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 1만명 시대 눈앞…"성차별 여전·복무여건 미흡"
창설 65주년, 현재 9천700여명 각 군서 복무
여군 창설 65주년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여군 창설 제65주년 기념식에서 여군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이날 여군 참석자들은 기념식에 이어 열리는 국방여성 정책발전 세미나를 통해 양성 평등의 군 문화 정착 방안을 모색했다. utzza@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오는 6일이면 여군 창설 65주년을 맞는다.
4일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으로 여군은 9천783명이다. 올해 안에 1만명 시대를 열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연군 인력은 장군 2명, 영관급 731명, 위관 3천867명, 원사 23명, 상사 416명, 중사 2천85명, 하사 2천659명 등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일선부대에서 '홍일점' 수준이던 여군이 금녀의 벽을 허물며 주력 병과에 배치되어 남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복무를 하고 있다.
<그래픽> 여군 인력 현황
(서울=연합뉴스) 장예진 기자 = 4일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으로 여군은 9천783명이다. 올해 안에 1만명 시대를 열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연군 인력은 장군 2명, 영관급 731명, 위관 3천867명, 원사 23명, 상사 416명, 중사 2천85명, 하사 2천659명 등이다. jin34@yna.co.kr
하지만 여군에 대한 성차별은 여전하고 복무 여건도 남군보다 턱없이 열악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국방부가 이날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개최한 '양성평등 군 문화 정착 방안'이란 주제의 세미나에서도 여군의 성차별 해소와 복무여건 개선 문제가 핵심으로 제기됐다.
여군학교장 등을 역임하고 2011년 말 전역한 조석희 강원대 연구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지휘관과 참모는 여군이 보직되면 편의시설을 추가 설치해야 하고 여군 활용 원칙에 따라 남군들의 보직관리가 제한되며 장기복무 또한 병과 임관인원의 50%로 제한되는 차별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여군들은 낙하산 인사로 왔다"는 등의 언어폭력과 특정 외모에 대한 비하 발언이 있어서 그냥 참고 지낸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 교수는 "여군은 자신의 지원에 의해 선발된 만큼 임관한 그날을 기억하는 등 국방 여성인력으로서 당당한 멋을 발휘해야 한다"면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국방여군으로서 자긍심, 소통, 신뢰, 희망을 품고 당당하게 근무해 달라"고 조언했다.
그는 "군은 여군인력 활용 지침을 폐기하고 공정한 보직관리를 해야 한다"면서 "여군 장교, 부사관 장기복무 비율을 상향 조정하고 여군의 인사와 고충상담을 전담하는 부서를 신설해 전문가를 보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육군의 전설' 특전사 여군 3인방…새로 쓰는 전설
1군사령부 인사근무과장인 김인건 대령도 주제발표를 통해 "우수한 여성인력을 국방분야로 과감히 유인해야 하며 100% 여성인력으로 구성된 병과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며 "특히 단기 상근예비역으로 여성도 병으로 복무할 수 있는 등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군은 1990년 이후부터 여군 병과를 남군과 동일한 제병과로 분류해 여군 장교의 활용 범위를 확대했다. 육군은 군종, 포병, 방공 병과를 여군에 개방했다.
해군은 2004년 3월 여군 부사관을 함정에 배치했고 2005년 6월 여군 헬기 조종사, 2006년 해병대 여군 전투부대 지휘관을 배출했다. 2011년 4월 여군 해상초계기 조종사에 이어 그해 12월 여군 고속정 정장이 처음 탄생했다. 현재 130t급 참수리 고속정 지휘관으로 3명의 여군이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최초로 해상 작전헬기 링스 여군 조종사도 배출됐다. 2020년께 3천t급 잠수함(장보고-Ⅲ)이 도입되면 잠수함에도 여군 배치를 추진 중이다.
공군에서는 지난 1월 첫 여성 작전포대장이 취임했다. 1997년 처음으로 여성에게 사관학교 입학을 허용했다. 2002년 9월 최초 여성 전투기 조종사에 이어 2004년 1월 첫 여성 헬기 조종사가 탄생했다. 2007년에는 여성 전투기 편대장 1호도 나왔다.
[연합뉴스] 2015.09.04.
