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 아리랑(4) - 찢겨진 명예
대한민국은 더 이상 그 옛날의 가난한 나라가 아니었다. 세계인의 축제라 할 수 있는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루었고, 이제 전 국민은 꿈의 마이카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 때의 적이었던 공산국가 베트남과도 지난날 어두운 과거사를 잊고 서로가 미래를 함께 달려가자며 굳은 언약을 하였다. 어느덧 월남전은 우리들의 뇌리에서 아스라이 먼 옛날의 이야기로 들려올 즈음, 어느 날 갑자기 소위 진보주의를 내세우는 모 언론과 모 식자의 입에서 내뱉는 황당무계한 소리, 파월 용사들은 용병이며 양민 학살자라는 것이다.
그 소리는 과거 월남전에서 베트콩들이 파월용사들에 대하여 밥 먹듯 부르짖던 바로 그 소리였다. 월남전의 망령이 되살아 난 것인가. 그럴 리가 없으리라, 차라리 악몽이리라.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꿈속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베트콩의 외쳐대는 소리는 더욱 아니었다. 악의에 찬 그 소리는 바로 내 민족 내 형제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가난한 그 시절 파월용사들이 이 조국에 대하여 무엇을 바랬으리요. 그나마 나라가 잘 살면 응분의 대우를 받으리라고 내심 기대도 해 보았건만, 그 대우란 것이, 그것도 내 형제에 의하여 이렇게 어불성설 망언으로 갚음될 줄은 정녕 몰랐다.
참으로 야속한 것이 세상사이던가, 길다면 긴 세월, 그 모진 풍상 속에 우리네 파월 용사들이 전쟁의 후유증으로 끝없이 신음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각에, 한쪽에서는 일단의 무리들이 공격의 칼날을 쉴 새 없이 갈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공격은 가히 의도적이며 계획적이며 준비된 것이었다. 생각지 않던 그들의 공격에 무방비상태로 있던 파월용사들로서 얼마나 당혹했고 얼마나 의분했으랴.
그렇다면 우리네 파월용사들이 그들의 주장대로 과연 용병이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용병이란 개념은 국제법상 사익의 이익을 위하여 개별적으로 보수를 받고 전쟁터에 나아가는 자를 의미한다. 좀 더 깊이 논한다면 교전 당사국의 국민이 아니며 교전 당사국의 군대의 구성원이 아닌 자로 모집된 자를 일컫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파월용사들은 결코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개인의 신분으로 그리고 개별적으로 모집되어 파병된 것이 아니다.
오로지 주권국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헌법상 국방의 의무와 국가안보라는 공익의 이익을 위하여 군인이 되었고, 따라서 당당한 대한민국의 정규군으로서 더욱이 독자적 작전권을 가지고 또한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월남전에 참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월용사들을 용병이라 매도함은 가히 우리의 국군에 대하여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며, 나아가 이 나라의 정통성마저 부인하는 심히 반국가적 망발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편, 민간인 학살이라는 말도 결코 있을 수 없는 억지 주장인 것이다. 학살이라는 개념에는 다분히 지위계통에 의한 의도적, 계획적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주월 한국군 사령관의 지휘 방침에서 알 수 있듯이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말은 과연 무엇을 음미하는가. 그것은 양민과 베트콩의 구분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서, 자칫 아군이 당할 수 있는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양민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우리 한국군의 인도적인 의지와 노력을 반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본의 아닌 대민피해라면 몰라도 결코 고의적인 양민학살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기나긴 전쟁 동안에 죽고 죽이는 전쟁의 본질상, 이성이 마비되는 극한 상황 속에서 우발적으로 양민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개연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양민들에게는 한국민으로 진정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유감을 표하지 않는 자가 어디에 있으리요.
하지만 우리네 한국군이 양민에 대하여 의도적이며 계획적으로 학살을 자행하였다는 주장은 너무도 지나친 확대해석인 것이다. 소위 양심선언을 한 증언자의 말 속에서도 국부적인 전투성질에서 지휘 체계가 한순간 사각점(맹점)에 놓이면서 피아간의 식별을 소홀히 한 점은 지적할 수 있으나, 공공연한 성질로서의 의도적이며 계획적인 학살의 의미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월남전 당시 우리네 파월국군은 지극히 정상적인 대한의 아들로서 우리들 국민성을 대표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파월 용사들을 학살자라고 비방하면서 전쟁범죄자로 몰고 가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민족의 자존감을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반민족적 망동이라 아니할 수 없다. 너무도 언어도단 용병설이었고, 너무도 허무맹랑한 학살설이었다. 한마디로 그것은 반국가적, 반민족적 독설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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