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7대사령관 강기천

나의 人生旅路 - 3. 해군 백령도 주둔부대 (6) 초저녁의 총격사건

머린코341(mc341) 2015. 2. 6. 02:12

나의 人生旅路 - 3. 해군 백령도 주둔부대

 

(6)초저녁의 총격사건

 

1951년도의 늦가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날 저녁 나는 숙소 바깥에서 갑작스런 총성이 요란하게 들리기에 무슨 일인가 해서 급히 숙소 경비분대장을 불러 알아보게 했더니 잠시 후 돌아와서 하는 말이 직할연대장(金長成)과 장연 백호부대장(張錫璘)이 경호원을 거느리고 총격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경비분대장으로부터 그러한 보고를 받은 나는 그 두 사람의 부대장을 즉시 숙소로 데리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서는 권총 벨트와 철모를 착용하고 곧바로 숙소 밖으로 나가 보았더니 어둠 속에서 경비분대장이 두 손을 메가폰처럼 입가에 갖다 대고서는 이쪽 저쪽방향을 바꿔 가며 "해군사령관님의 명령이야요. 즉시 총격을 멈추시라구요."하고 연거푸 외처 대고 있었다.

 

그런 다음 다소 총성이 멎은 듯하자 그는 "해군사령관님이 직할연대장님과 4연대장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십니다. 속히 숙소로 오시라구요.-" 하고 되풀이 소리쳤다.

 

그러자 총성이 뚝 멎기에 나는 경비분대장에게 그 두 사람을 숙소로 데리고 오라고 일러두고 먼저 숙소로 돌아왔더니 10여 분 후 그 두 사람이 경비분대장을 따라 터덕터덕 숙소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나 격분을 했던지 "적과 싸울 때 사용해야 할 아까운 실탄과 병력을 가지고 서로 총격전을 벌이다니 도대체 말이 되는가! 당장에 영창에 집어 넣고 동키부대 사령관과 의논을 해서 응분의 조처를 취하겠다."며 질책을 했더니 그들은 깊이 사죄를 하며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하기에 그들을 위해 작은 술상을 차려 화해술을 권한 끝에 가까스로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가라앉힐 수가 있었다.

 

그런데 나 자신도 그러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비단 그 날 저녁 총격전을 벌인 그 두 사람의 부대장뿐 아니라 다른 부대장들간에도 그 어떤 감정의 불씨 같은 것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한 감정의 불씨는 부대 간의 전투공적(戰鬪功績) 다툼과 부대장의 공명심(功名心)같은 것에 의해 촉발이 되곤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한심한 일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절박한 상황하에서 부대원들의 사기와 생존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부대장들로서는 인간인 이상 그들 자신의 공명심을 전혀 배제할 수가 없었을 것이고, 또 백령도의 동키부대 사령부에서 각 부대 간의 경쟁적인 노력을 촉구하기 위해 전과를 많이 올린 부대에는 그만큼 탄약과 식량과 의약품 등에 대한 혜택을 주고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감정의 불씨는 오히려 개연성을 지닌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편 그 날 밤 웅도(熊島)에 전방기지를 두고 있던 백호부대 부대장이 백령도에 머물고 있었던 이유에 관해서는 그 날 사령부에서 개최된 회의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보급품 청구문제 때문이었는지 정확히 그 까닭을 알지 못하고 있다. 뒤에 언급이 되겠지만 그 후 4연대장 장석린 부대장은 부하 대대장들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고, 북한군 공군기의 폭격으로 4명의 자녀를 한꺼번에 잃고 말았던 직할연대장 김장성 부대장도 그로부터 13년 후인 1964년 한많은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으니 모두가 한이 많았던 이승의 과객들이 아니던가.

 

 

출처 : 예비역 해병대장 강기천(姜起千) 제7대 해병대사령관님 회고록 "나의 人生旅路"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