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부사관 글/해병하사 권동일

베트남 정글전 실록 - 스콜(Squall) 4 - 전투중대 배치를 받고

머린코341(mc341) 2015. 5. 9. 18:43

베트남 정글전 실록 - 스콜(Squall) 4 - 전투중대 배치를 받고

 


처음으로 전투중대 배치를 받은 곳은 추라이 변두리에 위치한 000고지의 밀림으로 아름답게 우거진 산의 정상이었다. 긴장했던 마음에 비해 아늑하게 보이는 절이며 우거진 밀림은 나를 여행자인양 착각하게 만들었다. 특이하게 생긴 나무들이며 엉켜서 하늘을 가린 밀림이며 이국 새들과 죽 늘어진 바나나와 야자수가 한없이 낭만적으로 보였다.


중대진지 밖에서는 원숭이가 우거진 정글 속에서 이 나무 저 나무를 건너다니며 재롱을 부리고 있었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방석(중대진지)으로 들어갔다. 구릿빛으로 변한 여러 얼굴들 중에는 낯익은 얼굴도 있었다. 건강한 그들의 얼굴을 보니 말할 수 없는 반가움과 함께 새로운 기대가 생겼다. 중대의 전방초소에서 VC(베트콩)와 교전중인지 가까운 거리에서 기관총 소리가 들려왔다.


중대장(문수장 대위)에게 중대 전입신고를 끝내고 난 뒤 나는 3소대장(권영술 중위)으로부터 분대장의 직책과 함께 분대원들을 인수받았다. 11명의 검게 그을린 얼굴들이 집합한 채 눈을 부릅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오늘부터 여러분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 할 권동일 하사다. 숱한 전투에서 단련된 여러분의 건강한 모습을 보니 마음 흐뭇하다. 여러분들도 잘 알겠지만 나는 상급자이긴 하나 전투에서는 초년생이다. 대로 미숙한 점이 있더라도 여러분의 아량과 협조를 바란다. 짧은 시일 내에 이곳의 전투상황을 익혀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분대장이 될 것을 약속한다.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한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


한사람씩 직책을 물으면서 굳은 악수를 했다.
1조장 : 병장 박현규 일병 이일구 일병 최원식 일병 김일도
2조장 : 상병 정상도 일병 이원웅 일병 김원기 이병 장원도
3조장 : 상병 김상식 상병 오혜철 일병 이강철(이상 11명)


11명의 생명을 인수받고 보니 마음이 무거워 졌다. 자나깨나 고국에서 무사히 돌아올 아들을 기다리고 있을 분대원들의 부모님과 가족들을 마음 아프게 해서는 안 되는데...


박 해병(박현규 선임조장)의 안내를 받으며 방석(중대진지)을 한바퀴 돌았다. 중대가 이곳에 진지를 구축한지 6개월이 지났다고 했다. 또 우리중대를 여단본부에서나 대대본부에서 일명 '아파치 요새'라고 부른다고 했다.
중대진지 구축은 분대와 분대, 소대와 분대, 소대와 체(중대본부)그리고 각각 초소가 거미줄 같이 연결되어 있었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인원과 시간을 투자하여 이렇게 땅굴(일명 토끼굴)을 팠는지 나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CP옆에는 어느 때에나 머리를 깎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야자수 그늘 밑에 이발소(대구 이발관)가 있었다. 또 한 아담한 휴게실까지 있어 언제나 바둑과 장기는 물론 라디오를 들을 수도 있었고 주변 환경도 깨끗했다. 분대, 소대, 중대진지 등 어느 벙커에 들어가도 휴지조각 하나 뒹굴지 않고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다.


