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278기 김성동

청룡 아리랑(1) - 해병278기 김성동

머린코341(mc341) 2015. 9. 12. 19:29

청룡 아리랑(1) - 해병278기 김성동

 


청룡 아리랑(1)


 호국의 청룡들, 이젠 거의 모두가 환갑을 넘어선 나이로 접어들었다. 그들은 일찍이 힘없는 가난한 나라의 아들로 태어나서, 6.25라는 전쟁의 기운을 부지불식간에 받아들이면서 자라더니, 장차 이 나라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구국의 아들로서 성장하게 될 줄을 그 누가 짐작이나 했으랴. 


그들이 살아온 세월 모두를 음미해 볼 때 어쩌면 그들은 전운의 기운을 띠고 평생을 영원한 전사로서의 숙명적 운명을 타고 난 것 같다. 그들은 방년 20세, 꽃다운 나이에 국가의 부름에 응하여 청룡의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자유를 위하여 정의를 위하여 이국만리 낯선 땅을 기꺼이 달려갔다. 


어찌 그들이라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을 것이며, 어찌 그들이라고 해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지고 싶었으리요. 요즘의 사람들이 자식 사랑을 우선함과는 달리, 그 당시는 부모에 효도하고 국가에 충성함을 남아로서의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므로 국가의 명령에 따름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것이 곧, 내 부모에 효도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 국가가 자유와 정의의 명분을 부여한 이상, 살아서 돌아온다는 기약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죽기 아니면 살기뿐인 전쟁터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너무도 당연히 죽음의 땅으로 낯선 땅으로 오로지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지극히 숭고한 일념 하나로서 그렇게 나아갔던 것이다. 월남 파병, 그것은 대한민국 최초의 해외 전투병 파병이었다. 



그로 인해 청룡은 많은 희생을 감수하게 된다. 6.25라는 전쟁기간이 3~4년이었다면 우리의 월남 파병기간은 거의 10년에 가까웠다는 것만으로도 그 희생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박정희 대통령은 청룡들이 피 흘려 싸운 희생의 댓가를 자신의 치부에 이용하지 않았고 오로지 이 나라 경제발전을 위하여 쏟아넣었고 또한 국고를 든든히 쌓아나갔다. 


경제발전의 지름길로서 경부고속도로가 놓이고, 정말로 한강의 기적은 거짓말처럼 이루어졌다. 우리네 농촌을 배고픔으로 넘어가게 하던 한 맺힌 보릿고개도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장구한 역사 속에 차마 가난을 숙명적으로만 여겼던 대한민국은 이제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면서 새마을의 노래는 전국 방방곡곡에 힘차게 울려 퍼졌다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초석이 된 최초의 해외 전투병 파병, 그 중심에 우뚝 선 우리네 청룡들, 국민의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어찌 장하지 않겠으며 어찌 고마웁지 않으리요. 그러나 순수무구한 우리네 청룡은 그에 대한 아무런 보상도 어떠한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다. 오로지 귀국 시에 보여준 국민의 환영에 마냥 고무되었을 뿐,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만든 명예만으로 기꺼이 만족해 할 뿐, 더 이상 나라에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았다. 


나라에 충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했던 그 시절, 국가에 대한 자신의 희생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에 오히려 국가에 대하여 그 무엇을 바라는 것은 도리어 이상한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부모에게 효도함은 당연한 것이었고, 거기에 자식이 효도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였던 것이다. 참으로 가난한 시절이었고 그래서 오히려 돈보다 명예가 더욱 소중한 줄을 아는 시절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국가의 명령에 따랐다는 자부심 속에 단지 당신들 자신이 쌓은 영광만으로도 만족해하는 것이 그나마 가능하였던 시절이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가난한 이 나라에 애당초 국가유공자는커녕, 하물며 참전유공자조차 바랬다면 차라리 그들 스스로가 욕심이라면서 그 마음을 접었으리라. 진정 그 당시의 우리네 정서는 적어도 그러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