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부사관 글/해병하사 권동일

베트남 정글전 실록 - 스콜(Squall) 6 - 죽음의 다리

머린코341(mc341) 2015. 5. 24. 06:45

베트남 정글전 실록 - 스콜(Squall) 6 - 죽음의 다리

 

 

정들자 이별이라 더니 서먹서먹하던 중대 진지에 정이 붙을 만 하니 대대본부로부터 중대진지 이동 명령이 하달되었다. 어쩔 수 없이 중대는 이동 준비를 해야 했다.


새 진지로 짐을 실어다 줄 대형 헬리콥터가 짐을 싣고는 진지 위를 한 바퀴 돈 다음 '아파치 요새'를 떠났다. 헬리콥터 편으로 짐을 보낸 다음 중대는 완전무장을 한 채 전술대형으로 바탄강 변두리에 위치한 새로운 진지를 향해 기동을 시작했다. 미 헬리콥터가 한발 앞서 우거진 밀림을 제거하기 위해 공중에서 약품(지금 생각하니 다이옥신이 함유된 고엽제)을 살포했다.


태양은 지상의 모든 것들을 죄다 녹여버리기라도 할 듯 대단한 기세로 계속 열을 내 뿜고 있었다. 정강이까지 빠지는 늪지대의 수렁을 헤치고 나가기도 했다. 얼룩무늬 작업복이 땀에 흠뻑 젖고 또 젖으면서 수 없는 늪지대를 지나서야 중대는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든 벌거숭이 산 110고지에 도착했다.


1소대는 중대진지 편성의 계획대로 진지를 할당받은 뒤 소대장의 지시대로 임시 숙영준비에 피곤한 것도 잊어버린 채 정신없이 진지를 구축했다.   진지 구축이 끝나자 중대장(문수장 대위)은 지난번 작전중에 이 고지에서 숙영을 하면서 주. 야간을 계속 저격(스나이핑)을 받았다면서 VC의 예상 저격지점과 예상 침투로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이곳의 적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특히 중대장은 주 야간경계를 철저히 해야 됨을 거듭거듭 강조했다.


수통에 물이 떨어져 중대진지 각 소대마다 한바퀴 돌았으나 어느 소대에도 물은 없었다. 대원들은 물이 없어 하늘을 쳐다보며 헬리콥터가 물을 공급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모금의 물이라도 마실 수 있다면 살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땀은 계속 흘러내렸다. 110고지는 벌거숭이 산이고 고지에서 바라보이는 곳이라고는 넓은 개활지와 숲 그리고 길게 뻗은 바탄강 줄기, 바탄강 너머의 끝없는 바다뿐... 앞으로 이곳 110고지의 생활이 염려되었다.


대대본부에서 작전명령이 하달되었다. 실탄, 수류탄, c-레이션 등을 차곡차곡 배낭에 넣은 다음 헬리콥터에 순서대로 탔다. 중대진지를 떠난 헬리콥터는 잠시 후 대대본부에 도착, 착륙했다. 대대작전 장교로부터 세밀한 작전 명령을 받고 07시00분경 지엠시에 승차했다. 지엠시는 곧장 작전지역을 향해 출발했다.


추라이의 5번 도로를 질주하는 지엠시들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첫 목표지역인 x지점(b.s 527,779)으로 먼지를 일으키면서 곧장 달렸으며 앞에서 달리는 차량의 먼지로 우리들은 숨쉬기조차 곤란했다.


분대장인 나는 분대원들과 약속을 했다. 해병답게 용감하게 전투에 임하고 전우애를 발휘하자고...얼룩무늬의 작업복이 앞 차량의 먼지를 뒤집어써 하얗게 된 뒤에야 차에서 내렸으며 30여분간의 차량행군이 끝나자 '개인거리 확보'를 앞으로 전달하면서 도보로 기동했다. 이번작전은 한, 미, 월 합동작전으로 R-BIN과 USMC(월남 군과 미 해병대)는 차단임무로 들어가고 중대는 VC들의 중앙부에 진입하여 VC를 소탕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5번 도로를 따라 전술종대로 목표지점인 X지점을 향해 계속 진출했다.