변기의 손질상태를 봐도 어느 한 부분도 녹슨 곳이 없이 기름칠이 되어 있어 언제라도 실탄만 장전하면 사격 할 수 있도록 손질이 완벽했다. 박해병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병기손질이 완벽할 수밖에 없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병기 손질은 누가 시키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 알아서 항상 적의 기습 공격에 대비해 틈 나는 대로 병기 손질을 합니다. 손질되어 있지 않는 병기는 아무리 방아쇠를 당기고 두드려도 사격이 되지 않습니다. VC는 가까이 인접해 오고있는데 무용지물이 된 병기를 가지고 안타까워해 본 경험들이 있기 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항상 손질을 합니다."


박 해병은 한달 전 청룡부대에 새로 지급된 M16소총은 분해 결합이 손쉽고 가벼우면서도 기동이 편리하고 화력이 다른 소총에 비해 우수하다는 것도 덧붙여 말해주었다.


전후방이 없는 전선이라고 익히 교육은 받아왔지만 둥글게 원형으로 중대진지를 구축해 교통 호를 만들어 놓은 근무초소에는 주간에도 근무 자들이 땀을 씻어가며 진지 경계에 여념이 없는 것을 보고 더욱 실감을 했다. 야간 경계는 쥐새끼 한 마리 움직이는 데까지 신경을 쓴다고 했다.


원숭이나 개가 부비트랩을 건드리는 바람에 지뢰가 터져 중대 전원이 전투태세에 임했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진지 밖에는 이, 삼중으로 겹겹이 철조망이 쳐 있었고 철조망과 나뭇가지사이에는 조명지뢰가 열매 달리듯 달려 있었다. 철조망 앞 전방에는 수없는 지뢰와 부비트랩이 매설되어 있어 사람으로서는 지뢰밭을 뚫고 들어오기가 힘들다고 했다.


철조망과 지뢰밭을 지나면 정글과 가시가 뒤 엉켜 하늘을 덮고 있고 가시 정글사이에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아 무사히 곱게 자란 이름 모를 흰 꽃들이 바람에 한들거리는 게 마치 우리 나라의 메밀밭 같다고 했다. 박해병이 손을 들고 150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숲을 가리키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원각사 8층탑에서


"저 숲 속에는 원각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절에는 주지가 가족을 데리고 살고 있는데 우리들에게 잘해 줍니다. 중대에서 한번씩 C-레이션(전투지에서 먹는 식량으로 각종 고기류와 과자, 과일 등으로 된 통조림)을 갖다 주기도 합니다"
"그래 가볼수 있나?"
"예 가봐도 됩니다."
"한번 가보자. 중대진지로 올 때 헬리콥터에서 봤는데 절 경치가 상당히 좋아 보이더라"


박 해병과 같이 절로 갔다.


"우리 중대를 보고 아파치 요새라고 여단에서 부르고 있지만 관광중대라고도 부릅니다. 왜냐하면 청룡부대를 찾아오는 외지 손님들이 원각사 절을 구경하기 위해 이따금씩 오기 때문에 관광중대라고 부르기도 하는 거죠."

 


박 해병의 설명을 듣고서야 중대진지가 너무도 깨끗이 정돈된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절 입구의 양쪽 길가에는 대나무가 죽 늘어서 있었다. 대나무를 자세히 살펴보니 고국의 대나무와 흡사하긴 했으나 대나무 줄기의 마디마다 가시가 돋쳐 있었다. 가시 돋친 대나무라니.... 생전 처음 보는 것이라 신기하기만 했다. 절을 따라 난 소 도로를 따라가다 보나 우물이 보였다. 우물 안을 들여다보니 밑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이 우물, 굉장히 깊은 것 같은데 깊이가 얼마나 되나?"
"제가 듣기로는 깊이가 100m정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100m나 돼?"
"중대에서 이 물을 퍼 가지고 가서 식수도 하고 목욕도 합니다."


절 안으로 들어가니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우리를 보고 인사를 했다. 그것도 "안녕하십니까?"라는 똑똑한 한국말로.


