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부사관 글/해병하사 권동일

베트남 정글전 실록 - 스콜(Squall) 12 - 중대 작전 하사관이 되어

머린코341(mc341) 2015. 7. 21. 11:24

베트남 정글전 실록 - 스콜(Squall) 12 - 중대 작전 하사관이 되어



분대장 직책에서 중대 작전 하사관이라는 새로운 직책과 임무를 받았다. 결국 소총 소대에서 중대 본부 요원이 된 것이다. 중대 작전 하사관 임무를 맡게되자 어깨가 한층 더 무거워졌다. 19시00분경 1소대 1분대는 야간 매복지를 선정 받아 세부 지시를 받고 중대가 임시 숙영하고 있는 10고지 모래산 뒤편, 숲 속으로 쌓인 매복지로 출발했다.
 
매복대가 완전 진입되고 배치될 때까지 판초로 덮인 상황실 벙커에서 더운 입김을 내쉬며 무전기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이상 없이 진입했다는 신호가 무전기를 통해 보고될 때까지는 만약을 대비해서 'H-33(무전기)'을 귀에 대고 신경을 집중시켜야만 했다.


이상 없이 진입했다는 무전 신호를 받고 중대장에게 매복대가 진입했다는 보고를 했다. 상황실 근무가 24시00분까지라서 찌는 듯한 판초속 상황실에서 통신병과 같이 지나간 추억들을 이야기하면서 무전기의 축음신호에 신경을 썼다.
 
악착같이 달라붙는 모기와 씨름하고 있을 때 '팍-'하는 소리에 상황실 밖으로 나오니 매복대가 있는 위치에 조명탄이 떠있고 수류탄 폭음과 크레모아의 폭팔 소리가 소총 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매복 대에게 상황이 있다고 중대장에게 보고할 것을 통신병에게 지시한 다음 무전기를 청취했다.
 
"현재 상황?"
"V.C발견 교전중, 잠시 대기"
 
긴장된 시간이 흘렀다. 매복지가 V.C에게 노출된 것은 아닌지, 적의 병력은 어느 정도인지 손에 땀이 고였다. 중대는 비상 태세에 들어갔고 매복대를 지원하기 위해 반격 소대장으로부터 '준비 완료'라는 무전 연락까지 왔다. 중대의 60m/m 조명탄은 '펑-'하면서 계속 매복대 주위를 밝게 비추었다.
 
"현재 상황보고"
"V.C규모 2개 분대, 동에서 서로 이동하는 V.C현재 5명 확인 사살, 아군 피해 무."
"계속 상황보고 하고 반격대가 대기 중에 있으니 요청하면 즉시 보내겠다."
"알았음"
30여분간에 긴장된 순간이 끝나고 상황도 끝났다.
"V.C 10명 확인 사살, 칼빈 8정, 수류탄, RKT포 등 실탄 다수 노획."
"잘 알았다. 위치가 적에게 노출되었으니 철저히 경계하면서 대기하라."
 
대대 본부에다 상황을 보고한 다음 매복 지점을 옮겼으며 새로운 매복 지점에 이상 없이 진입이라는 무전기 축음신호가 흘러나왔다.
 
"계속 수고 바람."
 
언제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주위가 밝아 오기 시작했다. 날이 밝고 매복대가 중대에 도착하였다. 매복대는 온통 흙투성이인데다 물에 뒹굴었는지 옷도 흠뻑 젖은 채 눈동자를 껌뻑이면서 웃고들 있었다.
 
중대장(문수장 대위)이 작전 하사관을 부른다는 연락에 판초로 덮인 중대장 실로 갔다. 중대장은 지도를 펴서 보고 있다 가 내가 들어가니 지도를 들고 와서는 늪지대가 연결되어 있는 지점을 가리키면서 적의 이동 예상 지점이라고 했다.
 
"저 지점에다 매복대를 운영하려하나 개활지라 적에게 노출되기 쉽고 잘못하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많다. 내 생각에는 저 지점에다 크레모아 매복대를 운영해 볼까 하는데 작전 하사관 생각은 어떤가? 자넨 지뢰와 부비트랩 교육을 받지 않았나?"
"제 생각도 찬성입니다만, 600mm나 되는 OP(유선줄)선이 없지 않습니까?"
 
중대장이 곧 바로 통신 하사관(이명수 하사)을 불렀다. 통신 하사관에게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더니 대대 본부에 긴급 요청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즉시 대대 본부에 OP선을 요청, 그 날 오후 재 보급 헬리콥터 편으로 보급품과 함께 OP선이 왔다. 유선 줄이 도착하자 1개 분대의 브라킹을 받아가면서 늪과 연결되어 있는 둑에다 최대의 은폐를 이용하여 크레모아를 설치한 다음 중대 진지에서부터 연결해온 OP선 줄에 뇌관을 연결시켜 크레레모아 매복대의 설치 작업을 끝냈다.
 
