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5) 시작된 전투
헬기를 기다리는 중대원들
전령이 수통의 물과 휴지로 옥 소위의 장구였던 철모와 방탄조끼 그리고 M-16 소총에 묻어있던 피를 닦느라 고는 닦았지만 나는 아직도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소총 구석구석에 흘러 들어가 응고 된 채 말라붙은 피는 어두운 참호 속이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구정을 사이에 두고 3일간의 휴전을 피아간에 해 놓고도 그 첫날부터 대대적인 공세를 취한 적들은 역시 공산주의자들의 속성 그대로를 보여 주었던 것이며 이로 인한 아군들의 피해는 더욱 크지 않을 수 없었다.
급히 아침부터 호이안 작전에 투입 되었던 5대대 27중대는 안타깝게도 적과의 조우에서 불행한 일을 맞게 되었고 포탄에 희생이 된 옥 소위와 분대장들은 모두 메드벡 헬기(사상자 수송 헬리콥터)를 타고 후송이 되었다.
그리고 야밤에 전투 식량인 C-레이션을 실은 수륙 양용차를 타고 적들이 포진한 숲을 뚫고 급히 이곳을 찾아 온 나는 5대대 27중대 1소대장의 자리를 메꾸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호이안이 아군의 다른 전투부대에 의해 임시로나마 평정이 되어 가고 있었고 27중대는 다시 병력을 수습한 뒤 호이안의 외곽 어느 공동묘지에서 참호를 파고 내일의 작전을 위해 밤을 지새우고 있는 중이었다.
“철커덕~” 나는 어두운 참호 속에 쭈그리고 앉아 총알이 빈 M-16소총의 노리쇠를 뒤로 당겨보기도 하고 “찰각”하고 격발도 시켜보면서 전령이 시키는 대로 한번도 만져 보지 못했던 총을 다루고 있었다.
원래 해병대 소대장의 소지무기는 권총으로 되어있었으나 이 곳의 상황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막상 M-16이라는 첨단의 소총을 쥐고 보니 든든한 기분이 이를 데 없이 느껴졌다.
나는 곧 3개 분대장들을 불렀다. 이미 내가 맡은 1소대는 소대장과 3개분대장 모두를 잃었기 때문에 그 자리는 배속 된 두 명의 화기분대장과 한명의 선임 병으로 채워져 있었다.
서로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 참호 밖 어둠 속에서의 첫 대면이었지만 나는 자신을 가지고 패기 있게 지쳐있는 분대장들을 안심시키려 애를 썼다.
그리고 나는 청음초의 운용이 궁금해 “각 분대마다 전방으로 최소 50미터 정도까지는 나가야 되는데.. ”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더니 내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 분대장이 각 분대 청음초들이 모두 전방으로 나가 있긴 하지만 숲이 너무 우거져 20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끈으로 청음초의 손이나 발을 묶어 본대에 있는 대원들과 서로 잡아당기면서 신호를 하지 않으면 행방불명이 될 수도 있다고 대답을 했다.
나는 그 말에 잠시 기분이 얹잖긴 했으나 새로운 현실을 느끼면서 그저 그러냐고 만 하고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무덤으로 들어 찬 공동묘지에서 더구나 묘지와 묘지의 옆구리를 깊게 파서 그 좁은 참호 속에 들어앉은 내 처지가 너무나 가련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내 곁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시간이 되면 서로 임무교대를 하는 내 전령과 통신병의 노련해 보이는 모습은 많은 걱정을 덜게 했다.
“소대장님 좀 주무시지요.”
“아니 괜찮아..”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교대를 할 때마다 전령과 통신병이 계속 건네는 그 말은 나의 신경을 몹시 거슬렸다. 전쟁이라고는 태어나 처음해보는 신참의 소대장이 어디 잠이 올 리가 있겠는가?
시간이 흘러 그래도 날이 어슴푸레 밝아 올 때는 내 마음이 푸근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비몽사몽간이었을까?
“탕~타타타타타타탕...” 하는 총소리가 거세게 들려왔다.
솔직히 나는 우리 소대가 어디서 어디까지인지도 확실히 알 수가 없었을 뿐더러 총알이 어느 방향에서 날라 오고 있는지도 가늠할 수가 없었다.
화기소대장을 하는 털보 정 중위가 중대장과 함께 있었는지 우리 소대의 중앙으로 총알이 날라 오고 있으니 정면의 분대만 응사를 하라고 내 통신병을 통해 나에게 전달하는 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들렸다. 그러더니 곧 중대장이 나를 찾아 다시 한 번 털보 정 중위가 했던 말을 그대로 무전기를 통해 직접 지시를 했다.