************************************
'1만명 시대' 앞둔 여군 막강 파워
대한민국 여군이 6일 창설 65주년을 맞는다. 국방부는 1950년 9월 6일 육군 여군의용대 창설일을 국군의 여군 창설일로 기념하고 있다.
국방부는 4일 “지난 7월 기준으로 여군 숫자는 총 9783명”이라며 “올해 안에 1만명 시대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여군 인력은 장군 2명, 영관급 731명, 위관 3867명, 원사 23명, 상사 416명, 중사 2085명, 하사 2659명 등이다.
여군은 이제 ‘금녀의 벽’을 허물며 주력 병과에 배치되어 남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복무를 하고 있다.
군은 1990년 이후부터 여군 병과를 남군과 동일한 제병과로 분류해 여군 장교의 활용 범위를 확대했다. 육군은 군종, 포병, 방공 병과를 여군에 개방했다.
공군에서는 지난 1월 첫 여성 작전포대장이 취임했다. 1997년 처음으로 여성에게 사관학교 입학을 허용했다. 2002년 9월 최초 여성 전투기 조종사에 이어 2004년 1월 첫 여성 헬기 조종사가 탄생했다. 2007년에는 여성 전투기 편대장 1호도 나왔다.
■해군 여군의 역사
해군은 2004년 3월 여군 부사관을 함정에 배치했고 2005년 6월 여군 헬기 조종사, 2006년 해병대 여군 전투부대 지휘관을 배출했다. 2011년 4월 여군 해상초계기 조종사에 이어 그해 12월 여군 고속정 정장이 처음 탄생했다. 현재 130t급 참수리 고속정 지휘관으로 3명의 여군이 활약하고 있다.
6.25전쟁 중인 1950년 8월 31일 인천상륙작전을 준비중이던 해병대가 제주도에서 해병대를 모집할 당시 해병 4기로 여자의용군 126명이 자원입대했다.
지난해에는 최초로 해상 작전헬기 링스 여군 조종사도 배출됐다. 2020년께 3000t급 잠수함(장보고-Ⅲ)이 도입되면 잠수함에도 여군 배치를 추진 중이다.
해군 여군의 역사는 1949년 2월 7일 간호장교교육대가 설치되고 그해 4월 9일 한춘화(韓春花) 등 해군 간호장교 제1기 20명이 임관하면서 시작됐다. 해군 자체적으로 양성한 간호장교는 1969년 5월, 제17기까지 총 160명이 배출되어 6·25전쟁에서 부상자 치료 등 전·후방 각지에서 활약하며 해군과 해병대 장병들의 건강을 보살폈다.
6·25전쟁 중인 1950년 8월 31일, 인천상륙작전을 준비 중이던 해병대가 제주도에서 해병대를 모집하면서 여자의용군 126명이 해병 4기로 자원 입대했다. 126명의 인원 중에는 중학교 2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어린 여학생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미혼 여교사 및 육지에서 제주도로 피난 온 젊은 여성 등이 일부 포함됐다. 이들은 ‘북한군이 제주도로 쳐들어와서 가만히 앉아서 죽느니 차라리 해병대에 입대해 북한군을 한 명이라도 죽이고 죽겠다’는 일념으로 자원했으며, 1950년 8월 31일 해병대 군복을 입고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른 채 제주북초등학교에서 입대식을 거행했다.
당시 입대식은 입대자들이 가족과 학교동료 그리고 선생님들로부터 받은 무운을 비는 문구가 적힌 태극기와 1천 뜸을 뜬 천을 어깨에 두르는 등 비장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해병 4기 여군 126명은 그해 9월 2일 진해로 이동하여 해군신병교육대에 편성되어 각개전투, 사격훈련 등 남자 신병 교육생과 똑같은 훈련을 6주간 받았고, 10월 10일 126명이 전원 교육을 수료했다. 수료 시 학력과 경력에 따라 소위 3명, 병조장(상사) 2명, 일등병조(중사) 7명, 이등병조(하사) 9명, 상등병조(병장) 15명, 일등수병(상병) 90명 등 차등적으로 계급을 부여받았으나 일등수병 중 51명은 나이가 어려 귀가 조치되었다.
