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人生旅路 - 9. 해병대사령관 시절
(7) 박 대통령의 조위 서신
1967년 12월 18일이었다. 그 날 나는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보내온 다음과 같은 친필서신 한 통을 받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금일봉(金一封)과 함께 보내 왔던 그 서신에는 이러한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다.
즉 그 해 12월 3일 빈손 전투에서 장렬한 전사를 한 서용구(徐容九) 대위의 유족에게 조의를 표해 달라는 부탁과 동봉한 조의금을 유족에게 전하여 자녀들의 학비에 보탬이 되게 해 주었으면 하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 서신을 읽어 본 나는 한편으론 송구스럽고, 한편으론 깊은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정사(政事) 다망한 대통령께서 그토록 세심한 배려를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통령의 그러한 뜻을 고인의 유족에게 전달하고 위로의 뜻을 함께 표했지만 그 서신에 담긴 박 대통령의 배려가 너무나 자상하고 감동을 주는 것이었기에 나는 그 서신을 액자에 넣어 오늘날까지 보관해 오다가 이 회고록에 그 얘기를 수록하고 그 서신도 함께 공개키로 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1968년) 6월 26일, 나는 박 대통령으로부터 보내온 또 한 통의 친필서신을 받았는데, 그 서신에 적힌 전사자의 계급과 성명은 대위 은명수였고, 서신의 내용은 첫번째의 서신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박 대통령의 조위서신
참고로 적어 두는 것이지만 1967년 12월 3일에 전사했던 서용구 대위(포병장교·해간 28기)는 추라이지구에서의 마지막 작전인 「용로작전」 기간 중 월남 민병대(民兵隊)의 부락 방어를 지원하기 위해 포병대대 연락장교로서 빈손 군청(郡廳)에 파견되어 있다가 적 게릴라의 야간 기습공격을 격퇴시키기 위해 노력하던 중 장렬한 전사를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1968년 6월 4일 호이안지구에서 전개된 서룡작전(瑞龍作戰) 때 소속 중대(1대대 1중대)를 진두 지휘하여 수색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적이 부설해 놓은 부비트랩의 폭발로 전사를 했던 은명수 대위(해사 15기)는 해사 시절(海士時節) 해사 축구팀의 이름난 수문장(守門將)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출처 : 예비역 해병대장 강기천(姜起千) 제7대 해병대사령관님 회고록 "나의 人生旅路"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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