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 글/해간35기 구문굉

임관 40주년의 회상 (4) 불가능은 없다 (끝)

머린코341(mc341) 2015. 10. 17. 13:39

임관 40주년의 회상 (4) 불가능은 없다 (끝)  


나는 퇴원을 하자 다음날 바로 사격장으로 이동하는 동기생들 틈에 다시 끼었다.


먼저 사격 자세등 예비훈련을 철저히 받지 못한 것을 주위 사람들은 은근히 걱정을 했으나 나는 고교시절 교련과목을 이수했기 때문에 새삼 사전 교육이 필요한 입장은 아니었다.


그리고 들리는 소문으로는 구대장들이 사격장에서 훈련을 하는 동안에는 후보생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나돌더니 어떤 구대장에게 호되게 당한 후보생 아무개는 만약 자기에게 어떤 일이 더 있을 때는 총으로 "지죽고 내 죽고를 한다"는 소문까지 은근히 나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먼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소문대로 구대장들의 거친 기합이나 죽일듯했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뭐니 뭐니해도 구대장들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소위 철조망에서 야밤에 이루어지는 특공대(떡장수)와의 거래가 쉬울 해 우선 살만했다.


그리고 하루는 사격장을 방문한 해병학교장께서 사선을 둘러보시다 하필이면 내 뒤에서 발걸음을 멈추고는 나를 지목해 "귀관, 현재 성적이 어떤가?"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나는 옆에 주욱 따라 동행했던 장교들 중 우리 중대장의 표정이 제일 긴장되어 있는 것을 금새 느낄 수 있었고 "저 녀석이 줄곧 의무대 신세를 지다 뒤늦게 온 녀석인데..."하는 근심스러움이 묻어있는 것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큰 소리로 "예! 119번 구문굉 후보생"하고는 성적을 사실대로 읊었더니 주위의 장교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고 우리 중대장은 당장 자신과 기쁨이 찬 표정으로 변해 내 자신도 마치 중대장께 신세를 갚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채 일주일이 못되는 기간의 사격 훈련을 마치고 돌아 온 날 저녁이었다.


구대장들이 그동안 참고 참았던 울분을 터뜨릴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키는 작으나 당차고 야무진 김흔중 구대장께서 먼저 단상에 올라와 외치는 일성이었다.


"얼마나~ 이날을 기다렸던가? !" 나는 겁도 났지만 내심 한편으로는 그 모습이 마치 독립투사가 무슨 선언을 하는 모습 같아 우습기까지 했다.


나중에 이 말은 내 주위의 육군 ROTC 장교들에게도 전해져 데굴 데굴 구르면서도 해병대는 고되면서도 솔직한 면이 있어 정말 매력이 있는 군대라는 말을 해 나는 그래서 육군보다는 한수가 위라는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날은 밤이 거의 새도록까지 특별 훈련에다 빳다까지 동원되는 통에 모두가 뻣었다.


그런 다음 몇주가 지나자 이번에는 교육장을 옮겨 모두가 상남으로 이동을 했다.


나는 그곳에서도 역시 특공대와의 거래가  좋았다.


뿐만아니라 내 생각으로는 아마 170기 정도쯤으로 생각되는 훈련병들과의 야구시합도 있었고 또 기간 장교들과의 야구 시합을 가져 "망중한"의 여유로움을 잠시 가질 수 있어 그것이 더욱 기뻤다.


특히 내가 핏처에다 4번 타자로 나서 솜씨를 한번 보여 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은 물론이었으나 애석하게도 그날의 시합은 훈련병 핏처의 공이 예사롭지 않아 우리가 8:9로 지고 말았다.


처음 입교를 했을 때 어떤 친구가 연병장에서 빤히 보이는 경화극장의 선전간판을 보고는 저것이 앞으로 열두번만 바뀌면 임관을 한다더니 어느듯 일주일에 한번씩 바뀌는 간판이 그동안 열두번이  바뀌었는지 임관을 앞두게 되었다.


임관 이틀전 나는 누가 뭐래도 내 평생 제일 기뻤던 일 중의 하나를 손꼽으라면 당연히 꼽을 수 있는 바로 M1 소총의 반납이 한 밤중에 있었다.


총을 반납하고 돌아서는 내 팔과 다리는 마치 붕붕 나르는 새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임관을 하던 날 아침  우리는 정복 차림을 한채 구대장들의 트집으로 모두 빳다를 다섯대씩이나 맞았다.


일본식으로 말을 하자면 사요나라 빳다였던 것이다.


드디어 우리는 북을 치고 나팔을 부는 임관식을 마치고 이어지는 3개월간의 기초반 교육에 들어가기 전 일주일의 휴가를 받아 진해 해병교육기지 사령부의 정문을 나서게 되었다.


대한민국 해병대의 소위 계급장을 달고 정문을 마악 나설때의 내 기분은 불가능이라는 존재가 과연 내 앞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자신감이었으며 나는 그러한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내 스스로가 놀래지 않을 수 없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