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 1진의 기억 -(10) - 출전 명령 !!!!!
<출전 명령 >
옛날 포항 소총 소대에서의 매년 8월의 이벤트는
누가 또 10월 1일 국군의 날 분열식 행사에 차출되어 나가는가 였습니다.
차출되면 9월 한 달을 꼬박 여의도 모래 사장에 개인 천막치고
(그 때는 윤중제도 없었고 여의도 비행장이 있던 시절) 국군의 날 분열식 연습했다고 합니다.
행사를 마치고 오면 제병 지휘관 표창 또는 대통령 표창을 받을 수도 있어서
장교나 하사관은 진급에 보탬이 되고 특별 휴가도 받지만
병들에게는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1965년 9월 - 이번에는 청룡 여단 결단식 분열 행사를 위해,
2연대(오천 쪽)에서 활주로 까지 완전 군장을 메고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그 분열식을 연습 했다는 것 아닙니까.
졸병들 힘드는 줄 아니까 청룡 부대장으로 임명된 이봉출 장군이 훈련 중에
장병들과 함께 “해병대 곤조가”를 한 목소리로 합창하기도 했습니다.
분열식!!!!
이 행사 또한 힘드는 만큼 군대 생활 중에서 한 번쯤 경험해 봄 직한 화려한 행사입니다.
일상에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모습과 구령이 있습니다.
제병지휘관 이하 장교 지휘관들은 모두 지휘도 칼을 찹니다.
“장교 앞으로!”란 구령도 있고 -
사열대 앞을 지나면서 - “오른 편 봐!” (또는 ‘우로 봐!’) 하는 구령에
지휘관은 칼을 오른 편 높이 치켜 들었다가 아래로 내리는 경례를 합니다.
군대 생활 중 가장 엄숙하고 가장 화려한 순간입니다.
그러니 이 사열을 받는 사람의 기분은 어떻겠습니까?
1965년 9월 20일 오전 10시.
대통령이 참석하여 21발의 예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해병 제 2여단 창설 명령인 국본 일반 명령 제 5호가 낭독되고
초대 여단장 이봉출 장군에게 부대기가 수여 되면서
파월 해병 2여단 창설식이 그렇게 거행 되었습니다.
-- 국가의 현 싯점을 인식하고 자유 십자군으로써
-- 해병의 명예를 이역 만리에 선양하라 -- 는 대통령의 - 출정 명령 - 이 끝나고
이봉출 초대 청룡 부대장의 출정 답사가
포항 연병장을 감격으로 휘몰고
5천여 파월 용사의 패기넘친 사열과 분열이 끝나면서
1965년 9월 20일
파월 해병 2여단은 - 그렇게 창설 되었습니다.
(청룡부대 파월전 최후(?) 면회 사진. 왼쪽이 해간 18기 통신장교이셨던 외삼촌(1979년 작고)이시고 오른쪽이
선친(1980년 작고)이십니다)
청룡 부대 창설 분열식이 끝난 직후 잠시 가족 면회가 허락되었습니다.
전장으로 떠나기 전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순간입니다.
아버지와 외삼촌이 면회를 오셨습니다.
외삼촌 빽으로 해병대에 들어 왔는데 이제 그 사실이 외삼촌에게 부담이 된 듯 했습니다.
조카를 전쟁터에 보내게 되었으니......
특히 아버지에게는 외아들을 전쟁터에 보내는 일이라 마음이 가볍지는 않은 듯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짓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 건강하게 잘 다녀오겠습니다 -- 하고 말했습니다.
1965년 9월 28일.
각 부대 장비 책임 군수요원들이 LST로 장비를 싣고 선발대로 먼저 출국했습니다.
본대는 2만 5천 톤급 수송선으로 갔지만
700 톤급 LST로 월남까지 간 군수 요원들은 행해 중 더 멀미 고생을 했을 겁니다.
그리고 닷새 후인 1965년 10월 3일, 드디어 --
파월 전투부대 제 1진 청룡부대 본대는
3군에 앞장서서 - 미국 수송선에 실려 월남으로 떠나라는
출전 명령 - 떨어졌읍니다.
출처 : 파월 제1진 청룡부대 2대대 해병158기 이장원 선배님의 월남전 참전수기
'아! 청룡이여 제1권 캄란에서 호이안까지' 중에서
'★월남전 참전수기 > 해병158기 이장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룡 1진의 기억 -(12) - 월남 상륙. (0) | 2015.01.07 |
---|---|
청룡 1진의 기억 -(11) - 월남으로 가는 거대한 수송선. (0) | 2015.01.07 |
청룡 1진의 기억 -(9) - 다가오는 출정 전야. (0) | 2015.01.07 |
청룡 1진의 기억 -(8) - 파월 휴가. (0) | 2015.01.07 |
청룡 1진의 기억 -(7) - 월남 특수전 교육대 (0) | 2015.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