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들의 이야기

3일 해병

머린코341(mc341) 2015. 1. 30. 03:00

3일 해병


인천 연수구 옥련동 / 오춘근

 

사는 건 광주에서 살았지만 본적은 부산이라 군대 갈 때 신검을 부산진역에 소재한 병무청에서 받았다. 지원도 하지 않았지만 그날은 내가 생긴 게 해병스러워서인지 해병대에 차출되었다. 영장도 해병대로 나왔다.

 

(다들 해병대는 지원기수로 알고 있는데 그때만 해도 1년에 한 번 부산과 제주에서 군 수급상 차출기수를 뽑을 때였다. 해병대 다녀온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짝수 기수만 해당된다. 참고로 난 88년 7월말 입대 600기)

 

병무청직원 - “여러분들은 해병대가 좋아서 입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육군으로 갈 사람은 지금 보내 줄테니 나와라!”

 

하는 병무청직원 말에 ‘무슨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다시 나갈까...’ 생각했는데, 그래도 3명이 해병대가 싫다고 뛰어나갔다.

 

‘머리 빡빡 밀고 왔는데 송별식들 다 하고 왔는데, 어쩌려고 그러나~?’

군기 바싹 들어 겁먹으면서 다시 한번의 신체검사를 실시했다.

근데 갑자기 군의관께서 “야! OOO 훈병! X-RAY검사 다시 해야 한다!” 등.

 

몇 명의 다른 훈련병과 일반적인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된 애들과 정밀검사에 들어갔다. 군의관이 나에게

군의관 - “야, 너 입대 전에 잉크 마시고 들어왔지? 군대 가기 싫어서 그랬지? 어때 내 말이 맞지?” 하고 툭 던져보는 거다.

 

나 - “왜요? 저는 아무 것도 안 먹고 들어왔습니다!”

군의관 - “근데, 너 결핵이 나왔다. 검사해서 너 사기 치면 영창 갈 줄 알 어!”

라며 겁을 주었다. ‘아니 내가 결핵에 걸렸으면 수술하고 들어오지 그냥 들어왔겠느냐? 난 몰랐다. 전혀 몰랐다.’ 했더니, 자기네끼리 쑥덕쑥덕 하더니 5급으로 확정 됐으니 집으로 가란다. 포항까지 왔는데 웬 집?

 

나 - “안 돼요! 잘할 수 있습니다!”

군의관 왈 - “사회 나가서 봉사해~! 끝!”

 

귀향 차비까지 챙겨주었다. 포항에서 광주행 버스타고 오는 88고속도로는 왜 이리 길기도 하고 슬픈지 ‘죽을병이 걸렸구나’ 앞이 캄캄했다.

 

‘군대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큰 병인가보구나’

 

결핵이란 건 크리스마스 때 씰 사면서 들어만 봤지, 정확하게는 몰랐었다.

 

광주에 와서 동사무소에 귀향신고를 하는데 ‘5급 민방위’라고 해서 난 또 향토방위가 민방위인줄 알고 궁금해서 언제 방위에 입대해야하느냐 했더니,

담당자 - “야! 넌 그냥 민방위야!”

나 - “그게 방위예요?” 그랬더니

담당자 - “그게 아니고, 넌 군대 아예 빠진거야! 40세 까지만 1년에 4시간 짜리 두 번 교육만 받으면 돼!”

 

‘에고! 이거 진짜 죽을병이구나’ 심각했다.

 

처음 신검 받을 때 정상이었는데 약 1년 후 입대 후 재검 때 나온 결핵이기에 초기였고, 활동성도 아니고 전염이 안 되는 비 활동성이라 치료가 비교적 간단했다. 결핵은 4대 법정 전염병이라 비 활동성이라도 집으로 가야된다고 한다. 다행히 그 후로 정상적인 사회생활하면서 술, 담배 1년 정도 안하고 4개월 약 먹고 완치됐다 ㅎㅎㅎ

 

마흔 중반이 넘은 지금도 해병대 군인아저씨들 보면 다 형 같다. 부럽다.

 

“3일 해병대 6끼 먹고 나온 해병 들어 봤어? 안 들어 봤으면 말을 말어~!”

 

헌병 둘이서 양쪽 팔을 끌고 “넌, 다시가야 돼!”

 

난 울부짖으며 “NO! 아니다! 내가 안간 게 아니고 군의관이 집에 가라고 한 거다!” 지금도 이렇게 엉엉 울면서 잠에서 깨어나는 이런 끔찍한 꿈을 열 댓 번은 더 꿨다.

 

그런데! 그렇게 꿈으로만 꾸던 게 현실이 될 뻔한 사건이 터진거다.

 

때는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해로 기억된다.

 

우연히 모 경제신문을 읽다가 ‘1988년도 8월에 해병대에 입대한 사람이 10년이 지나 다시 군대를 가야한다.’ 라는 기사를 보았다.

