라며 김성은 선배가 만류한 것이 떠오른다.

 

나는 당시 통영상륙작전을 '초기 한국식 상륙작전'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진동리 작전을 미 해병대를 만나 우리 해병이 획기적인 발전을 하게 된 계기라고 본다면, 통영상륙작전은 지극히 한국적인 작전이었다.

 

당시 통영에  미국 종군기자 등 해외 특파원들이 매일 방문하여 그들의 관심사항을 보도했다. 그들은 특히 거룻배를 이용한 상륙작전에 입을 다물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해병대가 휴대하고 있는 구식 소총에 관심을 두었다.

 

김성은 선배는 회고록에서 어떤 종군기자는 '18세기 해적(海賊)들이 했을 것 같다' 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고 썼다.

 

나는 그 당시 김성은 선배가 현시학 소령의 형인 현봉학 씨의 명(名)통역으로 여기자 마거리트 히긴스와 인터뷰하는 자리에 함께 하기도 했는데 농담이 오가는 등 그 분위기가 밝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출처 : 해사1기, 예비역 해병중장 공정식 제6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