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6대사령관 공정식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71) - 청룡부대 파월의 의미와 그 회고

머린코341(mc341) 2015. 2. 26. 22:56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71) - 청룡부대 파월의 의미와 그 회고

 

해병대사령관 시절에 심혈을 기울였던 행외 파병이 실현되어 청룡부대를 편성, 훈련해 1965년 9월 20일 박정희 대통령 임석하에 '월남 파병 출정식'을 갖게 된 것을 나는 무한한 영광으로 여기며 감개무량하게 생각한다.

 

청룡부대가 월남전선에서 용감하게 싸워 세계만방에 국위를 떨친 것도 국익을 위해서였다. 파월은 미 해병대와 함께 새로운 전투 경험에 이어 세계를 향한 진출을 하는 계기를 마련하여 국가 부흥에 도움을 주고자 함이었다.

 

1960년대 중반 우리 국가부흥을 이륙(take off) 이론으로 격려한 미국의 석학 로스토우(Walt W. Rostow) 교수는 '비행기 이륙 시를 비교해 가장 힘든 단계가 도약단계 진입' 이라고 했다. 우리는 월남 파병에 따른 전쟁 특수(特需)와 그 이후 계속된 중동 특수의 오일 달러에 힘입어 무사히 이 어려운 단계 진입을 마쳤다는 생각이 든다. 새삼 지난날의 감회가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간 동분서주하면서 월남전을 지원하고 지휘 감독한 진솔한 이야기를 이 책 지면에 남겼다. 이제 월남전 이야기를 마무리 하면서 청룡부대가 이룩한 빛나는 전공과 그 뒤에 가려진 고귀한 희생을 되돌아본다.

 

청룡부대 10대 작전

 

해병2여단 청룡부대는 국군 최초의 전투부대로 1965년 10월 9일 월남에 상륙해 6년 5개월 간 캄란과 뚜이호아, 추라이, 호이안 등 4개 지역에서 공화국의 평화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다양한 작전을 실시했다.

 

대대급 이상 작전 180회, 소부대 작전은 무려 151,347회(『베트남전쟁과 한국군 3권』, 국방연구원, 2003, p.905)나 실시했다. 그중 1985년 12월 30일 해군본부 해병참모부가 발행한『해병약사』에서 열거한 청룡부대 10대 작전을 열거한다.

 

1. 청룡 2호 작전 : 1965.12.16~1966.1.16, 캄란 및 뚜이호아, 파월 최초 여단급 작전, 뚜이호아 지역 평정, 사살 473명, 포로 18명, 개인화기 28정, 수류탄 500발 노획

 

2. 해풍작전 : 1966.7.22 8.17, 뚜이호아, 3대대 정보장교 이인호 대위(해사 11기, 소령 추서) 동굴탐색 중 장령히 전사

 

3. 짜빈동 작전 : 1967.2.1~2.15, 추라이, 적 사살 243명, 포로 2명, 화염방사기 3문, 대전차포 6문, 경기관총 2문, 4.2인치 중박격포 1문, 75밀리 무반동총 7정, 수류탄 350발 등 노획

 

4. 용머리 2호작전 : 1967.7.14~7.17, 추라이, 특공중대가 무기 운반선을 나포, 중공제 K-44자동소총 등 1,200정, B-40 유탄포 27문, TNT 200파운드, 탄약 6트럭분 노획

 

5. 테로이 매복작전 : 1967.7.19, 추라이, 1대대 1중대 3소대 1분대장 김학영 하사가 테로이 부락 야산에 매복, 사살 32명, 포로 4명, M1소총 등 17정 노획

 

6. 승룡 7-21호 작전 : 1969.1.10~1.21, 호이안, 2대대 6중대가 쿠엠칸 강변에서 식량 저장고 점령, 쌀 4,846포(275톤), 소금 50톤 등 노획, 사살 16명, 개인화기 5정 노획

 

7. 승룔 12-1호 작전 : 1969.6.3~6.19, 호이안 고노이 섬에 1, 2대대가 미 해병대 LVT 및 전차 지원하에 입체작전, 사살 261명, 포로 8명, 각종화기 129정 노획

