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부사관 글/해병하사 권동일

베트남 정글전 실록 - 스콜(Squall) 5 - 낯선 땅

머린코341(mc341) 2015. 5. 9. 18:45

베트남 정글전 실록 - 스콜(Squall) 5 - 낯선 땅

 

지뢰와 부비트랩 교육을 받기 위해 각 중대에서 모인 10명의 전우들은 대대본부에 신고가 곧 바로 교육에 들어갔다. 교관과 조교가 세밀하고 진지하게 교육을 하면서도 때론 호랑이 선생같이 정신도 못 차리게 꾸중을 하기도 했고 지적을 하면서 매섭고 호되게 교육을 시켰다.


지뢰와 부비트랩이 설치된 장소는 어떤 곳이며 또 발견시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가 등등 각종 지뢰와 부비트랩의 실물을 보아가며 실습을 했다.


엄하게 교육시키는 것은 지뢰와 부비트랩은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 폭발물로서 조금만 소홀히 다루면 본인은 물론 주위에 있는 아군 피해도 엄청나기 때문에 조심하여 신중하게 다루어야 된다는 설명이었다. 아울러 지난번 지뢰와 부비트랩 교육을 받던 중 한 해병이 기압이 빠져서 사고를 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꽝 소리와 동시에 여자는 그 자리에 쓰러졌고 자신도 모르게 총을 쏘게된 그 전우는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주위에 있던 다른 전우들은 재빨리 도로변으로 달려가 여자를 업고 의무실로 가서 응급치료를 했다. 다행히 그 월남 여자가 무사했기 망정이지...  그 얘기를 듣고 "사격 솜씨 하나는 특등사수 못지 않다"면서 움직이는 물체를 10점 가까이 명중시켰다고 한바탕 웃었지만 아찔했다.(그 전우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에 처벌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나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는 이야기 해 주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가끔씩 안전사고가 있다고 들어왔다. 전우들간에 장난으로 총을 겨누다가 사고를 낸 일도 있다하니 앞으로 안전사고에 대비하여 철저하게 교육을 시켜 우리 분대나 중대에서는 절대로 그런 사고가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단단히 했다. VC와의 교전으로 전사해도 억울한데 전우들끼리 장난치다가 사고를 냈다면 이건 정말 말도 안되게 억울한 일이 아닌가?


이튿날 10여명의 전우들은 월남 작전지역에 산개되어 있는 지뢰와 부비트랩의 식별방법, 성능, 제거처리, 폭파요령, 설치되어 있는 장소, VC들만이 알고있는 위험 표시방법 등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얼룩무늬 작업복이 흠뻑 젖은 채 긴장에 긴장을 더해가면서 받은 지뢰와 부비트랩의 교육은 이틀로 끝이 났다.


점심을 먹고 야자수  그늘 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번에 함께 부비트랩 교육을 받으러 온 2중대 김00 하사관이 대대본부 앞 민간인 촌락을 구경가자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촌락구경을 하고 싶던 차에 M16소총을 휴대한 채 대대본부를 나왔다. 대대본부 앞 도로는 자동차 2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5번 도로였다. 도로변의 건물들은 월남 특유의 건축방식으로 군데군데 몇 채식 지어져 있었다. 대부분의 집들은 집으로 지붕을 덮고 있어 한국의 초가집과도 비슷했으나 집 자체는 너무 지저분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상점 같은 것이 보였다. 들어가 보았더니 전우 여섯 명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벽면 진열장에는 한국식으로 만든 음식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월남사람치고는 제법 뽀얗고 예쁘장해 보이는 그 아가씨는 하얀 아오자이 차림으로 전우들 틈에 앉아서 웃고 있었다. 아가씨를 불러 맥주를 시켰다. 미국제 캔 맥주를 가져다주는데 받아 쥐니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맥주 2통을 더 시켰다. 아가씨를 자세히 보니 보통 키에 얼굴이 제법 예뻤으며 치렁치렁한 검은머리를 허리 부근까지 늘어트린 것이 밉게 보이지 않았다.

 

6명의 전우들은 우리들은 안중에도 없고 연신 '찐- 찐-'하면서 아가씨의 손목을 잡은 채 웃고 떠들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아가씨의 이름이 '찐'인 모양이다. 한 전우가 아가씨를 끌어당겨 자기의 무릎에 앉혔다. 아가씨가 억지 웃음을 웃으며 일어나려 하자 또 다시 옆자리에 있던 전우가 아가씨를 끌어 당겨 무릎이 앉혀 버렸다. 우리는 마시던 맥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오니 오후의 햇살이 더욱 따갑게 내려 쬐고 있었다. 김 하사관은 조금 전에 보았던 월남아가씨가 마음에 드는지 다음에 꼭 한번 들려야겠다며 몇 번이나 아가씨가 있는 집 쪽을 뒤돌아보았다.


