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 아리랑(3) - 상처뿐인 영광
1975년 4월 30일, 금성홍기를 앞세운 월맹군의 탱크가 사이공 대통령궁의 철문을 사납게 밀어제치고 들어오면서 자유민주국가 월남은 기어이 역사의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이 이렇게도 처절한 것인가. 망국의 한을 가슴에 안은 채, 정처 없이 이 나라로 저 나라로 떠도는 보트피플들......
자유란 결코 그저 얻어지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리 우방이 도우려 해도 당사자의 의지가 따르지 않는 한 그들 앞에는 쓰라린 패망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진리를 깨닫는 순간, 이미 때는 너무도 늦은 것이었다.
망국의 전야,
당시의 월남은 어지러운 정국을 기화로 관료들에 의한 부정부패는 극도로 치달았다.
군대 또한 좌익의 이념이 파고들면서 그 기강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국민들은 정권퇴진과 반전반미를 매일의 일과처럼 외쳐대었다.
이 기회를 틈타 월맹군의 첩자는 곳곳에 침투해 들어왔다. 그 결과 시민단체는 물론 종교단체, 심지어는 언론기관과 권력핵심부에까지도 좌익이념으로 은연중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저마다 민족주의, 평화주의, 인도주의를 내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 도덕적 구호들의 감추어진 이면에는 공산주의의 교묘한 선동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월남정부는 더욱 무력화되어 갔고 정국은 더욱 혼돈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반면에 민족주의자 호치민의 영도 아래 공산국가 월맹은 강했다. 공산주의와 민족주의로 무장된 그들, 오죽하면 세계최강 미국을 물러가게 했을까.
그들은 베트콩을 양산하여 연합국을 상대로 꾸준히 게릴라전을 편다. 전선과 비전선이 따로 없었다. 미국은 점점 전쟁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빠져들어 갔다.
그 월남전에, 우방의 일원으로서 한국군의 선봉군으로 파병된 우리네 청룡은 1965년부터 1972년까지 장장 8년이란 기간 동안 월남의 전장을 선도하면서 오로지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용감히 싸웠고 또한 혁혁한 전공을 세우면서 세계 속에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것이다.
머나먼 정글, 낯선 이국 땅에, 죽느냐 죽이느냐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전쟁터, 엄습해오는 죽음의 두려움, 그 지옥 같은 아비규환의 현장에 우뚝 선 청룡들, 이제는 오로지 살아서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싸워야만 했다.
그러나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교전규칙은 오히려 베트콩의 준동을 더욱 용이하게 하였고 청룡의 전투를 더욱 힘들게 하였다.
하나둘 쓰러져가는 전우의 죽음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하는 순간 청룡은 전율했고 그 전율은 어느새 적개심으로 불타오른다. 살기 위해서는 이겨야 했고, 이기기 위해서는 죽여야 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전쟁이었다.
수많은 대소작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마침내 청룡은 신화를 만들어낸다. 세계가 놀랬고 적 또한 놀랬다. 그것은 청룡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응어리였다.
전우의 시신을 구하기 위해 빗발치는 탄우 속으로 마냥 달려가는 청룡들, 마지막까지 어머니를 부르다가 끝내는 숨져가던 청룡들, 그 전우를 끌어안고 얼마나 통곡하며 얼마나 울었던가. 내 머리위로 포탄을 퍼부라는 최후의 말은 과연 그 누구를 위한 것이던가.
적을 향한 미군의 기총소사에 근접대치하던 청룡 또한 초개처럼 쓰러져갔다. 비극의 그 날, 적의 기습공격에 소대원 전부가 비통하게 전멸하던 날, 개활지 옆 수로에는 청룡들이 흘린 피가 강물처럼 흘러갔다. 정녕 피를 뿌려 얻은 승리였었고, 땀으로 이룬 영광이었고, 눈물로 쌓은 명예였었다.
이제 포성은 멈추고 전쟁은 끝났다. 패자는 말이 없다 했던가. 그 옛날 우방이던 자유국가 월남은 영원히 침묵만을 삼키고, 지난날 적이었던 공산국가 월맹은 베트남을 통일하고 1992년, 당당히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된 것이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료도 없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 참으로 격세지감 속에 무상한 것이 세상이요, 무심한 것이 세월이었다.
그 망각의 세월 속에 구세대는 점점 사라지고 신세대가 점점 올라오면서, 이제 월남전은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어느덧 희미해져 갔고, 우리네 청룡들의 가슴 속에는 단지 회한어린 전쟁이요, 상처뿐인 영광으로만 씁쓸히 머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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