기동 중에 피난민들과 마주쳤으며 선량한 그곳 주민들은 살던 곳을 떠나 안전지대를 찾아 이동을 하는 중이였고 수많은 주민들과 마주치면서 계속 기동을 해야했다. 피난민들은 아기를 업고 짐을 지고 소, 돼지, 닭 등 가축을 끌면서 계속 밀려왔다. 40여분을 피난민들과 부딪치며 기동한 뒤에야 X지점(BS 527,770)중심부에 도착했다. 수십 분간 계속되던 긴 피난민 행렬이 지나가자 우리가 기동하든 전방과 측방에는 타다 남은 초가집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고 나무도 앙상한 가지만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어린 자식을 가슴에 안고, 등에 업고 - 피난민들


우리는 작전지의 중심부에서 소대장으로부터 새로운 지역의 세부적인 작전 명령을 받고 이동 진출준비에 바빴다. 발을 디디는 곳마다 함정과 지뢰와 부비트랩이 매설되어 있었다. 분대 일부는 경계를 하면서 제거도 하고 폭파도하면서 목표지역을 향해 계속 진출하였다.


작전지역에서 3일간을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속에서 보냈으며 월남에 와서 처음보는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이였다.VC는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구경하지 못한 채 지친 우리들은 쌓인 피로를 풀기위해 바나나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바나나 그늘 밑에서 휴식을 취하며 보냈다.


C-레이션과 파인애플로 식사를 끝낸 우리들은 Z목표지점을 향해 다시 진출했다. Z목표(B.S453,773)지역에서 임시진지를 구축하고 숙영준비를 끝낸 우리들은 야간경계에 들어갔다.


하늘에 총총히 떠있는 별무리 중에서 남십자성이 유난히 반짝였으며 초조한 시간은 더욱 긴장감을 고조 시켰고 이따금 '부스럭'하고 주위에 숲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면 신경이 곤두서서 식은땀이 흘렀다. 전투지역 치고는 주위가 '지나치게 평온한 밤'이라는 생각도 들었으며 개골 대는 개구리 울음소리는 고국의 개구리 울음소리와 다를 바 없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극성스럽게 달려드는 모기 때는 신경을 극도로 자극시켰으며 고요한 밤일수록 신경은 더욱 예민하고 날카로워지는가 보다.


그러나 이곳에서 1Km 정도 떨어졌을까? 예광탄이 줄지어 날고 포탄의 폭음소리와 기관총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에서는 조명탄이 그 일대를 비추었고 적정이 있는 지점은 이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닌 듯 했다. 아마 인접중대에 상황이 있는 모양이었다. 혹시 우리중대에서 VC의 기습이 있지 않을까 해서 온 신경을 귀와 눈에 집중시킨 채 밤을 새워야만 했고 흐르는 침묵이 전선의 밤을 함을 함께 지새워 주었다.


이곳에 작전명령이 하달되기 전까지 중대진지에 있을 때 수십번에 걸쳐 분대매복, 소대매복, 소대정찰을 하며 지도를 보고 지점을 찾고 올빼미모양 밤을 새워 VC를 기다렸건만 한번도 VC와 접촉이 없었다. 빨리 작전명령이 하달되어 죽든 살든 작전지역에 나가 VC구경이나 해 봤으면 하는 생각을 한 것이 어제 같은데 막상 이곳 작전지역으로 와서 곧 전투가 있을 것을 예상해 보니 마음이 무겁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진지에 있을 때 선배하사관으로부터, 중대작전을 나가서 VC를 생포한 이야기와 생포한 VC를 어떻게 처리하며 땅속의 굴은 어떻게 탐색을 하고 굴 모양은 어떤 구조로 되어있다는 등 많은 경험담을 들어왔다. 선배하사관들이 작전지역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인지 하나하나 가르쳐 주던 것이 새삼 떠오르며 과연 이번 작전에서 나는 어떤 전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부상, 혹시 죽지나 않을까 하는 잡다한 생각으로 밤을 새우고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이했다. 

