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人生旅路 - 9. 해병대사령관 시절
(3) 애기봉(愛妓峰)
사령관으로 취임한 직후 나는 여단장 이병문(李丙文)준장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건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즉 155마일 휴전선 가운데서 적지(適地)와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곳으로 알려져 있는 조강리(祖江里-金浦郡 月串面)강변 고지에 설치되어 있는 부대 관측소에 적당한 명칭을 하나 지어 달라고 하면서 옛부터 구전(口傳)되고 있다는 그 고지(봉우리)에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도 아울러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仁祖 14년 -1636년)의 일이었다고 한다. 애기(愛妓)라는 애첩을 데리고 평양으로부터 서울로 피난을 하고 있던 평양감사(平壤監事)가 개성(閉城)을 거쳐 개풍군(開豊郡)에 당도했을 때 때마침 밀려온 호족(胡族)에게 납치를 당하는 바람에 부득불 홀로 강을 건널 수밖에 없었던 그 여인은 호족들에게 붙들려간 평양감사를 못내 잊지 못해 노심초사 연모의 정을 불태우다가 끝내는 난치의 병에 걸려 한 많은 그 강변 마을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고 하는데, 그 때 임종에 다다른 그 여인이 죽은 다음 넋이라도 멀리 고향 하늘과 님 계신 곳을 바라보며 살고 싶으니 부디 높은 저 봉우리에 내 시신을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기에 그 마을 사람들이 그녀의 시신을 거두어 그 강변 봉우리에 묻어 주었다는 그와 같은 전설이었다.
여단장으로부터 그러한 건의를 받았던 나는 6·25전쟁 때부터 아군의 OP로 이용되어 왔던 것으로 알고 있는 그 봉우리의 명칭부터 먼저 정한 연후에 그 명칭을 관측소의 이름으로 따 붙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때 주위에서는 전설의 주인공인 그 여인의 한을 달래 주기 위해 그 봉우리에 비(碑)라도 하나 세워주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의 복안을 세운 다음 청와대에 들러 박 대통령에게 의논을 드렸더니 그 전설에 대해 흥미로운 관심을 표명한 박 대통령은 즉석에서 그 봉우리의 이름을 애기봉(愛妓峰)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고, 또 그 봉우리에 세울 비에 새길 글씨(愛妓峰)까지 휘호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여단에선 그 OP의 명칭을 애기봉이라고 명명하는 한편 그 봉우리의 일각에 그 전설 속의 여주인공인 애기의 한을 달래기 위해 비를 세우기에 이르렀는데, 1967년 10월 7일에 거행된 그 애기봉비 제막식에는 행사부대 장병들 외에 합참의장 장창국(張昌國) 대장을 위시하여 미 1군단장, 공정식 전 해병대사령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경기도지사 등의 내외 귀빈들이 참석을 했었다.
그리고 그 날 여한에서는 그 비(애기봉)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모형을 귀빈들에게 하나씩 증정했는데, 愛妓峰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 그 비의 모형은 그 봉우리의 이름도 지어 주고 휘호도 해 준 박대통령에게도 증정이 되 었다.
한편 아군의 관측소가 있는 그 봉우리가 애기봉으로 명명이 되고, 또 봉우리에 그러한 비가 건립되었다는 소식이 매스컴을 통해 전해지자 그 후 적지(敵地)를 지호지간(指呼之間)에서 관측할 수 있는 그 애기봉의 아군 관측소를 찾는 내외 귀빈들의 발걸음이 한층 더 잦아지기 시작했고, 특히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 무렵이 되면 그 애기봉에 화려한 크리쓰마스 추리를 장식해 놓고 공산학정(共産虐政)에 시달리고 있는 북녘 동포들에게 성탄을 알리고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종교인 단체들과 장법들의 성탄 축하행사가 연례적인 행사로서 성대하게 거행되어 왔었다.
출처 : 예비역 해병대장 강기천(姜起千) 제7대 해병대사령관님 회고록 "나의 人生旅路"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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