어둠이 찾아왔고 중대장 이하 전 중대원은 큰 관심을 가지고 크레모아를 폭파시킬 특수 근무자에게 SRS(밤에 보이는 망원경)로 관측을 하게 했다. 시간이 흘러가자 혹시 크레모아 매복대를 설치한 것이 적에게 노출되어 다른 이동로를 이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SRS로 근무하던 근무자가 V.C의 움직임이 동쪽에 나타났다고 보고해 왔다. 크레모아를 터트릴 배터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라 육안으로는 뵈지 않았으나 밤에 보는 망원경으로 자세히 관찰해보니 하 둘 V.C들이 크레모아가 설치되어 t는 지점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근무자에게 중대장이 지시했다.
 
"배터리의 +, -를 확인해서 연결시켜라. 크레모아가 설치된 장소에서 3m의 거리 양쪽으로 조명 지뢰가 터지는 동시에 배터리를 연결시켜라."
 
근무자에게 재삼 주의를 주었다. 조마조마한 시간들이 더디게 흘렀다. '팍-' 조명 지뢰가 터짐과 동시에 요란한 폭음을 내며 동편에 설치해둔 2개의 크레모아가 번쩍하고 섬광을 토하며 정확하게 터졌다.
 
'꽈꽝- 꽝-' 중대의 60m/m박격포의 조명탄이 동시에 비춰지고 고폭탄이 불빛을 내면서 터졌다. 아무리 보아도 움직이는 물체는 없었다. 처음 크레모아가 터질 때 대부분 전멸된 것 같았다.



V.C들이 야음을 이용해 이동하다가 중대에 발각되어 늪 일대는 시체들이 즐비했다.


탐색 소대가 크레모아가 설치된 지점으로 가서 확인 사살 17명, 소총13정, 방망이 수류탄 45개, 그리고 노트와 서류를 노획하고 돌아왔다.
 
기대가 컸었는데 기분이 조금 언짢았다. 그러나 실패하지 않고 작은 전과라도 올렸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노획한 노트를 하나하나 펼쳐보았다. 노트의 내용은 자세히는 알 수 없었으나 월맹 훈련소의 교안 이었고 부대 표시와 이상한 기호가 그려져 있었다. 다른 서류 뭉치를 살펴보니 110고지 중대 진지의 위치와 예상 접근로의 화살 표시, 중대 진지 내의 화기 표시등이 있었다.

아마 110고지를 공격하기 위한 것인 듯 했다.이것을 전달하려다가 도중에 차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축소된 3장의 투명도는 고지와 등고선의 철조망, 벙커의 위치와 중대 상황실 그리고 공격 방향이 표시되어 있었다.
 
대대 상황실에 현 상황을 보고했다. 결국 크레모아 매복대는 맡은 임무를 충실히 이행했던 것이다. 주위가 밝아지면서 작전 지역 일대에는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모래로 뒤덮인 중대 진지는 금방 비에 젖어들었다.
 
주간 매복 지점이 세 곳이나 되어 3개 분대가 각기 매복 준비를 끝마친 다음 주간 매복지를 향해 비를 맞으며 출발한 뒤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보슬비는 거센 소나기로 변했다. 매복지로 기동중인 매복대가 염려스러운 가운데 세차게 부는 바람은 강풍으로 변했고 소나기와 모래가 뒤엉켜 진지 위를 날았다. 세차게 부는 비바람 때문에 10m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후 빗속을 뚫고 3개 분대가 모두 이상 없이 매복 지점에 무사히 진입했다는 무전 연락이 왔다.


 

숙영지인 10고지 모래산은 억수같이 쏟아져 내리는 소낙비와 바람에 휘말려서 움직일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벙커마다 쳤던 천막과 판초 우의가 비바람에 휘말려 허공에서 춤을 추며 날아갔다. 바람은 더욱 심하게 몰아치고 진지내의 천막들은 모두 강풍에 휘말려 날아갔다. V.C들의 기습이 있을지도 모르니 진지 근무자를 증강시키고 매복대에 연락하여 각별히 경계에 철저를 기하라는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매복 대에게 중대장의 지시를 전달하였다.
 