 

8. 승룡 15-1호 작전 : 1969.9.5~9.30, 호이안 다낭 남방 30킬로미터 베리아 반도에 한·미 합동 여단급 상륙작전, 사살 255명, 포로 4명, 개인화기 등 142정 노획

 

9. 황룡 2호 작전 : 1970.4.1~4.15, 호이안, 여단전술책임지역(TAOR) 내 소탕작전, 사살 67명, 포로 38명, 개인화기 50정 등 노획

 

10. 황룡 10-22호 작전 : 1970.12.2~12.12, 호이안, 여단 TAOR 서남방 케손 산악지대 탐색, 적 무기고 발견, 122밀리 로켓포 30문, 개인화기 4정, 유탄포 탄약 등 노획

 

청룡부대의 빛과 그림자

 

태극훈장은 최고의 무공훈장이다. 청룡부대는 파월 6년 5개월 간 4명이 태극훈장을 받았다. 육군은 두코 작전에서 이종세 상사, 안케패스 작전에서 고 임동춘 대위와 고 이문표 중위 등 3명이 태극훈장을 받았다. 용감하게 잘 싸워 전공을 세운 그들에게 우리는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그간 우리 해병대는 연 병력 32,246명이 파월되어 그중 3.3퍼센트인 1,156명이 전·사망하는 등 희생을 치렀다. 전승을 위해서는 용감하게 싸워야 하며 그에 따른 많은 휘생이 있게 마련이다. 빛나는 전공만큼이나 고귀한 희생이 뒤따르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이다.

 

전쟁이란 언제나 비참하고 잔인한 것이다. 그래서 로마시대의 국부로 칭송을 받았던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는 가장 정당한 전쟁보다 차라리 부정(不正)한 평화를 갖고자 하였던가? 청룡부대가 이룩한 빛나는 전공과 그 뒤에 가려진 고귀한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되며 값진 공훈을 길이길이 후세에 전해야 한다.

 

국가 큰 역사에 나를 사용한 하나님께 감사

 

해병대 청룡 전투부대 파병으로 한국과 미국은 더욱 긴밀한 안보 공조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한국정부는 미국에게 보다 적극적인 군사 및 경제원조를 요구할 수 있었으며 한·미 관계는 역대 어느 정권 때보다 더 강한 밀월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국가의 큰 역사에 부족한 나를 사용해 주신 하나님께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

 

5천여 년의 역사이지만 늘 핍박받고 가난을 숙명같이 받아들였던 우리 민족. 그 오랜 흑암의 세월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역사 도약을 위해 막힌 둑을 무너뜨리는 이 대역사에 나를 준비하고 예비해 두었던 것이다.

 

해병대 청룡부대의 파병에 이어 육·해·공군 부대 파병으로 한국은 비로소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맹국으로서 위상을 높이게 되었는데, 그것은 한·미 동맹체제가 서로 시혜(施惠)를 주는 관계로 변했기 때문이다. 즉 월남 파병으로 5·16 군사정변 때 생겼던 양국 간의 갈등이 청산되고 동맹관계가 상호 보완적 방향으로 발전되었음을 미국 측이 인정하고 동의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을 전쟁의 피폐로 외부 원조에 의존하고 도움만 바라는 나라가 아닌, 세계평화를 위한 공동의 노력에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는 나라로 인정했고, 따라서 한국은 미국과 진정한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평화 질서 재편을 위한 역할에 동참함으로써 대내외적으로 엄청나게 격상된 국가적 위상을 확보하게 되었다.

 

즉 파월을 균등한 동맹국으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미국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태도 변화에 기인된 상호 협조로 봐야 한다.

 

해병대 청룡부대 파병의 의의는 이를 계기로 한·미 관계가 예전의 일방적 지원의 동맹체제로부터 상호 의존관계의 동맹체제로 바뀌게 되는 큰 전환점이 되었다.

 

 

출처 : 해사1기, 예비역 해병중장 공정식 제6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