 

 

중대의 첨병, 소대의 첨병, 분대장인 나는 선임 조장을 앞세우고 지도가 가리키는 B.S 460,778지점으로 기동을 하고 적도 위를 따갑게 내려 쬐는 태양은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 기승을 부렸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기 바쁘게 흘러내리면 또 맺히고 숲으로 우거진 마을을 뚫고 헤치며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물 샐 틈 없이 경계에 경계를 하면서 기동을 했다.


"음침한 지역이다. 부비트랩을 조심하고 경계를 철저히 하라!"

 

지시가 채 끝나기도 전에 우측 대나무 숲속에서 검은 물체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우측 대나무 숲 속에 VC가 있다 사살하지 말고 될 수 있는 한 생포하라."


S마을에 오기전 중대장으로부터, VC1개 대대병력이 주둔하고 있다는 정보를 대대본부로부터 무전 보고가 있었다며 각별한 경계를 하며 기동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VC를 생포하여 이곳의 정보를 얻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분대원들과 같이 VC가 움직인 쪽으로 두 쫓아갔으나 VC는 숲과 숲 사이로 계속 도주했다.


"1조는 좌측을 맡고 2조는 우측 3조는 계속 내 뒤를 따르라."


조장들에게 산개를 시켜가며 계속 추격했으나 어느 쪽으로 몸을 숨겨버렸는지 움직이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조심하라, 총구가 어디서 겨누고 있는지 모른다."


재삼 분대원들에게 강조하면서 최대한 낮은 자세로 V. C가 사라진 주위 숲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으나 아무 반응이 없어 분대는 숲속을 향해 일제히 위협사격을 하면서 숲 속 깊이 들어갔으나 어느 곳에도 V.C의 흔적은 없었다.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냇물처럼 줄줄 흐르고 있었다. 방금 까지 움직이던 물체가 숲 속에서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흔적이 없으니....


"조심하라. 이놈은 어디에선가 우리를 노리고 있다. 주위를 샅샅이 뒤져라. 동굴이 있을지 모른다."


분대원들에게 계속 주위를 시켜가며 주위를 샅샅이 수색할 때 1조장으로부터 동굴입구를 발견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분대원들을 동굴 주위에 배치 경계시켜두고 소대장에게로 가서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고하자 소대장은 굴속을 탐색해야 된다고 했다.


"권하사관이 탐색해 볼래?"


소대장 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짧은 순간 굴속에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나 대신 다른 대원들을 탐색시키려고 했으나 이내 내가 살겠다고 대원들을 컴컴하고 위험한 굴속으로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1조장 이 나를 보고 빙긋이 웃고 있었다.


"예 제가 탐색하겠습니다."


나 자신을 시험해 보고도 싶었으며 동굴탐색의 경험을 쌓고도 싶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분대장으로서 분대원을 통솔하려면 솔선해야 된다는 생각에 자신 있게 대답했다.


소대장으로부터 세밀한 지시를 받고 1조장, 2조장과 함께 셋이서 동굴탐색의 준비를 했다. 랜턴, 대검, 권총, 수류탄, 수통 등등 탐색 준비가 끝나자 굴 주위를 세밀히 관찰했다. 풀로 위장된 동굴입구는 언뜻 보아서는 구별하기가 어려웠으나 자세히 보니 위장된 동굴입구임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나의 첫 동굴 탐색이었다.)

 

조심스럽게 위장된 동굴입구로 가서 덮개를 들어올리니 동굴 속에서 나온 찬바람이 얼굴에 확 끼쳐왔다. V.C의 저항과 부비트랩의 장애물을 예상하면서 한 발 두 발 세밀한 주의를 기울이며 굴속으로 들어갔다. 굴속의 높이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70Cm 정도, 넓이는 60Cm 정도로 아주 좁은 굴이었다. 그러나 바닥이 반질반질한 것을 보면 빈번하게 많은 사람들이 출입한 것이 틀림없었다.