모래위로 계속 쏟아지는 소낙비는 이젠 더 이상 모래 바닥으로 흡수가 되지 않는지 진지의 개인호마다 빗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점심 식사 때가 되었지만 비바람 때문에 상황실에 웅크리고 앉아 소낙비를 맞으며 비와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휘몰아치는 강풍 때문에 모래가 날아와 붙어 작업복은 온통 모래 투성이였고 머리카락 사이에는 모래로 머리를 감은 것처럼 모래 뿐 이였다. 정말 미칠 정도로 세차게 부는 강풍과 소낙비였다.
 
저녁이 되자 주간 매복대는 철수하여 무사히 귀대했지만, 야간 매복대가 매복지를 향해 다시 출발하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몸이 떨리면서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하여 휠자켓이나 오버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래는 강풍에 휘말려서 계속 세차게 그칠 줄 모르고 날아오고 으스스하게 춥던 것이 이제는 덜덜 떨려 왔다. 가슴까지 차는 개인호의 빗물 속에 들어갔다. 물 속은 바깥보다는 한결 낳았지만 날아드는 모래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비닐 커버를 씌운 무전기를 옆에 두고 통신병과 같이 물 속에서 판초를 덮어쓰고 비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마을 탐색이 끝나면 강가 늪이나 물 속까지도 V.C를 찾기 위해 수색했다.


 惡夢 같은 밤이 지나자 비가 개고 살을 태울 듯이 햇볕이 내려 쪼이더니 금방 세찬 강풍과 함께 소나기가 다시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가슴까지 고인 빗물 속에서 아무런 상황 없이 주간 매복대와 야간 매복대를 운영하면서 10여일을 보냈다. 이젠 완전 우기로 접어든 것 같았으며 발과 몸은 물 속에서 부풀대로 부풀어올랐다. 
 
10여일 동안 계속되던 비는 멎었고 중대는 다시 정상적인 수색정찰 임무를 할 수 있었다. V.C를 찾아 헤맨 지 하루가 지나가고 이틀이 지나갔다. 그리고 또 10여일이 지나 어느덧 모래 산에서 20여일이 넘게 숙영했다.
 
오늘도 V.C를 찾아 소탕하기 위해 수색 작전을 해야만 하였고 시간의 흐름 속에 V.C의 사살도 많았고 생포도 많았다. 그 가운데 내 사랑하는 전우도 이곳의 평정을 되찾고자 용감히 싸우다가 이역 전선 월남 땅에서 산화했다. 죽이고 죽는 도살장과 흡사한 이곳은 누가 먼저 보느냐 누가 먼저 쏘느냐가 생사를 결정했다. 서로 총구를 겨누지만 늦으면 죽는다. 지친 심신을 움직여 가면서 작전 지도 위에다 컴퍼스를 놓았다. 지도 위에 씌운 비닐 커버가 낡아서 헤졌고 얼룩무늬 작업복도 부끄러운 부분을 겨우 가릴 정도로 낡고 찢어져 있었다.
 
지금 나는 내 사랑하는 고국을 그려본다. 그렸다가 지우고 또 다시 그려본다. 고국 산천과 부모 형제 친구 그리운 얼굴들이 더욱 향수를 자아내게 했다. 귀국의 날짜는 까마득하기만 했고 나를 고국에 개선 장군으로 보내주겠다는 생명 보장 주식회사도 없다. 나의 육신과 영혼을 이곳에 저당잡혀두고 전투에 전투를 거듭하는 생사 노름을 하다가 이기게되면 저당 잡혔던 육신과 영혼을 되찾아 그리운 고국땅 부산 3부두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나와 같은 심정으로 파월 장병들은 고국을 그리워하고 있겠지.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12개월이라는 세월을 보내고 고국에 돌아갈 날이 올까. 고국에 돌아가고 난 뒤 월남 전선은 어떨까, 그리고 어떻게 변해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 과연 그런 날이 올까.


헬리콥터 소리에 망상에서 깨어났다. 헬리콥터가 내린 주위는 온통 모래바람 투성 이었다. 헬리콥터에서 중대 보충 교대병들이 두눈을 두리번거리면서 뛰어 내렸다. 지금 헬리콥터에서 내린 월남 초년생들과 나를 비교해 볼 때 내가 저들보다 나은 것이 무엇일까. 이곳 전투 생활에 익숙해졌다는 것 이외는 V.C의 총구 앞에서는 누구나 다를 바 없었다. 총알이 나를 알아보고 피해 가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우린 이곳 월남의 평정을 찾아주기 위해 지원해 오지 않았던가. 나 한사람의 희생으로 열 사람의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서....


출처 : 청룡부대 1대대 3중대 작전하사 권동일 선배님의 월남전 참전수기 "스콜(Squall)"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