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 1진의 기억 -(5) 해병이 되다 - (빨간 명찰을 달다)
<마무리 훈련과 빨간 명찰 >
드디어 훈련의 마지막 관문인 4박5일 상륙 훈련과 행군.
군장을 꾸려 진해로 이동, 상륙함을 타고 야간이동,
충무(지금의 통영시)지역에 상륙하여 고성, 마산을거쳐
진해로 들어 오면서 행군 이동, 숙영, 전투훈련을 반복하는 종합훈련인 셈이다.
우리의 지휘부는 해간 33기가 소대장, 중대장등을 맡았다.
나에게는 화염 방사기가 배당되어 행군 내내 개인 군장 위에
20파운드의 화염방사기를 메고 걸어야 했다.
상륙함 승선 직전, 승선 준비를 위해
신병 훈련소 연병장에 집합해 있는 동안 장한영 교관을 잠시 만나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장한영 교관 말씀이
-- 이번 기수는 아이들 수준이 너희들만 못해 --
하면서 자못 실망스러운 빛을 내비쳐 속으로 얼마나 우쭐했었는지 모른다.
저녁을 먹고 승선, 어디론지 이동, 그리고 상륙하니 이른 아침이었다.
이동하고 천막치고 밥먹고, 다시 이동하고…..
무슨 소대 전투에 연대 전투 등등이 이어지면서
발은 부르트고 점점 더 허기는 지고 기운은 빠져 가고.
잠시 쉬는 시간에 간부 후보생들이 모여 있는 곳을 넌즈시 넘겨 보았더니
간부 후보생도 먹을 것 타령을 하더라고.
그 때, 아하! 쫄병만 배고픈 것이 아니라
장교도 배가 고픈 모양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쉼터 자료사진 : 요즘 해병대의 행군을 사진으로나마 봐도 멋집니다)
마지막 밤은 마산으로 넘어가는 진동리 고개의 야간 강행군.
보통 행군은 시속 4.5km, 그러나 강행군은 시속 5.5km.
그것도 마지막 저녁에 재를 넘는 코스라
이윽고 여기 저기서 주저앉아 버리는 훈련병들이 속출했다.
그러면 소대장 맡은 33기 후보생들이 소리지르고 윽박지르다가
다 같이 지친 마당에 오로지 책임감으로 결국은 끌고, 지고 고개를 넘어야 했다.
화염 방사기를 짊어진 나도 이미 체력은 바닥이 났고
정신력으로 버티며 끝나는 시간만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행군이 어두움 속에 계속되는데 소변이 마려웠다.
언제쯤 멈출지도 모르고 소변 때문에 대오를 이탈했다가는
다시 뛰어서 본대를 찾아 올 기운도 없고,
에라! 모르겠다. 그냥 입고 걸으면서 소변을 봤다.
뜻뜻한 액체가 바지를 타고 흘러내려 군화 위로 줄줄 흘렀다.
그러면서 계속 걸었더니 언제 말랐는지 또 다 말라버렸다.
천막치고 숙영, 식사 그리고 또다시 이동.
드디어 마지막 날 (아마도 12월 22일 쯤인가) 다시 기운을 좀 차리고,
마산 시내를 통과하는데, 어느 라디오 가게 앞의 스피카에서 느닷없이 쾅쾅! 하고
터져나온 크리스마스 캐롤을! 듣는 순간, 주체할 수 없이 왈칵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훈련 생활 중 느낀 가장 강한 감정의 고조 순간이라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석 달만에 접해 본 문명(?)에의 향수였나,
아니면 안식에의 그리움이었었나?
(쉼터 자료사진 - 아마 눈물고개 넘는 사진인듯 합니다)
마산 시내를 벗어나 우리는 다시 상남으로,
후보생들은 진해로 돌아갔고 돌아와서는 드디어 수료식 준비.
수료식 전날 밤, 몇몇 동료들이 어떻게 구해 왔는지
막걸리와 안주를 돌렸으나 나는 한 모금도 마실 수가 없었다.
알코올을 받아드릴 체력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드디어 빨간 이등병 계급장이 주어졌고,
우리는 이것을 결코 - 이 빨간 명찰이 결코
나이롱 뻥으로 딴 것이 아니라며 감회에 젓어 옷에 달았다.
출처 : 파월 제1진 청룡부대 2대대 해병158기 이장원 선배님의 월남전 참전수기
'아! 청룡이여 제1권 캄란에서 호이안까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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