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부사관 글/해병하사 권동일

베트남 정글전 실록 - 스콜(Squall) 2 - 열대전선 월남으로

머린코341(mc341) 2015. 1. 27. 14:22

베트남 정글전 실록 - 스콜(Squall) 2 - 열대전선 월남으로

 

 

1967년 어느 늦은 봄날 오후, 조국과 민족의 명예를 양어깨에 걸머지고 부모형제 친지들의 울부짖음을 뒤로 한 채 자유 우방국 월남 국민들을 돕기 위해 고국을 떠났다.


군함은 다도해 푸른 물결을 가르며 기우뚱기우뚱 이억만리 월남 전선을 향해 달렸다. 후 갑판에 서서 희미해져 가는 부산 3부두를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침의 일들을 되새겨 보았다.

 

그저께는 지긋지긋하던 3주간의 특수 월남교육을 끝마친 날이다.


그 날은 내가 태어나 잔뼈가 굵은 고국을 떠나 이국전선 월남으로 떠난다는 생각이 머리에 꽉 차서 밤새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다가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1967년 5월29일 04시 00분. 총 기상소리와 함께 연병장에 집합하여 마지막 인원 점검을 받고 월남 땅에 상륙할 때까지의 세부적인 지시를 제병 지휘관으로부터 받았다.

 

파월 해병2여단 결단식 - 해병 사단 활주로 사열대


막상 고국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긴장감과 압박감이 찾아 들었다. 해병 상륙 사단에서 월남 출발을 몇 분 앞두고 연병장에 모여있던 파월 장병들, 나뿐만 아니라 모두들 마음이 어수선했으리라.

 

그 순간 다른 파월 장병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날 따라 새벽하늘의 별빛이 유난히 반짝였다. 우리는 대기하고 있던 지엠시에 편성된 순서대로 승차했다.


"부릉-- 부릉--"


지엠시의 엔진소리가 심장까지 파고 들어왔다. 착잡하고도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우린 군가를 부르며 매일 출입하던 정들었던 서문을 빠져나갔다.


"삼천만의 자랑인 대한 해병대 얼룩무늬...."


군가 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도로변을 걷던 동민들이 자기들끼리 뭐라고 하며 손짓을 했다. 집집마다 대문과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어 댔다. 그러나 환송으로 받아들이기엔 어쩐지 서글픈 표정들이었다.

 

파월장병 환송

 

이젠 이곳 오천 동민들을 오랫동안 보지 못하겠지. 낯설고 물설고 기후와 말조차 다른 월남땅...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러나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 따위는 하고 싶지가 않았다. 마땅히 겪어야 할 주어진 '나의 행로'라고 생각해 버렸다.

 

포항 시가지가 보였다. 시민들이 여기저기 뛰어나와 손을 흔들었다. 시가지를 지나 포항 역에서 하차했다. 역 주위는 파월 장병들의 가족을 포함한 환송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여보"
"경일씨"
"김하사님!"


울부짖는 애처로운 소리들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사단장님, 기지 사령관님, 다녀오겠습니다."


파월 장병들의 합창이 포항 역을 뒤흔들었다. 동시에 기동 차는 '꽤액'하는 기적소리와 함께 부산 3부두를 향해 서서히 움직였다. 연예대의 애국가 연주와 역 주위에 있던 부모 형제들의 울음소리가 한데 뒤섞여 들려왔다. 환송 나왔던 학생들의 태극기가 점점 멀어져 갔다.


기동 차는 이 모든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부산으로 내 달렸다.


기차가 속력을 내기 시작하자 착잡했던 조금 전의 기분과는 달리 조금씩 흥분되기 시작했다. 동차내의 장병들은 흥분된 채 군가를 부르며 차창 밖에서 일손을 멈추고 바라보는 농부들에게 모자를 벗어 흔들었다.


"...대한 해병대 귀신 잡는 그 기백..."


