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3대대 11중대 3소대 전투이야기 - 참전수기 1편
여기에 기록하는 참전수기는
나의 생애 중 1년이란 기간동안의 파월생활이므로
나의 회고록(무명초) 중 일부분으로 기록하였다.
다소 날짜와 시간은 기나긴 세월로 인하여 정확성은 없지만,
당시 전투상황은 사실에 최대한 근접하게 기록하였고,
사진 자료가 부족하여 남의 자료 일부를 Capture 했다.
그리고 참전수기에 나오는 실명은
진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거명하였으니,
당사자의 요구가 있을시 즉시 삭제하겠습니다.
청룡3대대11중대3소대
드디어,
나의 전투지이고 동시에 나를 보호해 줄
11중대방석(주둔지)에 당도했다.
대대에서 중대로 어떻게 왔는지?(수송 수단), 혼자왔는지?
아니면 11중대로 인사 명령된 사병들과 함께 왔는지?
40년이 지난 지금 까마득하기만 하다.
오전였는지? 오후였는지? 모르겠지만,
방석은 텅 빈 상태이고,
위병 근무자와 관망대 근무자,
그리고 띄엄띄엄 병사들이 보일 뿐 조용하였다.
요즘 중대는 매일 Land Clear 작전으로 2/3병력이 작전지역에 나간단다.
Land Clear 작전은 작전지역 내 무성한 숲을 제거하여,
Vietcong 들의 활동 근거지를 축소하거나 차단할 목적으로
미 공병 소속 Bulldozer들이 작업을 한다.
11중대는 2대가 하는데,
이 병력과 장비를 보호하기 위해
중대병력이 Blocking 임무수행 중이란다.
중대장은 해사 15기 안재하 대위,
부중대장 해간 38기 백운열 중위,
1소대장 해간 41기 송최휘 중위(동기생),
3소대장 해간 40기 안병순 중위였으며,
그 외 화기소대장과 2소대장, 관측장교는 생각이 안난다.
중대장은 Land Clear작전 Blocking 임무수행중에는
소대장 교대 시킬 의향이 없는지,
나에게 10여일동안 아무른 직책과 임무를 주지않아
방석 안에서 잘 지냈다.
Land Clear 작전이 종료되자,
중대장과 3소대장이 대대로 전출 되고,
교대 중대장으로 해사 15기 한상희 대위가 왔다.
그래서 1970년 7월 중순 어느 날,
나는 3소대장으로 해간 40기 안병순 중위와
악수 한번하는것으로 보직 교대되었다.
이제부터는 배속된
경기관총 분대 5명, 통신병, 위생병, 공병을 포함하여
총 50여명의 귀한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임무가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나에게 주어졌다.
가)지형 설명
11중대는 여단본부로부터 남쪽으로 약 12키로,
호이안 시내에 위치해 있는 3대대 본부로부터는
남쪽으로 약 6키로 이격 되어 있고,
중대 앞에는
사이공 - 다낭 간 1번 도로가 남에서 북으로 가로질러 있으며,
쾅남성 남푹마을과 월남군 캡소대가 위치하여 있었고.
1번 도로를 호이안 쪽에서 남으로 가다가 남푹마을 내,
캡소대 앞 사거리에서 우측으로는 자큐 성당과
2대대 본부로 가는 길이 있고,
좌측으로 약 200미터 들어 간 곳에 중대가 위치하고 있었다,
북쪽으로 9중대,동쪽(베리아반도)으로 10중대,
서쪽으로 2대대 7중대,
남쪽으로 미 육군 23경보병 사단이 위치해 있었다.
월남참전 전투수기 글쓴이 : 청룡3대대11중대3소대-소대장
해간 41기 해병중위 원명복 소대장님의 글입니다
주월 한국군 청룡부대 마크
앞으로 계속 이여짐니다..
출처 : 해병대 185기 호이안박 선배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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