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참전수기/해병158기 이장원

청룡 1진의 기억 -(8) - 파월 휴가.

머린코341(mc341) 2015. 1. 7. 16:07

청룡 1진의 기억 -(8) - 파월 휴가.

 

현역 시절 휴가에 얽힌 이야기 ? 모두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시지요.

아!!
할 이야기가 많으시다 구요. ! 한 번 털어 놓아 봅시다.
군대 생활 무용담에서 빼 놀 수 없는 부분 아닙니까?

그러나 나는 군대 휴가와는 참 인연이 없었습니다 ~ 지금은 365 일이 휴가입니다만 --
직장 휴가도 특별히 기억나게 보낸 적이 없었습니다.

29개월 내내 정기 휴가는 한 번도 못 가 봤습니다.

1월에 실무 배치를 받았으니 통상적으로 그 해 구시월이나 되어야
정기 휴가 차례가 되는데 7월부터 파월 특별 훈련에 들어 갔으니 이야기는 끝난 거였지요.

월남서 귀국이 1966년 11월 18일이었는데
또 다시 정기 휴가는 아닌 귀국 특별 휴가로 10일 받았고

12월, 1월 지나 2월에 ! 제대했으니 결국 정기 휴가는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하고 군대 생활 끝!

1965년 8월 중순경,휴가 명령권은 연대장에게 있지만
월남 가는 판에 절차 기다릴 처지도 아니고,
내가 대대 인사(S-1)에 있으니까 그냥 인사 부관과 선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대대장 도장 콱 찍어서 열흘짜리 휴가증 만들어 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진해에서 포항으로 올때 - 휴가 갈때 - 그리고 월남 수송선을 타러 갈때 - 추억의 포항역 (요즘 자료사진)

그 때 우리 집이 강원도 정동진에 있었는데 중앙선
타고 영주로 올라와 다시 영동선으로 갈아 타는 겁니다.

영천에서 갈아 타는 중앙선 군용 칸에서의 해병대의 횡포(?)는
육군들에게 악명 높은 전설이지만 나는 특별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 전설의 이야기는 여러분들이 좀 해 주시지요.

영주에서 기차를 갈아 타는데 육군 헌병 놈이 다가와 휴가증 보자고 하더니
그냥 낚아 채 가 버리는 겁니다. 따라오라는 거지요.

그러나 월남 가게 된 해병대가 육군 헌병 놈 따라가 빌게 됐습니까?

속으로 -

"야 이자식아! 잘못 돼 봐야 월남 안가는 일 밖에 더 있겠냐? 안가면 나는 더 좋다!"
그러고 기차에서 꼼짝 않고 버텼습니다.

기차가 떠나는 데도 내가 나타나지 않자 이놈이 놀라서 창 밖으로 뛰어 와,
나보고 내리라고 손짓 하길래 나는 짐짓 - "잘 해 봐라" 하고 손 흔들며 그냥 떠났습니다.

일반 휴가였다면 다음 열차를 타더라도 내려서 휴가증 찾았겠지만요.

그리고 정동진에 있는 집으로 갔습니다.

정동진!!!
지금은 “모래 시계” 덕분에 관광 명소가 되어 해돋이 열차가 간다 야단이지만
1965년 8월, 그 때에는 그저 작은 탄광촌의 바닷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정동진 위의 안인진 쪽이나
아래의 옥계 쪽의 해변은 가히 천하의 절경이었습니다.
요즘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바닷가와 비교할 바 아니었습니다.

외아들을 월남 전쟁 터로 보내는 집안 분위기가 결코 가볍지는 않았지만,
정동진 모래밭에서 새까만 얼굴로 오징어 널어 말리고 있던 미쓰 정동진,
우리 사촌 형수 후보와 초면 인사도 하고, 옥계 쪽 해안에서 홍합 캐고 수영하며

꿈 같은 열흘을 보냈습니다.


(정동진 바닷가에서. 서 있는 사람은 해군 출신 사촌 형)

자, 이제 휴가는 끝나고,! 휴가증도 없이 귀대할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짧은 머리지만 사복으로 입고, 새벽에 강릉 발 포항 행 시외 버스를 타고
장장 13 시간을 비포장의 동해안 도로를 따라 하루 종일 내려가는 겁니다.

옥계,망상, 묵호, 북평(현재 동해시), 삼척, 호산, 죽변, 울진,
평해, 후포, 영덕,흥해로 해서 포항으로 들어오는 겁니다.

왼편 언덕 아래로 보이는 바다 위로
솟아 오르는 해와 해안이 정말 절경이었습니다.

군인들이 휴가를 오가려면 반드시 검문소를 거쳐야지요.

포항에서는 효자 검문 소가 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드디어 버스에 헌병이 올라와 훑어 봅니다.

내 앞에 와서 - "신분증 좀 봅시다"

- 아! 저는 학생인데요, 학생증을 안가지고 왔는데요 - "그래요??" - 그냥 내려 갑니다.

군인 같기는 하지만 나가는 것이 아니고 들어오는 것이니
더 시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통과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겨우 월남 가기 전 억지 임시 휴가 한 번 다녀와
다시 월남전 훈련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출처 : 파월 제1진 청룡부대 2대대 해병158기 이장원 선배님의 월남전 참전수기

         '아! 청룡이여 제1권 캄란에서 호이안까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