 

굴속에서 전방을 향해 플래시 불빛을 비추며 포복자세로 굴속 이곳 저곳을 찔러 보면서 이렇게 장애물을 찾으며 VC가 있을 굴 앞쪽으로 쪼그린 자세로 계속 나아갔다. 굴 입구에서 20m정도 들어왔을까? 굴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굴 한편은 1조장인 정상병에게 경계케 하고 나는 우측 굴 쪽으로 접근해서 조심스럽게 탐색하며 전진했다. 얼마를 갔을까? 인기척이 들렸다. 분명 앞쪽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숨을 죽이고 권총은 앞쪽을 향한 채 플래시 불빛으로 전방을 비췄다. 여차하면 발사할 태세로 방아쇠 잡은 손가락에 힘을 준 순간 긴장감이 전신에 엄습해 왔다.


"라이 라이(나오라)"


나는 앞쪽을 향해 소리 질렀다.


"라이 라이"


플래시 불빛으로 앞쪽을 비추었으나 구부러진 굴 앞쪽은 더 보이지 않고 인기척이 또 들렸다.


"라이 라이"


다시 소리를 질렀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어 권총을 두발 쏘았다.
"탕- 탕-"

 

 

요란한 총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굴속을 맴돌았다.


"노 라이 라이 괘골락(안 나오면 죽인다)"


나는 몇 번을 반복하여 소리를 질렀고 그리고 공포를 한발 더 쏘았다. 그러자 앞쪽에서 손이 보였고 순간 긴장감이 최고에 달했다. V. C는 손을 들고 무릎으로 기면서 조금씩 다가오고 있으며 조금이라도 이상한 자세가 보이면 방아쇠를 당기려고 상대방 눈빛을 보며 플래시 불빛을 V.C에게 비춘 채 한발씩 뒤로 물러났다.


"라이 라이.  라이 라이."


나는 계속 '따라 나오라'고 외치며 조금씩 뒤로 빠졌고 V.C는 두 손을 머리에 얹은 채 무릎으로 기면서 계속 다가왔다. 정 상병이 있는 갈래 길까지 와서 조금 넓은 공간을 이용해 V.C를 내 몸 가까이 접근시켰다. 몸수색을 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사고가 생기면 이건 내 책임이다. VC의 가슴을 향해 총구를 겨눈 채 몸 구석구석을 수색해 보았으나 방망이 수류탄 2개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더 이상 다른 것을 찾지 못해 VC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생포다."


굴 주위에 있던 대원들의 소리가 들렸고 소대장에게 보고를 하면서도 내가 진짜 VC를 생포했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소대장에게 보고를 받은 중대장은 V.C에게 정보를 얻어내야 한다면서 신문하기 시작했다.


V.C의 복장은 아래 위 검정 옷에 맨발이어서 여느 월남 농부와 다름이 없었다.   우린 월남에 파병되기 전에 특수 교육 대에서 기초 월남어 교육을 받았다. 주로 작전지역에서 사용되는 용어 위주였으며 그리고 항상 번역된 월남어 수첩을 휴대하고 다녔기 때문에 월남에서 몇 개월만 지내면 웬만큼 알아들을 수도 있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게된다.

 

통하지 않는 것은 손짓 발짓을 동원하면 대충은 의사소통이 되었으며 틈틈이 먼저 온 파월 선배에게 월남 어를 배웠다.
월남어에 능숙한 한 대원이 V.C에게 물었다.


"굴속에 몇 명이나 더있나? V.C가 많이 밀집해 있는 곳은 어디지?"
"꽁백(모른다)"


10여분간을 재차 묻고 또 물어도 V.C의 대답은 한결같이 "꽁백"이었다. 그러자 꿇어 앉아있는 VC의 얼굴을 걷어차면서 '개색끼 뒈져라'하고 소리 질렀다. 군화에서 차인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군화에 차여 피를 흘리면서도 V.C의 얼굴은 조금도 찡그린 표정이 아니었고 아프다는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월남에 와서 처음으로 V.C의 피를 보았으며 피를 흘리면서도 V.C는 계속 "꽁백"이란 말만 되풀이했다. 어쩔 수 없이 동굴을 다시 탐색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곳 월남에서 전투를 하려면 무엇보다도 굴 탐색을 잘해야 된다는 것을 몇 차례 들었고 교육대에서도 굴 탐색만큼은 누구 못지 않게 해야하고 또 회피하거나 몸을 도사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었다.

