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기('50년) - 야크기를 공격했던 변인철 상사
6.25전쟁 발발 당시 해군본부 위병분대에 배치되어 있었던 변인철씨(해병1기)는 6월 26일 오후 2시경 5대의 북한 공군 야크기(YAK)가 김포비행장을 폭격하기 위해 내습했을 때 해군본부 위병중대에서 보유하고 있던 켈러버50 중기판총을 해군본부 건물(일제때의 三井백화점) 옥상에 거치해 놓고(부사수는 김성룡 해병) 대공사격을 한 전설적인 인물이며, 또한 그는 여도(麗島)에서 근무할 때 여도에 주둔하고 있던 미 해병고문단과 영국군 해병소대 및 한국해병부대가 겨룬 81밀리박격포 사격시합에 한국해병 대표로 선발되어 우승을 한 역전의 용사이다.
6.25전 제주도에 주둔하고 있던 해병대 사령부에서는 박이직 소위가 지휘하는 1개 소대의 병력을 해군본부로 파견하여 해군본부 위병(경비)중대에 배속시켰는데 그 1개 소대의 병력은 6월 28일 새벽 전차대를 앞세운 북괴군이 미아리고개를 넘어 서울시내로 진입하자 서빙고쪽에 포진해 있다가 한강을 건넜고, 정부가 대전에 머물러 있는 동아에는 대전 시내의 원동초등학교에 머물러 있다가 그곳에서 다시 대구를 거쳐 부산으로 이동, 부산항 제1부두로 철수한 해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원대(해병대사령부)에 복귀하여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1.4후퇴 직후 여도(麗島)부대(독립42중대) 창설요원으로 발령을 받았던 변인철 하사는 신도(新島) 모도(茅島) 황토도(黃土島)까지 관장하고 있었던 대도(大島)부대(부대장 홍일승 중위)의 선임하사관으로 근무했는데, 그가 남긴 증언에 따르면 대도에 상륙할 때 함께 상륙했던 1개 소대의 영국 해병들(여도 주둔부대)은 약 200명의 나환자가 살고 있는 마을(일제때부터 있었던 나환자촌)을 살피고 그날로 여도로 돌아갔는데 그로부터 수일 후 대도에는 영국군 해병소대의 안내로 대도에 상륙한 3~4명의 미 7함대 소속 군의관들이 무섭도록 징그러운 나환자들의 환부를 일일이 살펴 가며 천사들처럼 극진히 치료해 주는 것을 목격했고, 또 우리 해병들이 단 한 곳 밖에 없는 우물물을 소독하여 그들과 함께 길러서 마시고, 또 그들이 구걸하는 건빵과 화랑담배를 나누어 주자 그들은 해병들이 대도에 상륙한 지 닷새째가 되던 날 해병들을 위한 극진한 환영회를 베풀었다고 하는데, 그날 그들은 그들이 간직하고 있던 고운 옷도 꺼내 입고 검정 고무신도 신었으며, 또 황토마루 언덕 같이 민숭환 눈두덩 위에는 숯으로 그린 눈썹들이 시커멓게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한편 대도부대 선임하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던 변인철 하사는 그 후 모도(茅島)의 민간인들을 후방으로 철수시키라는 명령을 받고 그 임무를 수행하던 중 모도에 상륙한 모도부대(1개 소대)의 선임하사관으로 눌러 앉게 되었는데 변 하사에게 모도의 민간인들(20~30명)을 후방으로 철수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지게 되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애당초 모도에는 윤 모 중사가 대장으로 있는 대도파견대(분대병력)가 있었는데 그 파견대의 책임자인 윤 중사가 10여 명의 민간인을 범선에 태워 적정 탐색을 위해 밤중에 대안(對岸)의 적지(敵地)를 향해 떠났다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혼자서 돌아와 가족들의 원성을 사게 되자 여도부대 본부에서 그 윤 중사를 후방으로 전속시키는 한편 모도의 주민들을 후방으로 피난시킨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모도부대의 선임하사관으로 근무하는 동안 변인철 하사는 4대(代) 모도부대장으로 부임한 이경하 중위(해간 3기)가 고지 위의 벙커안에서 엥글리코맨들과 함께 근무하고 있는 미 해병대의 고문관이 인사도 잘 하지 않고 거만하게 군다는 이유로 그의 콧대를 꺾기 위해 경기관총과 소화기 등을 동원해서 백주에 미군 벙커에 대한 위협사격을 가하여 그들을 백기를 들고 항복하게 했으나 동해지구 위수사령관과 여도부대 수석고문관을 겸하고 있던 라이니키 대령과 함께 헬기를 타고 비래한 동해부대장 김광식 소령에게 체포되어 여도부대 헌병대 영창에 수감된 그 난동사건을 어느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산 증인이었다.
심혜택 대위가 독립42중대장(여도부대장)으로 있을 때 개최된 그 한․미․영국해병 81밀리 박격포 사격시합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변인철 하사는 ‘존웨인’을 닮은 명사수라며 치켜세운 라이니키 대령의 특별한 요청으로 헬기를 타고 우리 해병대의 병력이 배치되어 있는 섬(원산만 내의 여러 도서)으로 떠내려 오는 북괴군의 기뢰를 MI소총으로 쏴서 폭파시키는 일을 도맡다시피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해병대 사령부의 제4대 주임상사를 역임함 그는 애석하게도 몇 해전 암으로 타계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 1 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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