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人生旅路 - 2. 6·25전쟁
(2) 해군 육전대-(5)
육전대가 해체되기 전에 진해로 돌아오게 되었던 나는 그 동안 가입대 상태에 있다가 8월 5일에 입대식을 거행해 놓고 제식교련등의 기초교육을 실시하고 있던 17기 신병들의 교육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런데 내가 신병교육대에 복귀한 지 약 1개월 후 나는 뜻밖에도 구암산 전투 때 실종이 된 대원 한 사람(이 모 수병)이 북한군의 통신기 한 대를 등에 업은 차림으로 귀대하는 바람에 얼마나 놀랍고 반가웠던지 그를 끌어안고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더구나 그 대원은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입대했던 나이도 어리고 체구도 왜소한 귀염둥이 소년병이었기에 신병훈련소를 수료한 후 줄곧 나의 전령으로 근무하다가 7월 9일 밤 포항기지 창고 속에서 육전대를 편성할 때 소총중대로 차출이 된 그러한 대원이었으므로 전투 중 그가 실종이 되었다는 보고에 접했을 때 나는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느꼈었다.
신병훈련소로 돌아왔던 그 이 모 수병은 실종자에 대한 처리규정에 따라 일단 통제부사령부의 정보기관으로 보내져 조사를 받은 다음 신병훈련소의 조교로 근무하다가 제대를 했는데, 그가 조사관 앞에서 구술한 실종과 귀대에 읽힌 이야기는 대충 이러한 것이었다.
즉 구암산 전투 때 골짜기에 숨어 있던 적병들에게 붙잡혀 포로가 되었던 그는 중대장으로 보이는 북한군 군관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았다고 하는데, 자기를 심문한 그 군관이 「해군 물개부대」(해군육전대)의 병력과 장비 및 지휘소의 위치와 대장의 성명 등을 물어본 다음 자기가 마음에 들었던지 고분고분 말만 잘 들어 주면 살려주겠다고 하기에 마지못해 그렇게 하겠다고 했더니 입고 있던 군복을 그대로 착용한 채 비무장한 몸으로 무전기 한 대를 등에 업고 따라다니라고 하더라는 것.
그래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으면서 그 군관을 따라다니다가 9월 20일 아군이 포항을 탈환한 후 패주하는 적을 쫓아 흥해북방으로 밀고 올라갈 때 돌연히 나타난 우군 전폭기의 폭격과 기총소사 덕분으로 혼비백산 달아나고 있는 그 군관을 따돌리고 구사일생 후방으로 탈출하여 포항기지를 거쳐 진해로 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출처 : 예비역 해병대장 강기천(姜起千) 제7대 해병대사령관님 회고록 "나의 人生旅路"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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