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과 해병대의 운명 - 차근차근 진행되는 쿠데타
해병대 김윤근 장군
해병대 김동하 장군
김종필
5·16 군사혁명 50주년 기념 연재(20) / 朴正熙는 공수단에 이어 해병여단을 포섭함으로써 쿠데타를 하는 데 적합한 기동력을 확보했다.
朴致玉 공수단장
합법을 위장한 혁명군 출동 계획이 될 폭동 진압 ‘비둘기작전’ 계획을 짜면서 6관구 작전참모 박원빈은 자신을 신임하는 6관구 사령관 서종철 소장을 속이는 일이 괴롭기도 했다. 참모장 김재춘 대령은 같은 혁명파니까 이 작전 계획의 숨은 뜻을 알고 결재를 해주는데 서 사령관은 박 중령이 올리는 작전 계획서를 검토하고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961년 3월6일부터 11일까지 이 작전 계획에 따른 훈련이 서울에서 실시되었다. 한강 백사장에 지휘소(CP)를 설치하고 도상 연습을 했다. 7일 영등포 6관구 사령부로 박정희 2군 부사령관이 시찰을 나왔다. 서종철은 박원빈으로 하여금 비둘기작전에 따른 상황 보고를 올리게 했다. 이 계획에 담긴 비밀에 대해서 알고 있는 두 박 씨는 의미 있는 문답을 주고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 진정한 의미를 알 턱이 없는 문답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원빈은 직접 박정희로부터 군사 혁명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박정희는 보고회가 끝나자 서종철 사령관실로 들어갔다. 박원빈이 따라 들어가서 “그동안 바빠서 찾아뵙지 못했습니다”고 인사했다. 박정희는 “곧 연락하겠으니 봅시다”라고 했다. 옆에 앉은 서종철 사령관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비둘기작전 계획에 의하여 서울로 들어올 30, 33사단과 김포 해병여단, 공수단, 5사단, 그리고 이 계획에는 없었던 6군단 포병사령부의 지휘부를 포섭하기 위한 공작이 거사 준비의 핵심이었다. 수백 명이나 되는 육사 8기생들은 수도권과 야전군 부대마다 작전참모 등 요직에 박혀 있었다.
6관구 사령부 작전참모 박원빈, 30사단 작전참모 李白日(이백일) 중령, 33사단 작전참모 吳學鎭(오학진) 중령, 6군단 포병단 대대장 申允昌(신윤창) 중령이 모두 8기생이었다. 박치옥 공수단장, 문재준 6군단 포병사령관은 육사 5기 출신이었다. 5·16은 대령급인 육사 5기와 중령급인 8기의 합작품이란 이야기를 들을 정도이다.
그때 국군엔 공수단이 하나밖에 없었다. 공수단장 박치옥 대령은 예비사단의 연대장으로 있을 때 장도영 육군참모총장 비서실장이던 安用鶴(안용학) 대령을 통해 인사 부탁을 했다. 안 대령은 박 대령과 장도영의 친구인 張益三(장익삼) 사장을 데리고 총장공관으로 갔다. 박치옥은 총장에게 말했다.
“저는 1사단, 9사단, 논산훈련소, 전주 예비사단만 돌면서 연대장만 하고 있습니다. 이제 보병 병과로서 갈 수 있는 곳은 공수단장뿐인데 꼭 좀 보내주십시오.”
장 사장이 나서서 “야, 하고 싶다는데 한번 하게 해줘라”고 장도영에게 말했다.
“공수단장엔 강원채 대령을 보낼 생각이오.”
장 사장이 또 거들었다.
“야, 강원채나 박치옥이나 똑같다. 강원채는 몸이 너무 커서 낙하산 못 탄다.”
장도영은 마음을 바꾸었다.
“좋소. 한번 나가보시오. 그 대신 당신은 나에게 충성을 다해야 하오.”
박치옥은 그 은덕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수도권 부대로서 쿠데타에 써먹기 좋은 공수단장에게 박정희 쪽에서 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1대대장 金悌民(김제민) 중령이 찾아오더니 “길재호, 姜尙郁(강상욱) 중령이 찾아와서 박정희 장군 이야기를 하면서 집적거린다”고 보고했다. 박치옥은 “별명이 있을 때까지는 그들과 만나지 말라”고 지시했다.
