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보다 더 무서운 고래 잡는 해병!
1993년, 상병시절 7월 초 여름 금요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병장선임들이 제대 약 2개월 정도 남겨두고 파견 나온 의무병에게 고래를 잡는 게 관례였습니다.
훈련도 열외인지라 딱히 할일도 없는 선임들은 너도 나도 고래를 잡았지요.
그것도 맨 정신에 1차 수술 후, 실을 빼낼 때 또 맨 정신에 하더군요.
전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난 맨 정신에 절대로 못 하겠다, 판단하고
부대 앞 사제병원에 가면 5만원에 가능하고 자연스럽게 녹는 실을 사용한다, 하여
1주일만 고생하면 된다는 내용을 전해 들었습니다.
전 시골에 부모님께 편지를 보냈습니다.
부대에서 쓸 돈 딱 5만원만 보내주십사, 라고요.
어머님은 무슨 돈이 그만큼 필요하냐며 3만원만 보내마, 하시길래
전 절대 안 된다. 무조건 5만원이라고 말씀드려서 드디어 5만원이 도착했습니다.
전 아무한테도 말 안하고 1주일만 참자는 다짐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D-day 1993년 7월, 어느 금요일 오후 외출증을 끊고 부대를 나갔습니다.
수술대 위에 누워서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기다리는데 모자 옆으로 발이 보이는데,
남자 두 명이 열심히 가위소리를 내면서 10분 정도 쯤 지나서
“다 됐습니다.” 라고 하길래 ‘뭐 별거 아니네.’ 하고 병원을 나오는데,
간호사가 제 얼굴을 볼까봐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얼른 나왔습니다.
병원을 나서는 순간 ‘아~! 나도 이제 남자다!’ 너무 기뻤습니다.
편안하게 저녁순검까지 하고 자는데 다음날 새벽 3시, 다리가 너무 시원하더라고요.
꿈인가 하고 또 잠을 청하는데 이상하게 너무 시원해서 다리를 보니 으아~피가 철철 나고 있습니다.
큰일 났다! 싶어 휴지로 둘둘 말고 옆 중대에 의무병을 찾아 달려갔습니다.
당시 머리를 가운데로 2열로 자는 침대라 그 머리가 그 머리고, 그놈이 그놈이라 마음까지 급하니 너무 헷갈리더라고요.
의무병을 깨워 “큰일 났다! 빨리 일어나!” 라고 두드리니까, 벌떡 일어나 절 보더니 왜 이러냐고 묻더군요.
사실을 이야기 하면서 어떤 처치를 해줄 줄 알았는데, 실로 칭칭 감아놓고는 난 못하니 사회 병원으로 가라더군요.
그것도 새벽 4시에. (당시08시가 되야 문을 나설 수 있었거든요.) 딱히 갈데도 없고,
전 다시 중대로 돌아와 침낭에 쪼그리고 8시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놈의 시간이 왜 이리 더딘지. 머리는 어지럽고 피는 계속 나고 피 묻은 휴지만 자꾸 나오고 미치겠더라고요.
07시가 되어서 중대 선임하사님의 자전거를 훔쳐 타고 위병소로 무작정 갔습니다.
사정 이야기를 해서 나가 볼려고요. 근데 헌병 이놈은 08시가 안되면 못나간다고 하네요.
하늘은 자꾸 노래지고 피는 계속 나고 아~ 사람 잡겠더라고요.
드디어 08시! 총알같이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으아~! 병원이 문을 안 열었습니다.
진료시간이 9시 부터라고 써있네요.
갈데도 없고 병원 계단에 앉아 30분을 기다리고 있는데 피가 계속 나오더라고요.
죽을 것만 같았는데 여자 한 명이 병월 계단을 오르길래
“혹시, 이 병원 근무하십니까?” 물으니 “네” 라고 하더라고요. 드디어 살았다 싶어
나 - “어제 수술한 사람입니다. 피를 너무 흘려서 죽겠습니다.”
라고 하니 이 아가씨
아가씨 - “네, 알고 있습니다.”
좀 창피했지만 너무 급박한 상황이라
나 - “피를 너무 흘렀습니다. 빨리 어떻게 좀 해 주십시오.”
하니까 아가씨 왈 낭창하게
아가씨 - “네, 피 흘리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전 더 이상 기운도 없고 죽을 지경이라
나 - “새벽 3시요~ 빨리! 빨리! 피를 너무 흘러 죽겠습니다.”
라고 하니 이 아가씨,
아가씨 - “원장님은 9시에 오시니깐 들어와서 기다리세요.”
전 3층 계단을 엉금엉금 기어 병원의자에 앉아 또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9시! 원장님이 절 부축해서 수술대 위에 눕히시더니,
의사 - “어허~ 이런. 쯧쯧 피를 많이 흘렀네요. 재수술은 마취가 안 됩니 다.”
라고 하시며 다시 가위질 소리가 나는데 1시간은 걸린 거 같더라고요.
모자를 덮고 있었는데 옆으로 살짝 보니 간호사 발도 보이는 게 너무 창피하더라고요.
전 ‘창피한 게 문제가 아니다. 이젠 살았다. 끝나면 얼른 도망가야지.’
속으로 생각하고 병원을 도망 나와 부대로 들어가 화장실에 들어가 상태를 보니
이런 온 사방이 실 매듭이 붙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어제는 꿰맬 때 이불 꿰매듯이 실 한 줄로 그냥 꿰맨 것입니다.
그러니 새벽에 저도 모르게 팽창이 되어 피가 났던 것입니다.
아무튼 전 살았고 실 끝이 허벅지를 계속 찔러서 팔자걸음을 하고 다녔습니다.
중대선임하사님 앞에서도 팔자걸음으로,
대대선임하사님 앞에서도 팔자걸음.
중대장님, 선임들 앞에서도 팔자걸음으로 다녔습니다.
대대선임 하사님은 제가 구타당한 줄 아시고 확인까지 하셨고,
전 그때 부작용으로 붓기가 가라앉지 않아 제대 할 때까지 놀림을 받았습니다.
선임들은 “남해병! 넌 우리 중대에서 최고다!”
지금은 붓기 다 가라 앉았고 딸 쌍둥이 아빠로 잘 살고 있습니다.
여보! 만약에 당첨되면 냉장고 바꿔주께.
'★해병일기 > 해병들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앗~베이비 복스다... (0) | 2015.02.01 |
---|---|
1%확률 (0) | 2015.01.30 |
고참은 외과의사. (0) | 2015.01.30 |
3일 해병 (0) | 2015.01.30 |
내가 살려준 친구...... (0) | 2015.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