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생활중 에피소드(9)
와우 아파트에서 간 친구
제 동기생중에는 1970년인가 서울 창천동 와우 아파트 무너질 때 일가족(본인,부인과 아들)이 모두 같이간 친구가 있습니다.
미 해병 상육전 학교에 유학 갔다가 아버님 생신일에 맟쳐 10일간의 휴가도 마다 하고 일찍 귀국하여 어렵사리 마련한 자신들의 보금자리 아파트에서 이틀밤을 자고 무너지는 바람에 세 식구가 같이 짧은 인생을 마감하였읍니다.
그의 부인을 우리가 처음 맞난곳은 명동에 있던 어느 음악 감상실이였는데 우리가 2학년 여름 휴가때 우연히 그 곳에 들어 갔다가 빈자리를 찾아 앉다보니 그 옆 자리에 여학생들이 두어명 있었는데 그의 부인도 그때 거기 계셨습니다.
젊은이들 끼리 서로의 옆자리에 있다보니 자연히 대화가 이루워 졌는데 나의 기억으로는 우리가 2학년이라니까 자기들은 일학년이면서,3학년이라고 우릴 속이려 했던 것 같았읍니다.
제 친구는 그 당시 우리 일행 3명에게 그의 부인(당시 여학생)을 지적하면서 자기가 이미 점찍었으니 딴 친구들은 건드릴 생각을 말라고 일찍암치 선언을 하고 럭비 선수답게 적극적으로 대쉬를 하여 접근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결국 이들은 그의 부인이 대학을 졸업한후 결혼하여 우리들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와우 아파트 사건이 났을 때 마침 저는 사령부에 근무하고 있었으므로 다른 동기생 두명과 같이 사고 현장엘 급히 달려 갈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 군복에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으므로 현장에 쉽게 접근할 수가 있었고 육군 공병대원들이 씨멘트 깨는 기계를 갖이고 무너져 내린 아파트 바닥에 구멍을 뚤으며 인명 수색 작업을 할 때 저의 친구 살던 동,있을만한 장소를 서너 군대를 뚤은 끝에 결국엔 그 친구 일가족 세명을 찾아 내어 무너진 씨멘트 구덩이 속에서 일가족 모두를 끌어 내었읍니다.
(용서하십시오. 솔직히 말해서 저는 그때,혹시 젊은 이들이 옷도 않 걸치고 알몸으로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한순간 하였으나, 다행이도 이들은 다 옷들은 입고 자다가 변을 당한 것 같았읍니다.)
그산 중턱에 높이 섣던 아파트가 폭삭 내려 앉은걸 상상해 보십시오.
여기 저기서 씨멘트 덩어리에 깔린 시신들을 추스르고 있고 공병대원들은 여기 저기서 인명 찾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데 가족들은 통곡 하고 있고,생 지옥이 다른데가 아닌 바로 이곳 와우 아파트 였습니다.
이들은 일가족이 같이 합장되어 국립묘지 서 14 묘역(지금은 묘역 명칭이 19로 바뀜)에 안장 되어 있습니다.
지난 현충일에도 여러 동기생들 하고 같이 국립 묘지에 참배하였는데 저는 그의 묘역에서는 남들보다 더욱 감회가 깊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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