박치옥은 육사 5기 생도 시절의 박정희 중대장을 기억하고 있었다. 박정희 중대장의 과묵함이 무언가 사람을 끄는 멋이 있었다. 육사에선 기합과 구타가 橫行(횡행)했다. 박정희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 유일한 장교였다고 한다. 그가 주는 기합이란 것은 주말에 외출을 나갈 때 경례 연습을 하고 나가게 하는 정도였다. 한편으로 박치옥은 고향인 황해도에서 공산당에 붙잡혀 한 달간 고생한 적이 있었다. 공산당이 싫어서 월남한 그로서는 박정희의 좌익 전력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오치성 대령과 옥창호 중령이 박치옥을 찾아왔다. 두 사람은 “박정희 장군이 한번 만났으면 한다”고 전했다.
“왜 나를 만나자고 하는지 한번 말해 봐.”
“단장님이 생각하고 있는 그런 문제로 이야기하자는 것이겠지요.”
박치옥은 쿠데타 문제로 이야기하자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도 시큰둥해 있는데 김제민 대대장이 다시 오더니 “제 입장이 곤란합니다. 박 장군을 꼭 만나주십시오”라고 간청했다. 그 며칠 후 무교동에 있는 작은 술집으로 박정희를 만나러 갔는데 뜻밖에 육사 5기 동기생인 문재준 6군단 포병사령관이 와 있었다. 김제민과 문재준은 그때 이미 박정희에게 포섭되어 있었다. 세 사람이 둘러앉아 술을 마시면서 오고간 대화는 대강 이러했다고 박치옥은 기억한다.
“동생, 안 할라나.”
“뭘 말입니까.”
“숙군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해야지요.”
“우리 같이 해.”
“각하가 중심입니까.”
“장도영 장군을 받들고 한다.”
“장 장군과는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되어 있습니까.”
“그분이 2군 사령관으로 있을 때 이야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야기가 잘 되어 술판이 벌어졌는데 박치옥이 이런 건의를 했다.
“장도영 총장과의 연락은 제가 맡겠습니다.”
박치옥은 이때 박정희와는 同床異夢(동상이몽)이었다. 그는 장도영 총장을 추대한 쿠데타를 상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는 “장 장군과의 연락은 가급적 내가 하겠다”고 했다. 박치옥은 장도영을 추대하여 쿠데타를 하겠다는 의논을 장도영과는 한 적이 없었지만 박정희가 “장 장군을 받들고 한다”는 말을 하니까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박치옥은 장도영이 군사 혁명을 지원하고 있는 줄 알고 모의 과정에 참여한 경우이다. 박치옥은 옆자리에 있는 문재준에게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박정희를 바라보면서 “박 소장은 남로당인데…”라고 귀엣말을 했다. 문재준은 “지금은 아니야”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金潤根 해병여단장
박치옥 공수단장이 박정희 소장과 술을 마시고 있는 자리에 자주 들락날락하는 점퍼 차림의 사나이가 있었다. 박치옥은 ‘남자가 웬 술시중인가’ 하고 생각해 박 소장에게 물었다.
“내 조카사위 아닌가.”
이래서 박 대령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사람과 초대면을 했다.
김종필은 포섭한 장교들과 박정희가 직접 접촉하는 것을 제한했다. 그 자신이 주로 대구로 내려가서 처삼촌에게 보고하고 지침을 받아오곤 했다. 1961년 3월10일 김종필 중령은 옥창호 중령과 함께 대구로 내려갔다. 두 장교는 ‘육본 점령 계획, 수도권 부대 지휘관 포섭 계획’에 대한 지침을 받고 올라왔다.
3월13일 강화도 남산장이란 음식점에선 세 해병 장교들이 만나고 있었다. 김포에 주둔하는 해병여단 소속 부연대장 趙南哲(조남철) 중령, 대대장 吳定根(오정근) 중령, 인사참모 崔龍琯(최용관) 소령이 나누는 밀담은 ‘해병대 단독 쿠데타 계획’이었다. 이들은 오는 4월15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특공대를 편성하는 한편, 군인들을 의식화하기 위하여 외부 인사들을 초청해 反共(반공) 강연을 많이 갖기로 했다. 이들은 사회가 돌아가는 데 대한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무모한 쿠데타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때 해병여단장은 부임한 지 한 달쯤 되는 金潤根(김윤근) 준장이었다. 그는 만주군관학교 제6기로 박정희보다는 4년 후배였다. 그는 4·19 후 이상한 악역을 맡은 적이 있었다. 허정 과도 정부는 뚜렷한 이유 없이 김동하 해병소장을 예편시켰다. 3·15 선거 전에 박정희와 쿠데타를 모의했던 김동하는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金聖恩(김성은) 해병대 사령관은 행정참모부장이던 김윤근을 시켜 김동하로 하여금 행정 소송을 취하하도록 권해 보라고 했다.