 

내용은, 해병대에 입대해서 폐결핵으로 판명돼 귀향조치 받아 결핵 치료를 다 끝나고 결혼 후 자식도 있던 사람이다. 모 대학의 직원으로 근무 중인 사람인데 해외출장을 가려고 공항에서 출국하려다 출국심사에서 딱 걸린거다. 법상으론 군대에 안 가고 기피한 자로 군대에 가야 된다고 나온 거다.

 

그 사람은 행정소송까지 했지만, 끝내 다시 군대에 갔다. 결핵이 치료가 다 되었으니 다시 가야한다는 것이다. 기사를 본 사람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때 사건은 그 당시 꽤 이슈였다. 아침방송까지 나온 일이다.

 

난 88년도 7월말에 입대했으니 나와는 한 달 상간에 일이여서 혹시나 하여 결혼해서 살고 있는 인천병무청에 확인을 하러 갔다. 담당자한테 자초지종을 애기하니 담당자 왈 “당신도 다시 입대해야합니다.” 라고 한다.

 

무슨 말이야? “난 애가 둘이나 되고, 무슨 이 나이에 다시 가야합니까?”

 

했더니 담당자 왈 “그전엔 30세 이상이면 입대하지 않았지만 대선 때 모 후보 아들 때문에 민주당에서 법을 바꿔 35세까지로 바꿔서 훈련소 입소 후 공익으로 3년을 근무해야합니다.”

 

그때 내 나이가 32세인가 될 때였다. 난 밥을 안 먹으면 손이 떨리는 사람인데 그 말을 듣고는 두 끼를 굶어도 배가 고프지가 않았다.

 

제대로 알아보자며 내 신분증과 연락처까지 부산 병무청에 팩스로 보낸 다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냥 도망치려고 해도 때는 늦으리, 였다

 

그 병무청 직원은 한 건 잡은 거다. 그 직원에 눈빛이 광기가 흐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팩스결과가 한 일주일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그 일주일은 어떻게 지나간 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당장 회사도 관둬야 하나?’ ‘관두면 뭘 하나?’ ‘애들은 어떻게 키우나?’ 별별 오만가지 잡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날들이었다.

 

며칠 후 결과가 나왔다 “아저씨는 안 가도 되겠네요.”

 

우우후! 와우! 그때 기분은 복권에 당첨이 되면 기분이 그러할까? 붕붕 하늘로 날아가는 그런 기분이었다.

정확한 사유는 이러했다.

 

모 대학 직원은 그 당시 담당 해병대 상사의 실수로 다시 재검사를 받아 진단서만 제출하면 나처럼 면제인데 진단서를 제출하라는 통보를 보내지 않은 것이다. 그 담당 상사의 실수로 다시 입대해야하는 상태였던 거다.

 

10년 지나서 다시 재검을 하니 폐결핵은 다 나았으니 당연히 재입대인 것이다. 억울하지만 그 사람은 재판까지 받고 패소, 다시 입대하였다.

 

법은 어쩔 수 없는 거였다. 나 같은 경우는 군의관이 훈련소에서 진단서를 끊어 병무청에 제출한 상태였다. 간단한 차이가 엄청난 결과로 귀결됐다.

 

3일 해병이 사연은 참 많다.

 

고등학교 친구 중에 OOO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하곤 고2 때부터 30살 중반까지 거의 매일 그 당시의 모든 추억을 간직 하고 자석처럼 마냥 붙어 다녔다.

 

스무살 초, 그 친군 군대를 지역관계 이유로 신검 때 현역을 받아도 영장은 방위로 나오는 그런 취약지역이었다. 울 동창들은 거의 방위출신이 많다. 난 본적 부산이라 현역 영장이 나왔었다.

 

그 당시에 그 친구완 하루도 안 빠지고 만나고 서로 싸우면서 깔깔대고 징징대면서 때론 어른 흉내도 내보고 아주 말도 못 하게 친한 친구였다.

 

그 친구완 군대도 비슷하게 가서 비슷하게 나오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 친군 방위로 12월, 난 그 다음해 7월 군번으로 해병대 영장이 나온 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꼬셨다. “방위면 어때?” 하는 친구의 논리를 “쪽팔리게 무슨 방위냐?” 술을 먹이면서 나의 현란한 세치의 혀로 현혹하여 현역으로 지원을 시킨 거다. 운전면허증을 따게 해서 고걸로 현역지원을 시켰다.

 

영장을 3월에 받게 하여 “먼저 가 있어, 금방 따라갈게!” 하며 입대시켜놓고선, 난 7월에 입대해서 3일 만에 시원하게 아주~ 쿨하게 군대를 빠져버리는 불상사(?)가 생겨 버린 것이다.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가기 싫다는 놈 억지춘양으로 현역으로 입대시켜놓고 난 쏴~악 빠져버린 형국이 돼버린 거다.