"박 해병 저 꼬마 우리말 잘 하네?"
"예 조금 합니다. 누구든지 중대에서 이곳에 오면 그때마다 한마디씩 가르쳐 주거든요."


박 해병이 주머니에서 초코릿을 꺼내어 꼬마에게 주었다.


"감사합니다."


꼬마는 다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절 주위 곳곳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해 있어 향냄새가 아니라 꽃향기가 절에 가득차 있었다. 탐스러운 꽃들은 제각기 작태를 자랑하듯 바람에 한들거리며 이국에서 온 우리에게 인사라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돌아보니 연세가 지긋한 스님이 합창을 하고 서 있었다. 나도 합창을 하면서 "안녕하십니까?" 라고 답례를 했다. 법당 안은 한국의 법당과 흡사했다. 탑들을 구경하면서 사진을 몇 장 찍은 뒤 진지로 돌아왔다.

 

 

원각사에서 꼬마와 같이


온종일 태양은 쉬지 않고 적도 위에서 뜨겁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숨이 막힐 듯한 더위에 상의를 벗었다. 추라이 상공 곳곳에는 잠자리 떼 모양 헬리콥터들이 연신 날아다니고 있었다.


"헬리콥터가 온다!"


고함소리가 들리자 미해병 앵그리크맨(통신병)이 무전기를 메고 헬기장으로 가서 푸른 연막탄을 던졌다. 헬기장 일대가 온통 푸른 스모크로 뒤 덮였다. 보급 물을 실은 헬리콥터는 c-레이션과 식수를 긷고 왔다. 헬리콥터에서 내린 중대 서무병이 가방을 들고 진지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중대원들이 우르르 서무병의 뒤를 따라 가기에 나도 같이 따라가 보았다. 서무병이 휴게실에서 가방을 내려놓았다. 편지 뭉치였다.


편지를 받아든 전우는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고 기다리던 편지가 오지 않은 전우는 시무룩해져 자신의 벙커로 들어갔다. 편지 내용이야 반가운 소식이건 차후 문제이고 우선은 편지가 왔다는 그 차체만으로 저렇게 기뻐하고 또 시무룩해지는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고.... 고국에서 보내는 편지 한 통이 이렇듯 이곳 장병들의 사기와 관련이 깊다는 것을 고국에서는 알고 있을까?


지구의 자전으로 월남에도 밤이 돌아 왔다. 어둠이 짙어지자 이름을 알 수 없는 벌레 때들이 자지러지게 울어대고 절에서 두드리는 목탁소리도 낭랑하게 들려 왔다.
"꽝! - 꽝-!"
중대에 배속된 105m/m포는 벙커가 들썩일 정도로 포격을 했다. VC의 예상접근로와 기동로에다 요란사격을 하는 모양이다. 역시 이곳의 밤은 '고요'라든가 '정적'이라는 말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전쟁터에서의 긴장된 밤이고 하는 것을 실감했다.

 

중대에 배속된 105m/m 포 진지에서


요란사격이 계속되자 주위는 포격의 진동 때문에 먼지와 포연으로 자욱했다. 포 사격을 하는 곳으로 가 보았다. '꽝-!'하고 포구에서 터지는 포 사격소리는 귀를 멍하게 만들었다. 요란사격은 VC의 이동 예상지나 예상 접근로 또는 아군의 매복지 주위에 주기적으로 하는 것으로 아침까지 계속된다는 것을 포병으로부터 들었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과 초승달을 보니 고국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밤 하늘 이였지만 별무리 속에는 고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남십자성이 반짝이고 있었다.


대대본부에 가서 '지뢰와 부비트랩'교육을 받기 위해 중대에 보급물 추진 온 헬리콥터를 타고 혼자서 여단 헬리콥터 장에 내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차가 오지 않아 대대본부까지 걸어갔다. 도로변에서 만난 월남꼬마들이 "따이한 넘버원"하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어떤 꼬마는 "자옹(안녕하십니까)"하면서 인사를 하기도 했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초콜릿과 껌을 주니 "깜온 옹(감사합니다)"하며 초콜릿을 받아들고 팔짝 팔짝 뛰어갔다.


