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人生旅路 - 6. 최고위원
(7) 박정희 장군의 전역식
8월 30일에 거행된 국가 재건 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대장의 전역식이 거행된 곳은 강원도 철원군 갈말면 지포리(芝浦里)에 있는 육군 제5군단의 기지였다.
그 날 오전 11시에 시작이 된 그 박정희 대장의 전역식장 단상에는 최고회의의 간부들과 정부 각료, 주한 외국사절단과 한·미군 고위장성 등 수많은 국내외 귀빈들이 자리를 메웠고, 그 기지 광장에는 5군단 예하의 1개 사단 병력이 행사부대로 도열해 있었다.
4성 별판이 붙어 있는 승용차를 타고 김성은 국방장관과 함께 식장에 도착한 박 의장이 단상에 올라서자 21발의 예포가 은은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예포 발사가 끝나자 박 의장은 행사부대를 사열한 다음 자신의 고별사를 위해 마련된 단상 위의 연단석으로 다가갔다.
건군(建軍)으로부터 따지면 17년, 일제하의 만주(滿洲)군관학교로부터 기산하면 21년이 되는 그 세월, 무상(無常)했던 영욕(榮辱)과 함께 살아 왔던 그 오랜 군대생활을 하직하게 되는 그 고별식장의 분위기는 시종 숙연한 느낌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그 날 박정희 장군은 고별사를 통해 특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던 것을 나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즉 "군사혁명이란 불행이 다시는 이 땅에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던 그는, 군사혁명을 일으킨 한 책임자로서 2년간에 걸친 군정에 종지부를 찍고 혁명의 악순환이 없는 조국 재건을 위해 다음 민정에 참여하기로 결심을 한 것이라고 했고, 또 민족적 주체세력을 이룩하여 남은 평생을 조국 재건을 위해 바치겠다는 각오를 피력 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이 나라에 본인(本人)과 같은 불우한 군인이 없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 전역식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것은 보무도 당당한 행사부대 장병들의 분열식이었는데, 그 분열식이 대미(大尾)를 장식할 무렵 여러 대의 육군 항공대 소속 경비행기가 출현하여 저공비행으로 색연막을 뿌리며 석별비행을 하고 있었다.
한편 분열식과 항공대의 석별비행이 끝나자 식장에는 군악대가 연주하는 구슬픈 이별의 노래가 잔잔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그 구슬픈 가락 속에 부인 육영수(陸美修)여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박정희 장군은 그의 양복 주머니 속에서 꺼낸 흰 손수건을 가지고 그의 두 눈에 괴어 있는 이슬 방울 같은 눈물을 말없이 닦고 있었는데, 나로 하여금 말할 수 없는 감회에 젖게 했던 그 마지막 영상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출처 : 예비역 해병대장 강기천(姜起千) 제7대 해병대사령관님 회고록 "나의 人生旅路"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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