도로변 노점에는 수박, 파인애플, 바나나, 호박, 고추 등 여러 종류의 과일과 채소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물건의 주인인 듯한 월남 여자가 '무엇이든 좀 사가세요'하는 듯한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마흔이 좀 넘었을 법한 그 여자는 무언가를 계속 씹더니 도 무언가를 입에 더 넣고 씹고있어 자세히 보니 이와 잇몸, 입술 할 것 없이 검붉게 변색이 되어 있었고 씹고 있는 '그 무엇' 때문에 입술이 계속 붉은 색깔로 변하고 있었다. 김 하사관에게 저게 무엇이냐고 물어봤더니 이름은 '빈랑'인데 왜 먹는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별걸 다 먹고 있구나 생각하면서 고추를 조금 샀다. 월남 고추는 작으면서도 굉장히 매웠다.


고추를 사고 돌아가려는데 뒤편에서 누가 불렀다. 돌아보니 서른 살쯤 되어 보이는 한 월남인이 마루에 걸터앉은 채 손 짓을 하며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부르는가 싶어 김 하사관과 같이 가보았더니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면서 말을 했다.


"붕붕(xx)오케이?"
"꽁까이 붕붕(처녀xx)오케이."


김 하사관이 손에 들고 있던 맥주를 급히 다 마시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 월남인이 손가락으로 방쪽을 가리키며 '오케이'하고는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면서 2불을 요구했다. 김 하사관이 나를 쳐다보았다. 난 고개를 저으며 혼자 들어가라고 했다. 김 하사관은 그 월남인에게 2불을 건네주며 나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멋쩍은 모양이었다.


"들어갔다 올 때까지 주위를 잘 살펴 주라.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말야."


2불을 받아 쥔 월남인은 마루에 앉은 채 몸을 돌려 방문을 열어 주었다. 열려진 문으로 방안을 보니 서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가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고 우리를 쳐다  보았다. 김 하사관은 총을 내게 주면서 다시 한번 '부탁한다'하고서는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방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목이 타는 것을 느끼고 상점에 가서 야자수 열매를 먹게 해 달라고 했다. 상점 주인여자가 야자수열매 한쪽 부분을 칼로 베려고 했다. 그러나 잘 베어지지 않는지 쩔쩔맸다. 그래서 내가 야자 열매를 받아들고 허리에 차고있던 대검으로 열매의 한쪽 부분을 베어냈다. 보기보다 껍질이 단단했다. 야자 열매는 기대와 달리 아무 맛도 없었고 찝찔하기만 했다. 한참 후 김 하사관이 나왔다. 그 월남인이 이번에는 나에게 방에 들어가 보라고 했다.


"붕붕"


아까와 마찬가지로 2불을 나타내는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면서, 어이가 없어 김 하사관에게 총을 건네주면서 구경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대대본부로 돌아가자고 했다. 김 하사관이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느냐고 물었다. 더욱 기가 차서 '그런 일 없으니 걱정 말라' 면서 돌아섰더니 김 하사관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뒤따라 왔다.


김 하사관의 말인즉 방에 있는 여자에게 물어보니 마루에 앉아 돈을 받던 사람이 바로 자기의 남편이라고 말하더란다. 난 하도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못했다. 아무리 전쟁중이고 생활이 어렵고 돈이 필요해도 그렇게 자기 마누라를 돈 받고.... 한 형제가 VC와 월남 군으로 나뉘어 져 있기도 하고 대민지원 한 쌀을 돌아서기가 무섭게 VC에게 팔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런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보니 월남은 통일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물론 그런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겠지만 이런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려고 이역만리 전쟁터까지 찾아왔나 하는 생각을 하니 서글퍼졌다.   


이튿날 중대 진지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 레이션을 먹고 헬기장으로 갔다. 그러나 헬기가 1시간 후에야 보급물을 싣고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헬기장옆의 초소근무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초소 근무자는 내가 온 것도 모르고 시선을 한곳에 모은 채 열심히 무얼 보고 있었다. 근무자가 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초소 앞 민간인  집 뒷 논에서 한 집안식구인 듯한 사람들 일곱 명이 빙 둘러앉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엉덩이가 다 나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 용무를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맙소사! 아버지 어머니 딸 아들 며느리 할 것 없이 함께 빙 둘러앉아서 각자의 용무를 보다니.... 세상에 태어나 별 희한한 구경을 다 해본다. 어떻게 한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용무를 볼 수 있을까? 초소 근무자에게 물어보니 민가에는 화장실이 달리 없고 아침이면 늘 저렇게 둘러앉아 자기 볼일을 본다고 했다. 날씨가 너무 무덥고 햇살이 따가워 하루가 지나면 용변은 바짝 말라버리던지 바람에 날아가 버리니까 달리 화장실이 필요도 없다는 설명이었다.


월남에 와보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초소 근무자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심코 도로변을 보니 아가씨인 듯한 여자가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다가 도로 옆 텅 빈 논으로 급히 들어가는 게 보였다. 10m쯤 들어가더니 엉덩이를 쑥 내 놓고 앉아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앞을 가렸다. 한참 앉아 있더니 도로변으로 다시 나와 바삐 걸어갔다.

 

 

출처 : 청룡부대 1대대 3중대 작전하사 권동일 선배님의 월남전 참전수기 "스콜(Squall)"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