 

조금전 굴 탐색의 경험으로 얼마의 자신을 얻은 난 새로운 각오로 굴 탐색에 나섰다. 신념과 영웅심 그리고 경험을 얻기 위해 어둠 속에서 도사리고 있을 V.C들의 저항을 머리속에 그려보며 굴속으로 들어갔다.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며 두 갈래의 갈림길까지 와서 정상병을 배치시키고 박병장과 함께 V.C를 생포한 곳을 지나 10m 더 들어가니 굴이 끝이 났다. 굴 끝 부분에서 대검으로 구석구석 쑤셔가며 사면을 조사해 보았지만 끝 부분은 어느 곳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고 다만 머리 윗 부분에 주먹만한 숨구멍이 뚫려 있을 뿐이었다. 실망감이 고여 왔으나 정 상병이 지키고있는 왼쪽 굴을 상상해보며 정상병 있는 곳까지 오니 정 상병이 '굴이 막혔더냐'고 물어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왼쪽 굴을 향해 조심조심 탐색해 들어갔다.

 

굴속은 비스듬히 밑으로 기울어지면서 패어져 있었고 굴의 크기와 규모도 아까와는 달랐다. 아이들이 서서 다닐 수 있을만한 높이와 넓이였고 굴은 계속 연결되면서 꾸불꾸불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박 병장과 정상병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가면서 내 뒤를 따라왔고 작업복은 땀으로 흠뻑 젖었으며 다리가 아프고 고개가 뻣뻣했다.


"박 병장 현 위치에서 잠시 쉰다. 간격을 유지한 채 쉬면서 담배나 한 대 피워라."


잠시 쉰 다음 계속 탐색할 생각으로 박병장에게 지시하고 수통에 물을 한 모금 마셨고 땀은 계속해서 비오듯 흘러내렸다. 잠시 쉰 다음 다시 구부러진 굴의 벽 그리고 천장을 플래시 불빛으로 세밀히 조사해 나가며 행여 인기척이라도 들리지 않나 싶어 귀를 곤두 세웠다.


이따금 플래시 불빛에 보이는 것은 허리에 동여맬 수 있는 쌀자루, 호지맹산타루(신발),의류 약품들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들을 확인하고서는 앞쪽을 향해 계속 들어갔다.


굴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 이였으며 높이가 1m50Cm 정도로 상당히 큰 편이었다. 지저분한 물건들을 뒤로 두고 계속 나아갔다. 조금 전까지 먹다가 버리고 간 듯해 보이는 밥과 배설물이 악취를 풍기고 긴장감이 다시 엄습해 오고 가슴의 고동이 더욱 세게 뛰었다.V.C가 바로 앞에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닌 것 같아 초조감이 엄습해 올수록 땀은 더 많이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초조한 나머지 수통의 물을 한 모금 마셨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저항해올지 모르는 V.C의 저항상태를 그려보면서, 권총을 쥔 손에도 땀이 주르륵 흘렀다.


그때였다. 앞쪽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 둘... 그보다 훨씬 많은 숫자인 것 같았으며 인기척 소리는 계속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대검을 허리에 찬 대검집에 도로 꽂고 수류탄 한발을 플래시를 든 왼손에 같이 들었다. 오른손에 든 권총은 앞쪽을 향해 겨누면서 숨을 한번 크게 내쉬고 온 신경을 앞쪽으로 집중시켰다. 굽어져 있는 굴 앞쪽으로 플래시를 비추는 동안 몸 구석구석에서는 알지 못할 경련이 일어나면서 숨이 막힐듯한 긴장의 순간이 흘렀다. 과연 V.C를 생포하고 웃는 얼굴로 태양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호흡이 순조롭지 못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박병장과 정상병은 잘 들어라. 앞쪽에 VC가 있는데 한두 명이 아닌 것 같다. 만반에 준비를 하고 기습공격에 대비하여 간격을 충분히 유지하라."
"알았습니다." 

 


 

박병장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앞쪽에서 '찰칵'하는 금속성이 들렸다. 나는 재빨리 몸을 벽에 밀착시켰다.
  "라이 라이. 라이 라이."
  계속해서 나는 소리를 질렀다. 곧 격전이 시작될 것이다. 누가 승자가 되고 누가 패자가 될는지....,

굴 탐색의 초년생인 난 마음이 약해짐을 느끼고 굳은 마음으로 승자가 되어야한다고 나 자신에게 명령을 내렸다.