그러자 어떤 꼬마가 "시가랫 기브미"했다. 내가 손을 저으며 담배를 피우지 않아서 담배가 없다고 하자 "초콜릿 기브미"하며 재차 손을 내밀었다. 한개 남아있는 초콜릿을 마저 주고는 도로변을 따라 계속 걸어갔다. 아오자이(옷의 일종)차림의 월남아가씨가 밀짚모자를 쓰고 맞은편에서 걸어왔다. 어깨에다 막대기를 걸치고 막대기 양끝에는 잔득 짐을 싣고 바쁘게 내 옆을 지나갔다. 왠지 월남아가씨의 뒷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도로변 양쪽으로는 야자나무가 줄지어 서있고 논에서는 농부들이 모심기에 정신이 없었다. 이국의 정경이 새삼 신기했고 어찌 보면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해서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여전히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고 있는 태양을 피해 야자수 그늘 밑을 걸어서 검문소까지 갔다.


근무주인 해병이 한 월남아가씨와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근무자는 직책상 교량을 통과하는 주민들 중 수상한 사람이나 짐은 반듯이 검문하게 되어있었다. 마침 이 아가씨가 보자기에 무엇을 싸가지고 있기에 근무자가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나 아가씨는 대답도 하지 않고 보자기를 풀어 보라고 해도 더욱 움켜쥐고 안 풀어 보이니 근무자가 신경질이 날 수밖에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화가 난 근무자는 신경질적으로 보자기를 뺏어서 풀어 보았다.


신문지 뭉치가 나왔다. 신문지를 벗겨내니 고양이 만 한 쥐 세 마리가 들어있었다. 근무 자는 쥐를 돌려주며 어디에 쓸 거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아가씨는 요리를 해서 먹는다고 대답을 했다. 좋기로는 도마뱀 요리가 최고라고 했다. 근무자의 가도 좋다는 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아가씨는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월남 농부와 같이


대대본부에 와서 도로변을 지나는 주민들을 보니 그들의 생활이 궁금해졌고 그들과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도 싶었다. 전쟁에 시달린 그들의 표정은 의욕이 없어 보였다. 도로변을 지나다니고 있는 아녀자나 농부들의 옷차림은 대부분이 상하가 검은 색 이였다. 농부들인지 상인들인지 어깨에 맨 막대기 양끝에 매달린 바구니에 잔득 짐을 싣고 분주하게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이 띄었다.


고대 중국의 풍습과 비슷한데가 있는 이곳 월남인들은 한자를 쓰고 있는데 발음만 틀릴 뿐 뜻이 같다는 한자로 그들과 통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추라이의 평화스런 촌락(VIETNAM CHULAI BIN SON)


평화스러웠던 월남에 불란서 대군이 밀려와 월남을 60년간이나 지배했고 불란서 군이 물러간 지금은 '월남 게릴라',그러니까 일명VC(베트콩)들과 '공산월맹 정규군'의 등살에 삶 아닌 삶을 살아가는 월남주민들, 일부 주민은 VC의 손아귀에 쥐여 VC를 돕고 있기도 했고 한 형제간에 형은 VC에 동생은 월남 군으로 있기도 하여 우리의 역사와 닮은 모습이 있었다.


주어진 임무와 맡은TAOR(전술 책임구역)내의 VC들을 하루 속히 소탕하는 날 월남 땅에 평화가 오겠지. 빠짐 없는 VC섬멸과 주민들에게 대민 봉사를 하는 것이 청룡부대의 가장 큰 임무이므로.

 

 

출처 : 청룡부대 1대대 3중대 작전하사 권동일 선배님의 월남전 참전수기 "스콜(Squall)"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