차내에서는 군가소리가 끊이지 않고 합창되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철없는 동생들의 모습이 차창에 어른거렸다. 가슴이 뜨거워오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울고 싶지 않았다. 울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끝내 청룡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고 말았다.


주윌 십자군인 청룡부대의 주어진 임무로 "우방 군을 돕고 개선장군이 되어 꼭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부모님께 마음속으로 굳게굳게 맹세를 했다.


파월 장병을 실은 동차는 울산 역에서 잠시 정거했다. 환송 나온 울산시민들과 울산 여고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역 주위를 메우고 있었다. 잠시후 동차는 서서히 부산 3부두를 향해 움직였다.

 

지나는 역마다 환송객들이 환송을 했고 철도옆 들판에서 일하던 농부들도 일손을 멈추고 우리들이 보이

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싸워서 이기고 돌아 오라"

 

부모형제들을 뒤로 한 채 기동 차는 부산 3부두에 도착했다.3부두는 환송객들의 물결로 혼잡을 이루었고 부두 가엔 군함이 정박해 있었다. 환송객들의 울부짖음과 군악의 연주가 뒤섞일 때 우리는 군함에 승선했다.


하얀 물거품이 푸른 다도해를 수놓고 있었다. 모범항해를 염려하던 환송기와 우렁차게 울려 퍼지던 군악 연주.... 벅찬 감격이 가슴을 꽉 채웠다. 환송객으로 물결을 이루었던 항고 부산의 3부두를 뒤로하고 군함은 고동을 연발하며 미끄러져 갔다. 가도 가도 수평선 위엔 끝없는 하늘과 바다뿐, 파도를 가르며 열전의 현장을 향해 내달리고있는 군함 위에서 나는 수평선만 바라보고 있었다.

 

검푸른 바다 위에서 부서지는 파도와 눈부신 태양을 바라보며 두고 온 조국의 번영과 가야할 월남전선에 하루빨리 평화가 깉들기를 기도했다. 파도는 햇빛에 반사되어 더욱 눈을 부시게 했고 수평선은 끝이 없었다.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시원한 공기를 마시려고 상갑판 위로 올라갔으나 여전히 현기증과 뱃멀미가 잇달아 일어날 뿐이었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멀미 악을 꺼내서 입에 넣었다. 파도는 서툰 항해를 조롱이라도 하듯 선체를 마구 뒤흔들었다.


얼마쯤 갔을까? 중국말 방송만 하던 라디오가 갑자기 아리랑 민요로 바뀌었다. 상갑판 위에 있던 장병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합창을 하기 시작했다.(나중에 알고 보니 월남의 한국말 방송이었다.)

 

스피커에서 큰 소리로 "장병들은 시계를 현재의 시간에서 한 시간을 당겨 맞추라"고 외쳐댔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정각 18시였다. 17시로 한 시간 앞당겨 맞추었다.


얼마후면 도착하여 1년을 지내야 할 월남전선을 머리 속에 구려보며 선실로 내려갔다.


또 다시 스피커에서 "장병들은 소매를 걷어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우리들 일행은 그제야 더위를 알아차린 듯 모두 "어, 덥다"하며 소매를 걷어 올렸다. 한참을 가니 소매를 걷어올린 것만으로는 더위를 피할 수가 없어 아예 상의를 벗어버렸다.

 

후덥지근함을 피해 선실 속으로 내려갔으나 선실 속은 더 답답하기만 했다. 그래서 다시 갑판위로 올라갔다.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그렇게 바람이 뜨거운 것은 처음 이였다.


머지않아 당도하게 될 월남의 기후와 생활이 염려스러워 졌다.


고국을 떠나 망망대해를 항해한지 3일째가 되니 육지가 그립고 복잡하던 항도 부산과 고국의 형제들이 그리워졌다. 우리가 탄 배말고도 항해하는 배가 있나 싶어 눈을 부릅뜨고 찾아봤으나 멀리 수평선만이 아물거릴 뿐 단 한 척의 배도 눈에 띄지 않았다. 말 할 수 없는 적막감이 엄습해 왔다. 멍하니 선체에 부딪혀 허옇게 부서지는 파도만 바라볼 뿐이었다.