시계를 보니 정각 12시(정오), 몇 분 후면 승패가 나누어지겠지.


  "굴속에 들어온 지 1시간 가까이된다. 최소한 우리의 안전을 고려하고 저항하는 놈은 무조건 사살하라. 순순히 응하는 놈은 생포한다. 10명이 넘을 것 같으니 조심하고 권총의 자물쇠를 다시 한번 확인해라."


  나는 대원들에게 주위를 주고 다시 V.C들을 향해 소리쳤다.


  "라이 라이, 라이 라이."


  아무 응답도 없고 인기척만 들려왔다.

작업복은 더더욱 몸에 찰싹 달라붙었고 이마에선 땀이 맺히기 바쁘게 줄줄 흘러내렸다.

자꾸만 작업복소매로 눈을 비벼 닦으며 조금씩 전진했다.


  "라이 라이 따이한 부꾸부꾸(나오라, 한국사람 많다.)"


 소리소리 지르고 있는데 구부러진 왼쪽 벽에서 무엇이 날아와2m 정도 앞에서 '툭'하고 떨어졌다.


  "수류탄이다!"


  고함을 치며 뒤로 몸을 날린 다음 땅바닥에 엎드렸다.


  "꽝-"


  폭음소리가 굴 전체를 뒤흔들면서 진동을 했다. 폭발 소리가 들리자 나는 앞쪽 방향으로 세발의 권총을 쏘았다.


  "탕- 탕- 탕-"


  수류탄 폭발과 동시에 포연이 자욱해져 앞이 잘 보이지 않아 V.C가 기습적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예감에

다시 권총을 두발 더 쏘았다.


  "박병장 이상 없나?"
  "이상 없습니다. 괜찮습니까?"
  "그래 아무이상 없다."


  나는 두명의 전우들과 함께 무사히 이 굴을 빠져나가겠다는 생각으로 플래시 불빛을 전방으로 비춘 다음

조심스레 땅바닥에 놓아두고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았다.

권총 한발을 더 쏜 다음 굽어진 앞쪽까지 뛰어가서 수류탄을 굴 바닥으로 힘있게 굴린 다음 엎드렸다.
  "꽝-"
폭음소리는 굴속을 왕왕 거리며 울려 퍼졌고 화염과 먼지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플래시 불빛을 앞쪽으로 비추면서 권총의 탄 창을 갈아 끼운 다음 조심조심 주의 깊게 앞쪽을 살펴가며 몸을 벽에 기댄 자세로 접근했다.


  화약연기 속에서도 피 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누군가 죽었구나... V.C도 사람은 사람인데" 하는 생각이 들자 몸이 한차례 와르르 떨렸다. VC두명이 수류탄에 의해 죽어있었다. 한 명은 몸이 완전히 찢어졌고 다른 한 명은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몸이 찌져진 V.C는 눈을 부릅뜬 상태였고 주위에는 온통 피가 고여있었다.

 

쓰러진 V.C들 주위를 살피고 있는데 앞쪽에서 또 인기척 소리가 났다. 플래시를 비추었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닥을 자세히 보니 핏자국이 앞쪽으로 이어져 있었고 V.C가 부상을 입고 앞쪽으로 기어간 것 같아 한 발 한 발 플래시를 비추면서 권총을 겨누고 10m 정도 전진하여 굽어진 곳 까지오니 V.C 한 명이 배를 움켜 쥔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기도 했으나 V.C는 이미 눈의 초점이 없는 상태였고 곧 쓰러질 것 같았으며 바닥은 피로 흥건했다. 생포하고 싶었으나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V.C를 보니 가망이 없었고 차라리 고통의 시간을 줄여주자 싶었다. 나는 죽음 직전에 얼른 죽지도 못하고 고통으로 헐떡거리는 V.C를 향해 총을 쏘았다.

박 병장이 왔다.


