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278기 김성동

청룡 아리랑(7) - 구국의 행진(上)

머린코341(mc341) 2015. 10. 24. 01:03

청룡 아리랑(7) - 구국의 행진(上)



1964년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월남전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의 존슨대통령은 한국 정부에 대하여 월남파병을 정식으로 요청한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으로서는 선뜻 이에 응할 수가 없었다. 6.25 전쟁으로 홍역을 치룬 이 나라, 이제 다시 월남전으로 인하여 우리네 젊은이들이 희생되어야 하는가. 그 고뇌의 시간 속에 육영수 여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담배꽁초가 가득 담긴 재떨이를 비워야만 했다.


지난날의 6.25전쟁, 일요일을 기하여 새벽 4시, 북한 공산군은 선전포고도 없이 250여대의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일제히 38선을 넘어왔다. 남침 3일 만인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된다. 그리고 두 달 만에 대구와 부산지역을 제외한 전국토가 적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백척간두에 처한 대한민국, 그 위기의 순간에서 미국을 선두로 하여 UN군이 참여하면서 전세를 역전으로 만들어갔다. 이 전쟁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과 밴프리트 장군의 아들과 클라크 UN군 사령관의 아들이 참전하여 모두 목숨을 잃는다. 더하여 4만여 명의 미군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생각해 보면 반만년 역사에 언제나 가난을 당연시하며 살았던 이 나라, 자원도 자본도 기술도 아무것 하나 없던 이 나라, 더욱이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나라는 그나마 미국의 유·무상원조에 의하여 이 나라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은 필리핀·인도네시아·태국은 물론 북한보다도 GNP가 낮은 나라였다. 참으로 우리나라는 지금의 아프리카의 빈민국 가나에 비견되는 못사는 나라였다. 돈이 있어야만 이 나라가 잘 살 수 있으련만, 그 어디에서도 비전이 보이지 않는 가난한 이 나라에 아무도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그나마 이 나라의 국가예산의 반 이상을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한 미국의 요청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 것인가. 마침내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의 운명을 건 용단을 내린다. 월남전 파병, 그것은 지난날 한국전쟁에서 미국과 자유우방으로부터 받았던 도움에 대한 빚을 갚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더욱이 헐벗은 이 나라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무후무의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또한 주한미군을 월남으로 빼돌리려는 미국 측의 의도를 사전봉쇄시킴으로서, 미군의 철수 후 재남침을 꿈꾸는 북한의 적화야욕을 꺾는 일이기도 했다. 이와 같이 당시의 국제역학상, 한반도의 전쟁방지와 세계평화와 자유수호의 기여를 위하여는 우리 국군의 월남참전은 필연적이었다. 그것은 실리와 명분을 갖춘 박정희 대통령으로서의 최상의 결정이었다.


1965년 8월 13일,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월남파병동의안을 통과시킨다. 이어서 3일 뒤인 8월 16일, 김성은 국방부 장관은 파월전투사단부대 창설명령을 내리고 채명신 소장을 파월부대 사단장으로 지목, 박정희 대통령에게 상신한다. 초대 주월한국군 사령관 겸 맹호사단장으로서의 채명신 장군은 게릴라 전술의 명장이었다. 그러나 월남전은 그에게도 풀리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았다. 이미 민심이 떠나가고 있는 월남정부, 반면에 그 민심은 민족주의지도자 호치민이 이끄는 월맹으로 향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전선이 따로 없는 게릴라전을 감당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었다.


채명신 장군은 먼저 이 난제부터 풀어야 했다. 그는 절대자를 의지하고자 했다. 아니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내 삶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관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 순간 떠오르는 깨달음...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양민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분리와 섬멸이라는 작전개념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유일무이한 채명신 장군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월남전에서 주월한국군사령부가 맨 처음 당면한 과제는 작전지휘권 문제였다. 주월미군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군을 주월미군의 작전지휘권 아래 두고 싶어 했다. 김성은 국방부 장관은 작전지휘권이란 결국 작전지역의 행사 결정권으로 결코 미국에 양보해서는 아니 된다는 지침을 주월한국군 사령부에 보낸다. 이에 채명신 사령관은 미군 지휘관 회의에 참석, 한국군의 입장을 단호히 밝힌다. 우리가 월남땅을 빼앗으러 온 것이 아니고 월남을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온 것임을 먼저 월남국민에게 인식시켜야만 하거늘, 한국군의 지휘권이 미군에 속하게 되면 우리는 미군의 청부전쟁에 동원된 국가로 전락할 것이라면서, 이에 한국군이 독자적인 작전권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정면으로 당당히 소신표명을 하는 것이다.


