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들의 이야기

귀신들린 해병

머린코341(mc341) 2015. 10. 23. 01:54

귀신들린 해병

 

튼튼이 아빠

 

저는 2002년 3월,


해병대에 입대하여 제가 근무하는 곳은 강화도와 한강하류 김포 애기봉과 가까운 부대로 북한과 매우 가까운 위치였습니다.


2002년 4월, 월드컵 분위기가 한창 고조되는 속에서 군에서는 경계근무태비가 강화되고 북한의 움직임을 매일매일 면밀히 관찰하는 그런 긴장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신병으로 아직 어리바리한 상태에서 바로 경계근무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런데 부대 배치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경계근무를 하려니 그게 매우 힘들었습니다.


아직 군대 용어에도 익숙지 않고, 군대 밥에도 익숙지 않은 저에게 야간 경계근무는 정말 졸음과의 전쟁이었습니다.


특히나 신병인 저에게 선임병들은 초소에서 FM자세로 경계근무를 설 것을 지시했고, 움직임 없이 깜깜한 밖을 보며 2시간동안 근무를 서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저의 몸은 녹초가 되었습니다.


야간 근무를 서고 오전에 잠을 자고 오후에는 다시 생활과업, 훈련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낮에도 밤에도 항상 정신 상태는 멍해져 있었습니다.

 

자대 배치를 받고 몇 주 근무를 서면서 이제 야간 경계근무에 나가면 졸음이 밀려들어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습니다.


가만히 서 있다가 졸기 시작하면 마치 타종을 하듯 초소 벽에 철모를 쿵쿵 박거나 술 취한 사람처럼 휘청대곤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선임병들은 무섭게 군기를 잡고 저를 혼내고 벌주고 하였지만 좀처럼 졸음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졸음과의 싸움에서 지게 된 저는 소대에서 고문관으로까지 찍히게 되었고, 군대 생활은 그때부터 편치 않았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야간 새벽근무에 ‘미친개’라고 소문난 상병과 같이 경계근무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소초로 진입하며 생각했습니다.


‘오늘 졸면 죽는다. 여기는 사람도 없고 하니까 아마 졸기시작하면 2시간 내내 얼차려 시키고 갈구겠지. 정신 바짝 차리자.’


경계근무를 나간 그 초소는 다른 초소들과 달리 인적이 별로 없는 곳에 약간 으슥한 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상병에게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대로 저를 갈구고 얼차려 줄 수 있는 아주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저는 긴장을 하며 자세를 잡고 경계근무를 서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처음에는 졸리지 않은 듯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졸기를 기다리는지 그 선임병은 저에게 말 한마디를 안 시키며 저를 계속 유심히 쳐다만 봤습니다.


결국 10분을 버티지 못하고 저는 스르르 눈이 감기고 말았습니다. 저


는 눈을 감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선임병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갑자기 눈을 뜨는 제 자신이 스스로도 매우 놀랍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아! 죽었다!’ 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 상병은 저에게 말했습니다.

선임 - “또 졸기 시작하는구만. 내가 바짝 잠을 깨워주지.

두 가지 중에 하나 선택해라! 얼차려를 받을래?

아니면 저 뒤쪽에 있는 옛날 소초에 갔다 올래?”

 

저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소초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옛날에 사용했던 조그만 소초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 소초는 사람 한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공간으로 전쟁당시 민간인인 많이 죽었던 장소로 평소에도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저는 그 소초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또 그 상병에게 얼차려를 아주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어서 옛날 소초에 갔다 온다고 하였습니다.

 

안쪽 길을 따라서 조금 더 들어가자 진짜 옛날 소초 같은 건물이 있었습니다.


크기는 사람한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매우 좁고, 겉에는 담쟁이덩굴과 같은 풀들이 잔뜩 끼여서 누가 봐도 흉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불빛 한 점 없고 풀숲 한가운데 있어 누가 봐도 곧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곳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무섭고 겁이 나서 안 들어가고 밖에 잠깐 서있을까 했는데, 혹시나 그 상병이 저를 따라와서 쳐다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일단 안으로 들어가야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안에 들어가 있으니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무슨 소리 같은 것이 들리는 것도 같았고, 땀도 비오듯 흘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벽에 기대고 서 있으니 또 슬슬 졸린 것 같았습니다.

잠시 기대고 서 있다가 저는 눈을 뜨며 깜짝 놀랐습니다.

저도 모르게 거기 기대서 잠을 잔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확인해보니 벌써 40분 가까이 흘렀었습니다.


‘아! 미쳤구나, 미쳤어. 아 나는 죽었다. 이제 어쩌지?’


소초에 돌아가서도, 부대에 돌아가서도 고문관소리를 들으며 혼날 걸 생각하니 눈앞에 깜깜했습니다.


다시 상병이 있는 소초로 돌아가니 역시 상병은 엄청 화가 난 얼굴로 뭐하고 있다가 이제 나타나냐고 소리쳤습니다.


