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人生旅路 - 9. 해병대사령관 시절
(6) 커피 속의 이물질
1967년 7월 하순경의 일이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청와대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고 박 대통령을 배방했더니 대통령께선 나에게 이러한 말을 했다. 즉 각 군 총장들과 함께 포항으로 내려가서 부대 훈련장도 시찰하고 해수욕장에서 수영도 하며 하루를 즐기고 오자는 것이었다. 그 일은 곧 추진이 되었으나 그러한 과정에서 나는 요인들에 대한 경호문제 때문에 예사로운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정확한 시기는 알지 못하고 있으나 그 날 포항으로 내려갈 때 바로 그 무렵에 도입이 된 박 대통령의 전용기(專用機)에 함께 탑승했던 사람들은 각 군 참모총장(金桂元 대장과 金榮寬, 張志良 총장)과 해병대사령관, 이후락(李厚洛) 비서실장, 박종규(朴種圭) 경호실장 등이었고 김종필 공화당 의장과 박경원 내무장관을 비롯한 몇몇 당 간부들과 경북지사 등 도내 기관장들은 현지에서 합류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날 그 전용기의 기내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 즉 원형으로 된 탁자 가에 마련되어 있는 좌석에 앉아 있던 나는 안전벨트가 조금 작아서 한쪽 손으로 그 끝 부분을 움켜잡고 있었는데,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박 대통령이 몹시 우습다는 표정을 지으며 "강 사령관, 해군 총장 좀 보시오, 해군 총장···"하며 건너편 탁자 밑으로 들여다보이는 김영관 총장의 좌석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인가 하고 그 아랫쪽을 살펴보았더니 그 좌석에 붙어 있는 안전벨트가 모두 체구가 왜소한 박 대통령의 허리에 알맞는 사이즈로 만들어진 것인지 나보다 휠씬 체구가 비대한 편이었던 그 김 총장은 그 벨트를 가지고 허리를 맬 생각은 하지 못하고 한쪽 허벅지에 끼워 매고 있었으므로 내가 보기에도 참으로 가관지사(可觀之事)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잠시 구경거리가 된 김영관 총장과 나는 박 대통령처럼 체구가 왜소하여 안전벨트를 제대로 매고 있는 장지량 공군 총장에게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여보, 장 총장, 혹 이 안전벨트 당신 체구에 맞는 사이즈로 주문한 것 아니요?" 하고 농을 하자 장 총장은 그 표정이나 말투로 보나 마치 박 대통령을 대신해서 대꾸하듯 "당신네들 몸이 뚱뚱해서 몸에 맞지 않지, 이 안전벨트가 뭐가 그렇게 짧단 말이요."하고 대꾸하여 그 자리를 폭소의 도가니로 화하게 했다.
그 날 대통령 전용기가 영일비행장에 도착했던 시각은 오후 2시경이었다. 비행장에서 내린 대통령과 수행원 일행은 사단본부 상황실로 안내되어 브리핑을 청취한 다음 게릴라훈련을 실시 중인 특수교장을 비롯한 주요 훈련장을 시찰한 연후에 해변가에 있는 사단전투수영장으로 가서 준비된 수영복들로 갈아입고 일광욕을 즐기기도 했다.
그 전투수영장에는 내가 사단장 정광호(鄧光鎬) 소장에게 지시하여 만들어 놓은 귀빈용 천막(취침용)과 야전용 식당, 샤워장, 화장실 등의 부대(附帶)시설물이 불편함이 없게 잘 갖추어져 있었는데, 사단에서 그 시설물들을 하루 전날 밤을 새워 만들어 둔 것이었다.
그 날 저녁 박 대통령과 그 곳에서 합류한 모든 인사들은 길다란 천막으로 가려져 있는 산뜻한 야전용 식당에 둘러앉아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 가며 반주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했다. 그 식탁에는 영일만 일대에서 생산되는 싱싱한 해산물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그 날 밤 박 대통령은 도시와는 전혀 환경이 다른 그 해변가의 대자연 속에서 시원한 파도 소리와 총총히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을 가까이 하며 도란도란 환담을 나누고 때로는 홀로 명상에 잠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 날 밤 박 대통령 천막 바로 옆 천막에 위치하고 있던 나는 물론 경호실장이나 사단장 등 그러한 문제를 위해 신경을 써야할 사람들이 따로 있긴 했지만 나로서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어 종합적인 경비상황을 간단없이 보고받고 체크하고 지시하느라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침이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그 야전용 식당에 둘러앉아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조반을 마친 박 대통령은 식후에 갖게 된 티 타임 때 커피잔을 입술에 갖다 대고 잠시 맛을 보더니만 "맛이 좀 이상한데···?" 하며 그 잔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가 다시 그 잔을 들고 맛을 본 다음에도 역시 "맛이 좀 이상해."하곤 그 잔을 다시 내려놓더니만 이내 그 잔을 들어 나에게로 건네주며 "강 사령관, 이 커피 맛 좀 보시오!"라고 했다.