현역에 남은 75명은 해군통제부(지금의 해군작전사령부) 각 참모부 및 직할부대와 진해 해군병원에 배치되어 행정, 보급, 교환, 유선 및 무선반, 간호보조 업무 등을 수행했고 이후 순차적으로 전역하여 1951년 7월에는 장교 3명만이 남았다. 그리고 1955년 1월 17일 해병 4기 중 마지막으로 남았던 이순덕 중위가 전역함으로써 해병 4기 여군은 모두 전역하게 되었다. 이후 해군․해병대는 간호장교 외에 여군을 별도로 모집하지 않았다.
해군에서 여군의 역사가 다시 이어진 시기는 1999년 2월 해군사관학교 제57기로 여생도 21명이 입교하면서부터이다. 이후 57기 여생도들이 3학년이던 2001년, 해군 13명ㆍ해병대 7명의 여군장교가 해군사관후보생 96기로 임관하여 그해 10월 최초로 여군장교가 함정에 배치되었다.
2003년은 장교뿐만 아니라 부사관까지로 여군모집이 확대된 해이다. 2003년 3월 해군사관학교 57기 여생도들이 소위로 임관했고, 10월 18일 해병대 여군 부사관 10명, 10월 25일 해군 여군 부사관 29명이 최초로 임관했다.
이후 2004년 3월 여군 부사관이 함정에 배치되었고 2005년 6월 여군 헬기 조종사 및 2006년 해병대 여군 전투부대 지휘관이 배출되었다. 또한 2011년 4월 여군 해상초계기 조종사 탄생에 이어 2011년 12월 여군 고속정 정장이 보직됨으로써, 특수전(UDT), 잠수(SSU), 잠수함 등 일부 특수분야를 제외한 해군 전 분야에서 여군이 전투전문가로서 영해수호의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2015년 8월 말 기준으로 해군·해병대에는 1,580여명의 여군이 복무 중이며, 이는 간부 정원의 약 4%를 차지하고 있다. 해군은 2016년까지 여군 비율을 장교 정원의 7%, 부사관 정원의 5%까지 확대할 예정이며 2020년경 3,000톤급 잠수함(장보고-Ⅲ)이 도입되면 잠수함에도 여군 배치를 추진 중이다.
■1호 기록 해군 여군들
해군 최초 여군 고속정 정장인 홍유진 소령(38세, 사후 97기)과 최초 여군 링스(Lynx) 해상작전헬기 조종사인 양기진 소령(34세, 해사 58기)은 우연하게도 같은 1함대사령부에서 근무하며 동해바다를 수호하고 있다. 홍유진 소령은 초계함(PCC) 안동함의 부함장으로, 양기진 소령은 항공지원대 정비대장의 직책을 맡고 있다.
양기진 소령(왼쪽)과 홍유진 소령
‘해군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진 홍 소령과 양 소령은 두 명 모두 대한민국의 바다를 지키는 해군 전투병과 부부군인이다.
홍유진 소령은 군수지원함(AOE) 행정관, 구축함(DDH-Ⅰ) 전정보좌관, 상륙함(LST) 갑판사관, 고속정(PKM) 정장에 이어 이번이 다섯 번 째 함정근무로써 51개월을 가족과 떨어져 바다에서 생활했고, 홍 소령의 남편은 같은 함정병과 장교인 정민재 중령(진)(40세, 해사 52기)이다. 그는 1함대 고속정 편대장을 마치고 현재 합동참모대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 부부의 함정근무 시간을 합치면 171개월이나 된다.
양기진 소령은 1,400여 시간의 비행기록을 갖고 있다. 12년의 군 생활 중 육아 휴직과 전대 인사참모 보직을 제외하면 9년간 링스 해상작전헬기의 조종간을 잡으며 하늘과 바다를 누빈 베테랑 조종사다.
양기진 소령의 남편 이명진 소령(38세, 사후 94기)도 같은 링스 헬기 조종사로 현재 진해 해상작전헬기대대에서 편대장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 2014년 부인 양기진 소령이 링스헬기 정조종사 교육을 마쳐 이들은 ‘해군 최초 링스 헬기 정조종사 부부’라는 기록을 세운 전투 전문가들이다.
양기진 소령은 “링스 조종사로서 적 잠수함을 탐색해 격침시키는 것이 가장 큰 꿈.”이라고 말했다.