그때 저는 무서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나 - “저는 5분만 앉아 있다 왔는데 무슨 소리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당당하게 이야기하자 상병은 약간 당황한 듯한 눈빛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시계를 보고 깜짝 놀라는 척을 하며,

 

나 - “시간이 이렇게 지난는지 몰랐습니다. 저는 정말 5분만 앉아있다 왔습 니다!”

 

라고 둘러댔습니다.

상병은 일단 알았다고 하고 계속 근무를 섰습니다.

 

저는 전방만 주시하며 ‘이제 한번만 더 졸면 나는 죽음이다 절대 졸지말자.’ 라고 마음속을 다짐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상병을 곁눈질로 잠깐 보니, 한쪽구석에서 박스에 걸터앉아 졸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다시 전방만 쳐다보며 절대 졸지 말자를 다짐했지만 슬슬 다시 졸음이 왔습니다.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상병이 졸고 있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저는 중얼중얼 노래를 불렀습니다.

크게 소리 내면 상병이 깰까 싶어서 작은 소리로 중얼중얼 노래를 계속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상병은 갑자기 저를 부르며 “야! 너 지금 뭐라고 하는거야?” 라고 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며 “저는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라고 얼버무렸고

상병은 다시 “너 계속 중얼중얼 거렸잖아?” 라고 다그쳤습니다.

 

저는 노래를 불렀다고 하면 아무래도 기합 빠진 놈이라고 혼날까봐 절대 아무 말도 안했다고 계속 우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상병은 이상하게도 저를 혼내지 않고 혼자 밖에 나가서 근무를 서며 저를 힐끗힐끗 쳐다봤습니다.


왜 그런지 몰랐지만 어쨌든 그날 근무는 다행히 졸지 않고 무사히 마쳤고, 저는 내무반으로 복귀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 사람들이 이상하게 저를 보며 수근 대는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상병이 그날 있었던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약간 과장되게 얘기하여 제가 귀신 들린 것 같다고 얘기한 것이었습니다.

 

저한테 어젯밤 뭔가 본 게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혹시 무슨 소리 같은 게 들리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밤에 잠을 자다 소변이 마려워 자리에서 일어나서 침상에 걸터앉아 슬리퍼를 찾았습니다.


그 당시 이병이 침상에 걸터앉아 슬리퍼를 신는 것은 개념 없는 짓이라 하여 선임들의 꾸짖음을 받았습니다.

이병은 침상에 선 채로 허리를 숙여 슬리퍼를 찾아 신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밤이고 다들 자고 있어서 침상에 걸터앉아 슬리퍼를 신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병장이 일어나는 기척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순간 놀라 머리를 다리사이에 쳐 박고 침상에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침상에 걸터앉아 슬리퍼를 신었다고 하면 혼날까봐 머리를 쳐 박고 뭔가를 찾고 있었다는 핑계를 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병장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면서 저를 쳐다보고 나지막히 “으헉!” 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 들렸습니다.


저는 그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고, 병장은 저를 슬금슬금 지나 내무반 밖으로 나갔고, 밖에서 당직사관 하고 병장이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병장이 나간 걸 느끼고 다시 자리에 누워 얼른 잠을 청했습니다.

이 두 사건 이후로 부대에서 사람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틈만 나면 갈구던 사람들은 별로 갈구지 않았고 실수를 해도 얼차려를 주는 사람이 줄어들었습니다.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저랑 말을 안 하려고 하고 일부러 자리를 피하는 선임들도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사람들 사이에서는 제가 그 소초에 갔다 온 후 귀신이 들린 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귀신이 들려 혼자 중얼중얼 거리고 밤에는 혼자 일어나 이상한 짓을 하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제 실수나 개념 없는 행동들도 가끔씩 귀신들린 행동으로 치부되어 혼나기보다는 사람들의 수근거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번은 집에 갈일이 얼마 안남은 병장은 저를 옆에 데리고 굉장히 챙겨주기도 하였습니다.


먹을 것을 챙겨주고 사람들에게 막내 잘 대해주라고 얘기도 하고, 실수하거나 잘못하는 일이 있어도 저를 감싸주고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그 병장이 나를 좋아하는 구나, 내가 열심히 생활하니까 나를 잘 챙겨주는구나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마치 그 사람은 굿이라도 하는 것처럼 사회 나가서 자기가 하는 일이 잘되길 비는 마음으로 저에게 잘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얘기를 후에 듣고 정말 웃음이 나고 마치 그때는 제가 무속인인 것처럼 사람들이 대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시간이 지나고 일병이 되어 부대생활에 적응도 하고 이병때의 고문관의 티를 조금씩 벗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오해도 조금씩 풀렸습니다.

 

훈련도 열심히 받고 생활도 열심히 하고 후임들에게도 잘해주니 차츰 그때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상 귀신 잡는 해병이 아닌 귀신들린 해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