  "뭐 좀 찾은 거 있나?"
  "칼빈 2정하고 수류탄 5발 외에는 없습니다."
  "좋다 앞으로 계속 들어간다. 조심해서 따라 온나."


V.C의 시체를 두고 나는 박병장과 함께 앞으로 계속 탐색해 들어갔다. 굴속은 습기로 가득차 있었고 질기고 긴 나무뿌리와 풀뿌리 같은 것들로 엮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웬만한 폭발로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낼 수 있었다.

 

또한 아무리 깊고 길게 굴을 파놓은 것도 군데군데 그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지상과 연결되게 구멍을 뚫어놓고 있어 동굴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되어 있으며 또 중간 중간에 지상과 연결되는 비상구가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지금 까지 오면서 여섯 개의 숨구멍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위장 함정이 보였다. 우측 벽면에 5cm 가량 나란히 튀어 나와 있는데 막대기 세 개가 보였다. v. c등은 3이라는 숫자를 싫어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위험표식에는 그들만이 알도록 3이라는 표식을 한다는 것도 막대기 주위를 세밀하게 조사하면서 대검으로 막대기가 꽂혀있는 곳 주위를 샅샅이 쑤셔보았지만 달리 이상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막대기 두 개는 직선으로 꽂혀있었고 한 개는 비스듬히 꽂혀 있으면서 그 끝이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막대기 끝이 가리키는 앞쪽 바닥을 대검으로 건드리니 칼끝이 힘없이 들어갔다. 함정이구나. 지뢰가 아니면 단순한 함정이 틀림없다는 생각으로 함정을 피해 박병장을 앞쪽에 가서 경계하게 하고 칼끝으로 함정주위를 조심스럽게 찌르면서 흙을 걷어냈다. 흙 속에 칼끝을 넣어본 결과 가로 세로 40cm정도의 사각형으로 되어있는 것 같았다. 흙을 걷어내자 흙 밑에는 가는 싸리 꼬챙이로 얽혀져 있었고 꼬챙이를 걷어내자 그 밑에는 죽창이 여러 개 꽂혀 있었다.
죽창 함정임을 확인한 순간 앞쪽에서 '탕'하는 총소리가 들렸다.


  "뭐야?"


  내가 놀라서 묻자 박병장이 구부러진 벽쪽에 v.c가 보이기래 한방 쏘았다고 했다. 그때였다.


  "탕- 탕-"


  박 병장의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두발의 실탄이 날아왔다. 박 병장을 뒤편에 위치하게 하고 나는 굴 벽쪽으로 몸을 바짝 붙인 채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맞은 편에서도 응사했다. 내가 쏜 실탄은 맞은편 벽면에 가서 꽂혔고 날아온 실탄은 좌측 굴 벽면에 와서 꽂혔다.

수류탄이 날아올 것을 대비해 온 신경을 전방을 향한 채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았다. 왼쪽에 수류탄을 들고 앞쪽 구부러진 곳으로 권총을 한발 쏘았다.

 


 

 "탕-"
아무런 반응이 없어 수류탄을 던질까 하다가 이미 피하고 없을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
구부러진 벽까지 왔을 때였다. '피잉-'하고 총알이 귓전을 스치고 지나갔다.


"후유, 하마터면...."


나는 탄 창에 남아있던 실탄을 구부러진 안 쪽을 향해 다 쏘고는 구부러진 벽 구석의 꺾어진 부분에다 정확히 조준하여 수류탄을 던졌다. 수류탄이 좌측 벽면에 맞고는 우측으로 튕겨가는 것을 보고 플래시 불을 껐다.
"꽝-"
폭음소리가 굴 안을 뒤흔들었다.
폭음소리가 사라지자 나는 다시 권총에 새 탄 창을 갈아 끼우고 전진했으나 화약 냄새가 풀풀 풍기는 가운데 주위는 조용했다.v.c 한 명이 권총을 쥔 채 흙더미에 깔려 있었고 그 옆에는 또 한 명이 칼빈 1정을 끌어안고 엎어져 있었다. 죽은 시체의 몸에서는 아직도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나는 고개를 돌려 수통의 물을 반정도 들이켰다.
앞쪽에서 인기척이 또 드렸다. 탄 창의 실탄을 재확인하고...