■‘최고·최강’ 특전우먼 3인방
육군 특수전사령부에는 ‘특전우먼 3인방’이 있다.
최애순 원사(왼쪽), 전명순 준위(가운데), 김정아 상사)
전명순 준위(55)와 최애순 원사(45), 김정아 상사(45)가 그들이다. 이들 특전여군 3인방은 지칠 줄 모르는 도전과 불굴의 의지로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1982년 하사로 임관해 33년간 특전사에서 근무 중인 전 준위는 여군 최초로 1000회 강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고 육군이 밝혔다.
그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특전 하사로 첫발을 내디딘 이후 특전사령부 여군중대 고공팀장과 특수전교육단 고공강하 교관, 군수지원대 보급반장, 정비반장 등 다양한 직책을 거쳤다.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88올림픽 개막식에서 1000회 강하를 달성하고 이를 상징하는 노란색 마크인 ‘골드윙(Gold Wing)’을 단 최초의 여군이다.
1988년 대한낙하산협회 정밀강하 개인부문 1위, 1992년 인도네시아대회 정밀강하 개인부문 2위, 남녀 혼성 단체부문 1위 등 각종 대회에서 입상했고, 고공강하 국제심판 자격이 있다.
육군에서 4000회 이상의 강하 경력을 가진 현역 간부는 전 준위와 강명숙 준위 2명뿐이다.
전 준위는 내년 1월 31일 특전사 여군 최초로 34년 최장기간 복무를 마치고 전역한다.
1982년 청계산 항공기 추락으로 한꺼번에 많은 동기를 잃는 등 시련과 아픔을 겪기도 한 전 준위는 ”34년 특전여군으로 살아온 지난 시간이 제 인생에 가장 큰 자랑이자 영광“이라며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1989년 임관해 올해 26년차를 맞는 최애순 원사는 여군이 받을 수 있는 특전사의 모든 훈련과정을 마친 최초이자 최고의 전투 여군으로 꼽힌다.
공수기본, 고공기본과정(HALO), 대테러 특수임무, 강하조장 교육(JUMP MASTER), 스킨스쿠버(SCUBA), 낙하산 포장 및 정비교육(RIGGER) 등의 교육과정을 마쳤다.
정보사령부의 인간정보교육, 심리전교육, 종합군수학교의 장비정비정보체계 과정까지 모두 이수했다. 태권도, 특공무술, 일반격투기 유단자로 모두 합쳐 9단의 유단자이다. 그는 기초체력과 행군 능력을 유지하도록 26년 군 생활 중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년 100㎞ 이상 행군하고 있다.
최 원사는 ”내 사전에 만족이란 없다“면서 ”앞으로도 경험하지 않은 모든 훈련과 교육에 도전해서 특전사 뿐아니라 전군 최고의 훈련 마스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정아 상사는 1990년 임관해 올해 임관 25년차다. 김 상사는 여군 최초로 세계군인체육대회에 태권도 대표선수로 활약했고 천리행군을 완주했다.
1993년과 1994년 캐나다와 페루에서 열린 세계군인체육대회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8년에는 태권도에 음악과 에어로빅 동작을 가미한 ‘태권무’를 제작해 전군에 보급해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태권도 5단, 특공무술 2단으로 모두 합해 7단의 무술 유단자다.
특전사 최초의 여군 부중대장을 맡기도 했다. 특전사 부중대장은 보통 중위급이나 팀의 최선임 남군 부사관이 해왔으나 김 상사가 관례를 깬 것이다. 부중대장으로 내륙전술훈련에 참가한 김 상사는 여군 최초 천리행군 완주라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했다.
김 상사는 ”여군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누구나 ‘김정아’라는 이름 석 자를 인정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면서 ”도전할 때마다 응원하고 격려해준 전우들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계의 군대 > 대한민국 여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군·해병대 여군 탄생서 현재까지 (0) | 2015.09.09 |
---|---|
최초ㆍ최고 기록 보유…특전사 ‘슈퍼 여군’ 3인방 (0) | 2015.09.09 |
해군·해병대 여군 1580명…여군 잠수함배치 추진중 (0) | 2015.09.07 |
허물어진 금녀의 벽 우리는 최고 최강이다 (0) | 2015.03.09 |
육군3사관학교 첫 여생도 기초군사훈련 실시 (0) | 2015.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