환호성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수평선 위에 눈송이 같은 구름이 저녁노을과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필리핀이었다.


부산을 떠나 올 때부터 군함에서 급식해주던, 생전 처음 먹어보는 A레이선 식사가 식성에 맞지 않더니 뱃멀미와 겹쳐서 기어이 속이 뒤집어질 듯 북적거렸다. 의무선실을 찾아가 미 군의간에게 멀미약을 얻었다. 안정되지 못한 기분에다 식욕이 없어 식사를 제대로 안 했더니 현기증이 더 심해진 모양이다. 멀미와 현기증 때문에 선실로 내려갔다. 배에서는 금주로 되어있었지만 사단 PX에서 사 가지고 온 브랜디를 몇 모금 마셨다. 술기운이 온 몸에 퍼지자 잠시나마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멀리 출렁이는 검푸른 파도, 수평선, 헤일수 없는 깊은 바다, 군함이 부숴 놓은 파도... 눈이 부셨다. 지난날 이 남지나해를 야욕을 채우기 위해 수없이 지나 다녔을 일본 함정들은 모두 자기네 나라로 되돌아갔을까... 부서져 쏟아지고 다시 부서지는 파도위로 별도 웃고 달도 웃고 장병들도 웃었다.


군함에는 함께 파월중인 맹호부대, 비둘기부대, 그리고 귀신 잡는 청룡부대 등 약 3천여명이 항해를 하고 있었다. 우린 조국의 명예를 걸머지고 생사를 알 수 없는 이국땅 월남전선으로 월남국민들을 돕기 위해 자유 우방군인으로 함께 떠나는 주윌 십자군이 아닌가? 서로 의지하고 믿으며 주어진 임무를 다하고 다 같이 개선가를 부르며 다시 이 수송함에서 만나서 웃으며 검게 그을린 얼굴을 맞대고 고국으로 가야지.


군함은 수평선을 향해 쉴새없이 달렸다. 태양이 떠오르는 곳은 태평양, 석양이 지는 곳은 아세아, 지구 북반구의 절반거리를 자면서 깨면서 계속 항해를 했다. 끝없는 수평선 위에 항해하는 군함아, 수평선 위 어디든지 가보자. 세계평화 위해서는 지구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라도 달려가 귀신 잡는 청룡부대의 기백을 살리리라.
청명하던 하늘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상갑판을 세차게 두드리며 쏟아졌다. 뒤이어 따라온 강풍은 군함을 기우뚱거리게 했고 고동소리와 파도소리가 뒤섞여 묘한 화음을 이루었다.


몇만 촉이나 되는 천둥번개는 연신 폭음을 냈고 번개 빛이 번쩍일 때마다 우주의 끝을 보는 듯 했다.


흠뻑 젖은 상의를 벗고 후갑판으로 나와 울부짖는 남지나해를 보았다. 험하기로 유명하다는 남지나해, 군함은 여전히 태평양 물을 끌어당겼다가 밀어붙이면서 달려나간다.

 

************************************************************

 

고국을 떠나며

 

잘 있거라 나의 조국

삼한사온의 나라

그대를 떠나가는 곳

밀림 우거진 전쟁터라는데

 

생명을 기꺼이 바치겠노라!

낯선 전쟁터

캄캄한 밤을 지나

서러운 새벽이 올 때

 

나는 그대 이름 부르며

피 흘리고 있을지 모른다

식어가고 있을지 모른다.

 

낯선 열대전선, 그러나

그대의 아들이기에

자유의 아들이기에

기꺼이

KOREA여

나는 간다.

 

출처 : 청룡부대 1대대 3중대 작전하사 권동일 선배님의 월남전 참전수기 "스콜(Squall)"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