김동하는 만주군관학교 1기생으로서 박정희보다 1년 선배였다. 말솜씨가 좋은 편이 아닌 김윤근 준장은 ‘귀찮을 정도로 자주 찾아가서 후배인 나의 난처한 입장을 동정해서 행정 소송을 취하하도록 만드는’ 작전을 폈다. 자주 찾아가다 보니 이야기는 閑談(한담)이나 放談(방담)으로 흘렀고 김동하는 과격한 우국충정을 토로하곤 했다. 군부가 나서서 기울어 가는 나라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김동하의 주장에 대해서 김윤근은 ‘군부가 나서야 별로 뾰족한 수가 없지 않습니까’ 하고 반박하고 싶었으나 선배의 기분을 건드릴까 봐 장단을 맞추어 주곤 했다.
김동하는 후배의 이런 태도를 쿠데타에 동조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김동하 장군 집을 자주 찾아가던 김윤근은 그곳에서 만군 선배 박정희를 몇 번 만났다. 그의 ‘憂國放談(우국방담)’도 매우 과격했다. ‘군부가 나서서 썩어빠진 정당과 정치인들을 싹 쓸어버리고 정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1961년 1월 하순 김윤근은 김포 해병여단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후임자에게 업무 인계를 하고 있는데 김동하 장군이 집으로 와달라는 연락을 해왔다. 가보니 박정희 2군 부사령관이 대구에서 올라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박정희는 “여보, 김 장군 정말 축하합니다. 하늘이 우리 일을 도와주시는 겁니다. 김 장군만 믿소”라고 했다. 김윤근은 속으로 ‘허, 이거 일이 난감하게 되어 가는구나’라고 생각했으나 그렇다고 ‘나는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는 걸 반대합니다’라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대신 “감사합니다”라고 답했고, 그러니 ‘하늘이 돕는 일에 찬동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수도권을 위협할 수 있는 김포에 주둔한 해병여단은 비록 연대 규모이긴 했지만 그 전략적 위치로 해서 쿠데타를 성공시킬 수도, 막을 수도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 김윤근 여단장이 부임한 지 한 달쯤 지난 3월 중순 저녁에 인사참모 최용관 소령이 조남철, 오정근 중령을 안내하여 여단장을 찾아왔다.
세 사람은 합세하여 우국충정의 말들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이 암담한 시국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군부가 救國(구국) 차원에서 나서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토로였다. 김 여단장은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겨 두어야 하고 군인은 국방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타일러서 돌려보냈다. 약 1주일 후 세 사람은 다시 찾아왔다. 그들은 또 군부가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여단장은 속으로는 동지가 나타난 것이 기뻤지만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 정색을 했다.
“그런 말 하려거든 앞으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세 장교는 사과를 하고는 물러났다. 다음날 김윤근은 세 사람의 사람됨을 조사시켰다. 입이 무겁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이란 평이었다. 며칠 뒤 세 사람은 다시 여단장을 찾아왔다. 이 무렵 우리 학생들은 판문점에서 북한 학생들과 만나서 통일 문제를 의논해 보자고 나서고 있었다. 세 사람은 이 현상을 화제로 올리면서 학생들의 불장난이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데 군부가 수수방관만 할 수 있느냐고 흥분했다.
“도대체 군부가 나서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계획이라도 있으면 설명해 봐.”
세 사람은 구상하고 있던 해병대 단독 쿠데타 계획을 설명했다. 해병연대의 일부 병력을 끌고 나가서 정부 청사를 점령하고 요인들을 체포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뒤의 계획이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새 정부를 어떻게 구성하고 정치를 어떻게 해나갈지에 대한 부분은 백지 상태였다.
“정부를 뒤엎은 후에 더 잘 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면 공연히 혼란만 일으키는 게 아닌가.”
“그러니 여단장님을 모시고 하자는 것이 아닙니까.”
김윤근 준장은 웃으면서 말했다.
“나도 정치를 잘 모르오. 그러나 당신들이 나를 지도자로 삼고 혁명 거사를 하자는 것이라면 함께 의논해 봅시다. 우선 논의하기 전에 다짐받을 것이 있소. 혁명이란 大事(대사)를 논의할 땐 일신의 영달이라는 불순한 동기를 개재시키면 내분이 생겨 혁명은 실패해. 세 사람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혁명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맹세할 수 있는가.”
세 사람은 “우리는 절대로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혁명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맹세하고 김윤근도 맹세했다. 그런 뒤 김윤근은 박정희 장군과 김동하 장군이 주동하여 혁명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오정근 중령의 대대를 거사 부대로 지정했다. 병력 보충이나 물자 보급에서도 오정근의 부대를 중점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박정희는 공수단에 이어 해병여단을 포섭함으로써 쿠데타를 하는 데 적합한 기동력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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