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7대사령관 강기천

나의 人生旅路 - 6. 최고위원 (9) 박정희 장군의 소년 시절

머린코341(mc341) 2015. 3. 8. 22:19

나의 人生旅路 - 6. 최고위원

 

(9) 박정희 장군의 소년 시절

 

  한편 최고회의 해체식이 거행되던 그 날 나는, 문득 어느 날 내가 박정희 의장으로부터 직접 전해들은 박 의장 자신의 소년 시절에 대한 얘기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하루 후면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될 그 국가지도자와 국가와 국민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이 개척되기를 기원했다.

 

  그 해 여름철의 어느 날 오후 최고회의 의장실에서 우연히 나와 망중한(忙中閑)의 대좌를 하게 되었을 때 박 의장이 나에게 들려 준 그 소년 시절의 얘기란 이런 것이었다.

 

  즉 30~40리 길을 내왕하며 다녔었다는 그 보통학교(국민학교) 시절에 박 의장은 워낙 집이 빈곤해서 도시락 대신 대나무 대롱 속에 넣어 준 죽을 가지고 가서 점심을 때울 때가 많았다고 했는데, 그런죽도 가지고 가지 못한 날에는 교실 밖으로 나가 수도꼭지를 틀어 냉수를 실컷 마시고선 다른 아이들이 점심을 다 먹을 때까지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고 했고, 어머니가 장터에 가서 정말로 어렵게 사다 준 검정고무신이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졌던지 보물단지처럼 애지중지하느라 평지를 걸어갈 때는 허리춤에 매달고 다니다가 자갈밭이나 개울물을 건널 때만 신었다는 그러한 얘기와, 신파 구경에 얽힌 다음과 같은 얘기도 했었다.

 

  즉 신파 구경을 했다면서 박 의장의 호기심을 자극한 약삭빠른 친구 하나가 있었는데, 어느 날 하학길에 그 공연장 앞을 지나치다보니 그 공연장 입구에 바로 그 친구가 같은 또래의 몇몇 아이들과 함께 줄을 서 있기에 왜 그러고 있느냐고 했더니 우물주물 하다가 여기 서 있으면 구경을 할 수 있다면서 같이 서 있자고 하기에 한참 동안을 그 친구 뒤에 서 있었으나 나팔과 북, 깃대(플래카드) 등을 들고 그 곳에 나타난 사람들이 아이들이 너무 많다고 하면서 하필이면 그 친구가 서 있는 곳까지만 잘라서 그 아이들에게만 깃대 하나씩을 들게 하여 그들의 뒤를 따라가게 하는 바람에 자신은 고생만 실컷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다음 날엔 일찌감치부터 줄을 서 있다가 용케도 그 깃대 하나를 받아 들고 관객 동원을 위해 고을 안을 휩쓸고 다니는 그 나팔수와 북치는 사람들을 따라다닌 끝에 가까스로 표 한 장을 얻어 난생 처음 신파라는 것을 구경할 수 있었고, 또 그 후에도 그런 방법으로 여러 차례 신파를 구경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날 그와 같은 얘기들을 나에게 들려 주면서 박 의장은 비록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러한 가난을 겪고 있는 시골 어린이들과 가파른 보릿고개를 초근목피로 근근이 연명해 나가고 있는 절량농가가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우리 국민들을 그 보릿고개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도 구국적인 혁명과업은 성공적으로 완수되어야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러한 얘기를 통해서 나는 민족적인 지도자로 받들고 있던 그분의 순수성과 인간적인 바탕에 대한 신뢰감과 존경심을 더욱 깊이 느낄 수가 있었다.

 

 

출처 : 예비역 해병대장 강기천(姜起千) 제7대 해병대사령관님 회고록 "나의 人生旅路"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