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들의 이야기

차라리 군생활을 못할걸..

머린코341(mc341) 2015. 2. 1. 00:16

차라리 군생활을 못할걸..


부산 남구 대연3동 / 하지훈


때는 2005년 살을 애는 듯한 추위의 겨울, 해병대 전역을 100여일 앞둔 어느 날이었습니다.

400여명의 대대 전우들과 함께 사격훈련장에서 중대별로 40명씩 순서대로 사격훈련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제가 포함된 40명의 조가 사격대로 올라갔고, 사격이 실시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병사의 총기에 이상이 생겨 사격이 전부 중지되었고, 모두들 사로에서 대기 상태가 되었지요.

전 사격명령을 기다리며 지루함에 총알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는데, 갑자기..헉..총알의 탄피와 탄두가 분리 되는 것입니다.

아주 잠깐 당황했지만, 말년병장이던 저는 최근 전역기념품으로 무엇을 만들어 가지? 하고 고심하던 차에

 

‘이것은 하늘이 내게 주는 전역기념품이 아닐까? 총알로 목걸이를 만들면 전역 기념품으로 최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이 짧은 생각이 몇 분 뒤에 찾아올 후폭풍은 생각치도 못했고, 탄두는 저의 주머니에 어느새 들어가 있었습니다.

 

다시 사격훈련은 시작 되었고 저는 20발 중에 19발만 쏘고 20개의 탄피를 탄피회수클립에 끼우고 사격대를 나와 반납했습니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멀리서 간부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는 걸 말년병장의 노련한 눈치로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원래 총알이 총에서 발사하기 위해서는 총의 공이라는 부분이 탄피의 뒤를 쳐서 그 충격으로 화약이 터지고 탄두가 나가게 되는데, 이때 모든 탄피에는 공이가 친 부분에 자국이 남습니다.

 

탄피를 반납 받는 간부가 이를 확인하다가 탄피 하나에 공이가 친 자국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아! 걸렷구나. 말년에 군 생활에 시련이 오는구나.’

저희중대 마흔 명은 탄피를 반납한 순서대로 줄을 다시 섰고,

간부가 의심되는 중대원을 하나하나 지목하기 시작했습니다.

헌데, 이상하게도 순서대로 섰는데 저는 지목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꽤나 모범적인 군인이었고 말년병장이었기 때문이지요.

 

순간 자백하려 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병장으로써 후임들 보기 부끄럽기도 해서 사실을 숨기자 마음먹었습니다.

 

전 주머니에 있던 탄두를 아무도 모르게 멀리 자갈밭에 훅~ 던졌습니다.

익히 알려진 대로 군대에서 탄두, 탄피의 유실은 엄청나게 큰일이기에

전 대대원이 탄두 수색에 들어갔고 탄두는 곧바로 누군가에 의해 바로 찾아졌습니다.

지목받아 의심받은 병사들은 결백을 호소했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전 지금까지 군 생활도 착실하게 했고, 수많은 힘든 훈련도 한차례 낙오 없이 해 온 모범적인 군인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았죠.

 

결국 저희중대 마흔명 때문에 400여명의 모든 병사들의 얼차려가 시작되었고, 죄책감은 더욱 저를 압박해왔습니다.

 

너무너무 힘들어하는 후임들과 잘 알지도 못하는 다른 중대원들을 보고 저는 이만 자수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사실대로 말하자! 그래, 결국 밝혀질 일이야!’

 

자백을 하려고 앞으로 나가서 “제가 했습니다! 이제 그만 하십시오!”

 

어!? 근데 간부들의 반응이 좀 이상했습니다.

간부들은 오히려 저를 기특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간부 - “그래, 니가 후임들을 생각하는 건 알겠는데 이건 사실을 밝혀야 된다.”

 

라는 것입니다. 저는 다시

 

나 - “정말 제가 했습니다. 저만 처벌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라고 말했지만 끝내 믿어주시지 않았고 결국 2시간여의 얼차려를 다 같이 받는 동안

이 일과 아무 관련도 없이 얼차려를 받던 다른 대대병사들의 눈빛이 너무도 따가웠습니다.

그렇게 범인은 밝혀지지 않은 채로 대대로 복귀했습니다.

 

훈련장에서 복귀해서 저녁식사를 하는 내내 후임들은 제 눈치를 보며 식사를 하고 그날 저녁,

제 바로 아래 기수부터 맨 아래 기수까지 밤새도록 따로 기합을 받았지만

끝내 범인은 나오지 않고 그렇게 그날 사건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후임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더 잘 챙겨주고,

말년임에도 불구 하고 궂은일도 도맡아 하며 전역하는 그날까지 좋은 선임 착한 선임의 표본으로 칭송받으며 군생 활을 마쳤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인생에서 최악의 과오를 뽑으라면 그 일을 꼽습니다.

그날 저로 인해 추운 날 얼차려 받은 400여명의 대대 전우들아!

특히 우리 중대 후임들아!! 지금이나마 미안한 마음 전하고 싶구나!

오래전 일이니 잊어버렸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도 그 죄책감에 가끔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ㅠㅠ

 

다들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