"노 라이 라이 괘골락(안 나오면 죽인다)"


조용했다. 나는 재차 소리쳤다.


"노 라이 라이 괘골락 라이 라이"


몇 번을 반복하여 소리치니 그 때 v.c의 손끝이 보였다. 거의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는데 두 손을 앞쪽으로 내민 자세로 엎드려서 기여 나오고 있었다. v.c의 얼굴을 보려고 불빛을 비추었으나 얼굴을 바닥으로 숙인 채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라이 라이 항복인가?"


나는 v.c를 향해 권총을 겨눈 채 물었다.


"노 괘골락 라이 라이(안 죽인다 나와라)"


나는 계속 소리치며 v.c를 주시했다. 그 뒤를 따라 또 한 명이 손을 들고 나왔고 그 뒤를 따라 수명이 더 나왔다. 비오듯 온 전신에서 땀이 흘러내렸고 말초신경까지 전방을 향해 곤두섰다.


"정 상병 v.c의 숫자가 상당히 많다. v.c와의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라.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죽여도 좋다. 그리고 절대 등을 보이지 마라. 계속 v.c들을 향해 플래시 불빛을 비추면서 뒷걸음으로 놈들을 주시하며굴 입구로 나가라. 난 박병장과 같이 v.c의 몸을 수색하면서 폭발물이나 병기류를 압수하고 곧 바로 뒤 따라 가겠다."


"알았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분대장님"


정 상병의 대답을 듣고 난 다음 제일 앞에 있는 v.c부터 하나하나 몸수색을 하면서 혹시나 놈들이 덮치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으로 소름이 끼쳐오는 것을 느끼면서 왼손에 쥔 대검을 v.c의 목에다 대고는 오른손으로 몸수색을 했다. 몸수색이 끝난 v.c는 바로 장상병에게 인계했다. 24명째가 되자 더 이상은 없음을 확인하고 정상병과 v.c를 잠시 멈추게 한 다음 v.c가 나오던 앞쪽을 향해 더 들어가 보았다.


20m 정도 들어가니 굴은 끝이 났다. 그곳에는 호지명 산타루(신발)와 식량주머니, 의약품, 방망이 수류탄 42발, AK소총 15정, 칼빈 4정, 권총 1정외에 지저분한 장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허리에 차는 식량주머니에 들어있던 쌀을 비워버리고 그것들을 연결하여 병기류를 한데 묶은 다음 박병장이 있는 곳까지 왔다.

 

제일 마지막에 나온 V.C에게 병기류를 끌게 한다음 박병장과 나는 그 뒤를 따라 들어왔던 방향으로 V.C의; 뒤를 따라 나갔다. V.C는 가끔 뒤를 돌아보면서 틈을 노리는 것 같았으나 빈틈을 주지 않았다. 무척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수고가 많았다."


중대장(문장수 대위)의 말을 듣고서야 긴장했던 마음이 풀리며 안정되기 시작했고, 허리부분과 목이 뻐근해지고 전신에 피로가 찾아들었다. 굴속에서 1시간 50분동안 구부린 자세로 긴장해 있었으니 허리와 다리에 통증이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뻤다 첫 동굴 탐색에서 좋은 성과를 얻었으며 많은 경험을 얻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동굴 탐색에는 자신이 붙는 것 같았다.

 

동굴 탐색에서 생포한 V.C(베트콩)들을 헬기로 후송


생포한 V.C들을 싣고 갈 헬리콥터가 작전지역에 푸른 스모그(연막탄)의 안내를 받으며 내렸다. 24명의 V.C들은 헬리콥터 편으로 후송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붉게 물들어 가는 저녁 노을을 맞이했다. 야자수 나무사이로 보이는 월남 전선의 저녁노을은 고국의 저녁 노을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반짝이는 남십자성을 바라보며 초조하고 불안했던 동굴 탐색시의 심정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았다. 내일은 어떤 하루가 될까? 아니 오늘밤에는 또 어떤 상황에 부딪치게 될지....

 

 

출처 : 청룡부대 1대대 3중대 작전하사 권동일 선배님의 월남전 참전수기 "스콜(Squall)"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