나는 얼른 참호 바깥으로 뛰어나가 큰 소리로 소대원들에게 이 말을 전해야 했으나 허리를 펼만하면 총알이 지나가는 소리가 마구 들려 본능적으로 일어섰다 앉았다하는 동작만을 반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윽고 내 동작을 본 전령이 나를 보기가 안타까웠던지 얼른 참호 바깥으로 굴러 나가서는 묘지 뒤에 붙어 “2분대만 응사하고 나머지 분대는 사격 끝!”하고는 두 손을 입에 모으고 고함을 쳤다.
잠시 후에는 적의 사격이 멎어 우리 2분대의 응사도 끝이 났다. 나는 전령을 한 번 쳐다보고는 마음속으로 “응, 이번에는 네가 내 대신 소대장을 했구나” 하고 고마움을 느꼈으나 내가 먼저 뛰어 나가지 못 했던 것이 잠시 내 스스로의 부끄러움으로 여겨졌다.
막상 날이 밝으니 어제의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던 웬만한 부상병들은 후송조차 가지 못하고 그대로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중대에 나와 있는 미 해병대 앵그리코맨(항공 함포 유도통신병)들은 메드벡 헬기를 계속 부르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워낙 미 해병대의 피해가 커서 자기들 사상자를 실어 나르기도 손이 모자라 응답조차도 없는 지경이었다.
어떤 대원은 “야! 이 개새끼야! 오지도 않는 헬기는 왜 자꾸 불러?”하고는 엥그리코맨에게 발길질을 했다. 나는 흥분한 대원을 말린 후 1개 중대에 2명씩이 배치 된 미 해병대 앵그리코맨과의 첫 대면을 했다.
이틀 전부터 시작된 적의 구정공세에 미 해병대도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었고 나와는 의사소통이 잘 되니 앞으로 대화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자기들의 의중을 전했다.
나는 잠시 후 새벽에 응사를 할 때 왜 총알에 화기소대장과 중대장이 그렇게 신경을 썼는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젖줄인 1번 국도를 적에게 점령당하고 보니 모든 보급이 일시에 끊겨 총알은 물론 심지어는 전투 식량인 씨레이션도 바닥이 날 지경이라는 것이었다.
하기 사 지금 공중에서 투하되고 있는 아득한 거리에서의 보급 낙하산이 어디의 어떤 부대에 떨어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결국은 미군들이 그 미봉책으로 수송기로 포탄이며 탄약이며 식량들을 낙하산을 이용해 보급을 해주고 있는 것이 눈으로 보이고 있었다.
씨레이션으로 아침을 끝낸 우리 27중대는 대대의 명령에 따라 재정비를 위해 중대진지로 돌아가게 되었다. 전령의 말에 의하면 대부분의 중대들이 막 추라이에서 이동을 했기 때문에 진지들을 미처 구축하지 못했는데 그래도 27중대는 운이 좋아 해변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사구의 끝자락에 위치한 5고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곳은 해변과 평원을 가르고 있는 높다란 사구의 끝이 되어 적의 이동을 관찰하거나 방어를 하기에는 안성맞춤인데 다만 기분 나쁜 것은 미 육군 1개 중대가 전멸을 한 후 버리고 간 진지라는 소문이 나돌아 마음을 언짢게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일열 종대의 대열로 이동을 했으나 개인 간의 거리를 한국에서와는 달리 10보 이상을 띄워서 걸었다. 그것은 지뢰나 부비트랩(속임수를 써서 장치한 폭발물)으로 인한 희생이 많아 불상사가 나더라고 그 피해를 줄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뒤로 전달, 부비트랩 발견!”
앞서가는 첨병들의 소리가 들리면 다음에 따라가고 있던 분대에서도 다시
“뒤로 전달 부비트랩 발견!” 하고 복창을 해 계속 그런 방법으로 후미까지 전달을 해 나갔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부비트랩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포항에서 교육을 받을 때의 부비트랩과 현지의 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머릿속으로 비교를 해 보았으나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이 여겨졌다.
그러나 부비트랩은 그 형태가 각 양 각색으로 속임수가 많아 결코 마음을 놓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 했다.
8키로 쯤 거리에 떨어져 있는 중대본부도 이제 절반이나 온 셈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따 다 당 당 당 당..’하는 소리와 함께 내 앞에 선 전열이 순식간에 흩어져 없어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대원들이 붙는 방향으로 뒤늦게나마 뛰어가 그렇게 높지도 않은 언덕에 가슴을 붙이고 무조건 전방을 향해 총을 쏘아댔다.
내가 난생 처음으로 전쟁터에서 적을 향해 총을 쏘아보는 경험이었다.
잠시 후 “사격 끝!”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모두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열을 갖추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고 나도 그 속에 끼어 터벅터벅 대열을 따라 몸을 움직였다.
이때만 해도 나는 내 스스로가 모진 전쟁의 도가니 속으로 막 빠져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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