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참전수기/해병158기 이장원

청룡 1진의 기억 -(3) 해병이 되다 - ( 천자봉 구보와 찐빵)

머린코341(mc341) 2015. 1. 7. 06:28

청룡 1진의 기억 -(3) 해병이 되다 - ( 천자봉 구보와 찐빵)

 

제목만 보고도 모두 회심의 미소를 지으시겠지요?

-- 내가 더 할 말이 많다고 --

그렇습니다. 내 글 재주가 무뎌서 그저 그 때 겪은 일을 간단히 적을 터이니
각자의 머리 속에 추억의 뭉게구름을 한 번 피워 올려 보시지요.

훌륭한 교관이 있다고 아무렴 해병대 신병 훈련소가 마냥 즐겁고 신나기만 했을까?

천만의 말씀! 그렇다고 하면 욕먹지.
그렇게 호락호락 나이롱 뻥으로 넘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쟎는가?

고통스러운 순간이 어디 한두 번이랴만 그 중에서도
나는 천자봉 구보와 찐빵에 얽힌 힘들었던 기억을 지울 수 없다.

훈련소에서 천자봉 구보를 나갈 때 쯤은
벌써 사회에서의 기름기는 몸에서 싹 빠져 나간 때가 된다.

지금도 그 날 장한영 교관과 기념으로 찍은 사진을 보면
반쪽이된 얼굴위에 철모만 덩그렇게 올라 앉은 모양으로 바싹 말라 있다.

나는 사실 특히 달리기에는 아주 약하다.
아마도 폐활량이 평균에 좀 못 미치지않나 싶다.
지금도 신체 검사를 받아 보면 폐활량이 좀 약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렇듯 어려서부터 달리기나 축구 같은 운동에는 젬병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한 5km 단축 마라톤에서도 그랬고,
고교때 10km 단축 마라톤에서도 전교생중에 거의 꼴찌로 겨우 들어왔다.

그러니 선착순에 두어 바퀴만 돌고 나면 벌써 얼굴이 노래져 허걱댄 터에 천자봉 구보라니!


뒤에서 몰아대는 교관들의 몽둥이에 떠밀려 헉헉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간신히 정상에 도착한 것이 무엇보다 힘든 기억이다.

그렇게 죽을둥 살둥 도착하고 보니, 어라? 벌써 거기까지 한 걸음에 휑하니
힘도 안들인 표정으로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이동주보, 찐빵장수 아줌마들.

그 시절(1964년), 대부분이 다 그랬지만, 군대 생활 2년 반 동안
집에서 용돈을 얻어다 쓴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아예 없었던 터였고
정해진 급식에서도 이래 저래 허술하게 빠져나가 부실하기만 했던 군대 급식.

한창 먹어댈 젊은 나이에 고된 훈련에 늘 허기진 배를 안고
먹을 것만 보이면 퀭한 눈을 두리번거리며 껄떡였던 모습을 돌아보면,

배고픔의 고통스러운 기억도 기억이려니와, 배고픔 앞에 맥없이
허물어져 버렸던 동물적인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이

더 한층 아픈 기억으로 입맛이 써지기도 한다.

그날 천자봉 휴식 시간에 같이 입대한 친구와 둘이서,
찐빵 장수들로부터 아예 멀찍이 떨어져 누워,
아귀 같은 먹고 싶은 유혹과, 사 먹을 형편이 안 되는 무력감에 휩싸여,

그래도 어느 친구가 찐빵 하나 나눠 주는 놈 없나 하고 - 껄떡이면서 나눈 말,

“야, 우리 훈련소 끝나고 나가면 말야, 너하고 나하고
찐빵을 사서 산더미같이 쌓아 놓고 실컷 한 번 먹어 보자.”
~ 고 약속을 했다.

 


그 후 해병대 생활안에서 겪는
계급차, 학력차, 사고의 차, 성격차, 환경차, 능력차등으로
매일같이 겪는 심각한 갈등과 여러가지 고통에 비하여,

훈련소에서 겪은 이 어려움은 그 고통에 있어서 비교하자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

사회 생활로부터 환경이 막 바뀐 미지의 세계,
불안 속에 날마다 새로운 극한 상황을 경험하게 되는 충격의 연속이었던
신병 훈련소에서의 처음 경험은 가장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아닐까?

그래도 우리는 그 모든 어려움을 거뜬히 이겨냈다.
그래서 우리 해병은 어떤 미지의 세계도, 어떤 미래도 결코 두렵지않다 !!!!

(진해 신병 훈련소 8 주 훈련을 마치고)


그 때 우리가 하루 하루 겪고 또 이겨냈던
그 충격들보다 더한 것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이것이 우리 해병의 귀하고 값진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 파월 제1진 청룡부대 2대대 해병158기 이장원 선배님의 월남전 참전수기

         '아! 청룡이여 제1권 캄란에서 호이안까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