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人生旅路 - 1. 해방병단
(4) 중국인의 뇌물 공세
화재사고가 발생했던 그 통영호의 부장으로 있는 동안 나는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즉 어느 날 금괴(金塊), 마약 등의 밀수선박을 검색하던 중 10여정의 소총을 발견했던 통영호 승조원들은 정장의 지시에 따라 검색을 하고 있던 그 대형 정크선을 기지로 끌고 와서 본격적인 검색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중국과의 무역 거래가 성행하고 있던 인천항에서는 중국에서 온 많은 배들이 출입하고 있었고, 그러한 배들 가운데는 금괴나 마약 등의 금수품을 싣고 왔다가 통관을 할 때 적발이 되거나 밀매하는 과정에서 적발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 날 무기를 소지하고 있다가 적발된 그와 같은 정크선은 때에 따라서는(특히 야간의 경우)해적선으로 둔갑할 수도 있는 배들이었고, 또 그러한 무장선들은 검색에 응하지 않고 총을 쏘며 달아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따라서 속력도 느리고 장비도 불충분한 당시의 소해정으로 그러한 배들을 나포하거나 검색한다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었으므로 우리는 늘 그러한 위험부담을 안고서 근무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의 그 정크선을 끌고 왔던 그 날 오후 나는, 때마침 정장이 외출하고 없는 사이에 통영호를 방문한 비단옷을 점잖게 차려 입은 40대의 한 중국인 신사를 대면하게 되었다. 그 비단옷 신사는 두 사람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의 손에는 신형 대형 트렁크 두 개가 들려져 있었다.
갑판 위에서 그들을 맞이하게 된 나는 직감적으로 저 신사가 기지에 끌어다놓은 저 정크선 때문에 온 사람이려니 하는 생각을 했다.
근무병의 안내를 받아 나에게로 다가온 그 비단옷 신사는 굳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으려는 듯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 내 말에는 대꾸를 하지 않고 점잖은 중국말씨로 이런 말을 했다.
즉 "우리 중국 상인들이 본의 아니게 누를 끼치게 되어 미안하고 죄송하외다.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의 친선과 우의를 생각해서 너그러이 잘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가 한 말은 손에 트렁크를 들고 있던 수행원이 우리말로 통역을 했는데, 그가 통역을 마치자 신사는 그 수행원으로부터 트렁크를 건네 받더니만 "이것은 본인이 드리는 선물이니 받아 주기 바란다"고 하면서 내 발 앞에 내려놓는 것이었다.
그 신사의 말씨나 테도에는 매우 품위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려 하지 않는 이 신사가 혹 외교관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보면서 트렁크 속에 든 선물의 정체를 확인해 보고자 옆에 서 있는 대원을 시켜 그 트렁크를 열어 보게 했더니 뜻밖에도 그 안에는 차곡차곡 챙겨 넣어 둔 백 환권 새 지폐가 가득 차 있었다. 나로서는 너무나도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다음 순간, 나는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른 분노 때문에 발끈 화를 내며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 모양인데 나로서는 용서할 수 없소. 이 트렁크 여기 두고 돌아가시요."하고 거칠게 내뱉었다.
내가 그런 반응을 보이자 비단옷 신사는 입가에 계면적은 미소를 띄우며 거듭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의 친선과 우의를 생각해서 관대히 처리해 주기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물러났다.
한편 그들이 사라진 뒤 나는 정장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그러한 사실을 보고한 다음 일건 서류를 작성해서 뇌물로 가지고 왔던 그 트렁크와 함께 관할 세관에 인계하였는데, 해군 청년 장교의 꿋꿋한 기백으로 중국인 신사의 뇌물공세를 물리쳤던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나는 청년 장교 시절의 그 신념에 찬 자화상을 그리운 마음으로 대하게 된다.
출처 : 예비역 해병대장 강기천(姜起千) 제7대 해병대사령관님 회고록 "나의 人生旅路"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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