그 순간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 식탁 둘레에 앉아 있던 대통령 주치의(主治警)와 비서실장, 경호실장 등은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따라서 그 때까지 화기애애했던 그 식당 분위기는 돌연 찬물을 끼얹은 듯한 분위기로 전환이 되는 바람에 커피를 마시고 있던 좌중의 모든 사람들도 잔을 놓으며 대통령과 나에게로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한데,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조심스럽게 잔을 받아 든 나는 대통령께 타 드린 커피 맛이 어째서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하며 마치 검식관(檢食官)이 검식을 하듯 살짝 맛을 음미해 보았더니 어찌된 영문인지 그 맛이 이상했다.
분명히 커피 맛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맛 속에 정종 술맛이 약간 곁들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일단 맛을 본 나는 순간적인 판단으로 이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왕에 각하께서 주신 잔이니 제가 마시겠습니다."하고 한 모금에 마셔 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시종 나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대통령은 다소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어줍게 웃어댔고, 좌중의 인사들도 덩달아 의미없는 너털웃음들을 웃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박 대통령은 딴 잔에 새롭게 타 온 커피를 앞서처럼 맛을 본 후에 아무 말 있이 마시고 있었는데, 그 시각을 전후해서 박 대통령은 내 얼굴에 이상이 없는지를 알아보려는 듯 이따금 나의 표정을 뜯어 보는 눈치였고, 또 티 타임이 끝난 후 천막으로 돌아간 후에도 그러한 시선을 나에게로 보내고 있었다.
한편 대통령에게 타 드린 그 문제의 커피 속에 어떠한 이물질이 들어가 있었고, 또 어떻게 해서 그 이물질이 가미(加珠)가 되었는가하는 것은 주치의와 경호실 및 부대의 검식관들의 조사에 의해 곧 판명이 되었는데, 확인된 그 진상을 내가 직접 대통령 천막으로 가서 보고를 드리고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사과를 드렸더니 그제야 박 대통령은 진짜 너털웃음 같은 너털웃음을 소탈하게 웃었다.
박 대통령을 그토록 소탈하게 활짝 웃게 했던 그 사건의 진상은 이러했었다. 즉 그 날 아침 주방에서는 주방직원들이 대통령에게 커피를 타 드릴 약간의 물과 대통령께서 찾을지도 모를 약간의 정종술을 두 개의 작은 은주전자에 끓이거나 데워 놓고 있었는데, 문제는 커피를 타던 포항기지사령부 비서실 아가씨가 그 정종 주전자를 주전자로 착각했던 나머지 반 컵 남짓한 정종술에 약간의 커피프림과 설탕이 혼합이 되고 만 것이었다.
한데, 그러한 원인이 규명된 후로는 더 이상 내 얼굴을 살피려 하지 않던 박 대통령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서울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오후 늦게까지 계속 그 해수욕장에 머물러 있으면서 수영도 하고 일광욕도 했고, 또 마치 동심(童心)의 세계로 돌아간 듯 바닷가에서 잡은 작은 게와 큰 조개를 둔치 가에 손으로 움푹 파놓은 물 속에 넣어 싸움질을 시켜 놓고 구경을 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후 4시경이 되자 이후락 비서실장은 그 다음 날 아침 경제기획원에서 경제동향(經濟動向) 보고가 있다는 말을 나에게 하면서 각하에게 서울로 올라가자는 말을 해 달라고까지 했는데, 결국 그 날 박 대통령과 수행원 일행이 그 해수욕장을 등졌던 시각은 오후 6시 30분경이었고, 또 대통령의 전용기가 영일비행장을 이륙한 시각이 오후 7시 30분경이었으니 대통령은 그 날 진종일을 그 해수욕장에서 머물러 있은 셈이었다.
한편 그로부터 수일 후 나는 박종규 경호실장의 초대로 모 요정에서 그와 자리를 같이 했는데, 그 날 박 실장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즉 그 날 아침 각하께서 커피잔을 나에게 건네주며 맛을 보라고 했을 때 순간적으로 아차 하는 생각과 함께 큰 충격을 받았으나 결국 내가 그 잔을 다 비움으로 해서 만사가 다 해결이 되고 말았다면서 만약에 내가 그 잔을 비우지 않고 맛이 이상하다면서 탁자 위에 내려놓았더라면 필시 복잡한 문제가 제기되었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 당시 그러한 얘기가 신문지상이나 방송에 비치지 않았던 것은 그 전날부터 취재기자들의 접근을 철저히 배제했기 때문이었다.
출처 : 예비역 해병대장 강기천(姜起千) 제7대 해병대사령관님 회고록 "나의 人生旅路"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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