 

무슨 말로 위로가 되리오? 어떤 썰로 변명이 되겠냐고? 죄인의 맘으로 친구의 저주를 받으며 살다가 그래도 면회는 가봐야지 하여 날을 잡았다. 면회 가기 전날 그 친구도 알고 나도 아는 선배를 인천에서 만났다. 우연히 만나 간단하게 술 한 잔 먹다가 그 선배 왈, 자기는 내일 유성으로 친구 만나러 간다는 거다. 선배 친구가 대전 유성에 있다는 거다.

 

나 - “그래요? 잘 다녀오세요. 나도 낼 용현이 군대 면회 갑니다. 충남 공주인데 나 때문에 군대 억지로 가서 낼 면회 가서 맛난 거 사주려고 한 번 가봐야겠습니다.”

하고 헤어졌다.

 

그 다음날, 새벽 첫 차에 몸을 이끌고 인천에서 대전, 대전에서 공주로 친구가 써 준 주소로 버스로 택시로 물어물어 친구 주소로 된 부대에 어렵게 도착을 했다. 헌데 아니 럴수! 럴수! 이럴수가! 부대가 멀리 이전했다고 한다. 오 마이 갓! “그럼 그 주소를 알려주세요. 난 꼭 봐야 합니다.”

 

가르쳐 줄 수 없다고 한다. 나 멀리서 왔는데 그러면 안 되지 않느냐? 부탁이다. 가르쳐 달라 해도 안 된다 한다. 높은 사람 데리고 와라 하고 버텨도, 부모님도 애인이 아니어서 인지 끝내 알려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시외버스 타고 공주에서 대전으로 가는데 어느 곳에 있는 사거리 신호에 버스가 신호에 걸려있었다. 군인 한 명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이상하게 그 친구 내 친구 같이 보이는 거다.

 

군인은 비슷하게 보이고 군복 입혀 놓으면 다 똑같아 보이는데 이상하게 끌리는 거다. 그 군인이 안경점에 들어가는데 분명 내 눈엔 내 친구 같았다.

 

해서 시외버스 기사님한테 “아저씨 나 급한 일이 있어서 지금 여기서 내려야겠습니다.” 하고 내려 100m 달리기해서 그 안경점에 후다닥 들어갔더니, 오 마이 갓! 그 군인이 진짜로 내 친구인 거다. 나도 놀랬다. 일요일이라 안경 상태가 좋지 않아 외출증 끊고 잠깐 나온 사이에 나랑 타이밍이 맞은 것이다. 얼마나 어려운 확률인가?

 

우린 안경 대충 맞추고 한 아침10시로 기억되는데 아침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88년도 그 당시엔 아침에 문을 연 식당이 지금처럼 많은 시절이 아니어서 분식집 열려고 준비하는 집에서 간단한 안주 될 만한 거 시켜놓고 전방에서 쏘주를 사와서 깔깔대고 큰 소리로 떠들면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전날 유성 간다는 선배가 그곳을 선배 친구와 지나다가 “아침부터 떠드는 진상들이 있어?” 하며 쓰으윽 쳐다봤는데 우리랑 거기서 눈이 마주 쳐버린 거다.

 

 ‘세상에 이런 일이’ TV프로에 나와야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런 만남이 되였는지 그날 우리 네 명은 기억이 없을 정도로 술을 잡수었다.

 

공주가 대전 유성 지나서 있는 줄 몰랐고, 그 군인 친구가 유성으로 안경을 맞춰놓고 찾으러 간 걸 버스에서 내가 볼 줄은 누가 알았겠나? 그리고 또 그 많고 많은 술집과 식당에 그 선배와 선배 친구를 만날 줄은 또 어떻게 알았겠나?

 

만취 후 새벽 4시쯤에 대전역 앞에 어떤 여인숙에 술 취해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오 마이 갓! 선배들은 안보이고 내 친구가 그 시간에 내 옆에서 자고 있는 게 아닌가? 미치겠더만요. 나도 취해서 뻗어서 몰랐는데 외출 나온 거라 빨리 귀대를 해야 하는데 나한테 쌓인 게 많아서 인지 다음날까지 쩔어 있다가 술 취해 같이 잠들어 버린 거다.

 

후다닥 택시 태워 귀대 시켰는데 사단까진 탈영보고는 안 됐고 대대에서 해결 됐나 보다. 한, 한 달 동안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고 한다.

 

‘옥바라지’는 들어 봤어도 들어보지도 못한 ‘군바라지’를 난 해야 했다.

휴가 나오면 술 사줘, 옷 사줘, 용돈 줘, 포경수술비 부치라고 해서 부쳐줘. 내 돈을 지돈처럼 빵빵하게 쓰고 제대했다.

 

요놈의 내 인생은 엉켰어! 기냥 간단하게 군대 가면 될껄 나 때문에 피해자가 많아, 아주 많어

3일 있으면서 여섯 끼 먹고 온 군 경력이 3년 채우고 온 군인 보다 에피소드가 더 많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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