한편, 해병대 사령관, 공정식 장군은 아 해병대를 독립부대로 참전하여 미 해병대와 연합작전을 펼칠 계획 아래, 상륙훈련과 정글전에 대비한 특수훈련에 박차를 가한다. 그리고 파월전투부대인 해병 제2여단의 이름을 청룡이라고 명명하였다. 호국의 신, 좌청룡 우백호라 하지 않던가. 동방의 상징, 바다의 제왕 청룡... 바다를 주름잡는 군대의 이름으로 이보다 더 근사할 것이 없었다. 우리네 자랑스런 청룡은 그렇게 해서 탄생된 것이었다.


1965년 9월 20일, 박정희 대통령은 동해안 기지에서 파월전투부대의 제1진으로 선정된 해병 제2여단 결단식에 참석, 유시를 통하여 자유월남을 침략한 공산세력은 월남의 적인 동시에 우리 한국의 적이며 또한 자유세계 공동의 적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또한 월남전선은 우리의 휴전선과 바로 직결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므로 국가의 현 시점을 인식하고 자유와 평화의 자랑스런 십자군으로서 해병의 명예를 이역만리에 높이 선양하라고 명령했다. 대통령의 출정명령과 이에 화답하는 청룡부대장의 출정답사에 포항연병장은 한바탕 감격으로 휘몰아쳤다.


이제 청룡은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에 해외 최초의 전투부대로서, 또한 한국군의 선봉군으로서 출정을 하는 것이다. 하필이면 왜 해병대가 해외전투병의 선봉군이 되었는가. 국군 중에서도 해병대는 그 특성이 제반 지상전투훈련은 물론이려니와 상륙작전의 광범위한 수행능력을 갖추고 정규전 및 비정규전의 특수훈련으로 국내외 어느 곳에든지 최단시간 내에 출동할 수 있는 국군전략기동부대의 성격으로 보아 국군이 외국에 파견될 시에는 해병대가 선봉장이 되는 것은 당연한 기정사실이었던 것이다.


드디어 월남파병, 출정의 그날이 왔다. 1965년 10월 3일 새벽 3시, 해병대 포항 특정지역사령부, 사령관실을 나오는 청룡부대장 이봉출 장군... 지휘관으로서 죽음의 땅을 함께 하는 장병들에 대한 당신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살아서, 살아서 돌아올 것이다...


그 짧은 한마디, 그것은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주는 애틋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전쟁터에서 부대장은 곧 그 부대원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월남출정의 기상나팔이 울리는 새벽녘의 포항사단, 그 연병장은, 밤잠마저 설친 청룡의 뜨거운 열정가가 10월의 싸늘한 밤바람마저 잠재우고 있었다.


청룡들은 일어나자마자 각자 군장을 꾸렸다. 이어서 주먹밥 한 덩이씩을 아침식사로 때웠다. 청룡들을 태운 트럭의 대열이 형산강을 건널 때, 하필이면 먼동이 터오고 있었고, 하필이면 그 시간에 영일만의 밀물이 미명을 가르며 밀려들고 있었다. 잠시 군가가 멎고, 순간 침묵이 흘렀다. 과연 내가 이 형산강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월남특수전교육훈련... 땀을 흘린 만큼 피를 흘리지 않는다기에, 그래야만 살 수 있다고 하기에, 모두들 그 흔한 요령 하나 피우지 않고 훈련에 임했다. 어찌 청룡이라고 해서 죽음의 두려움이 없었을까. 그들은 그 두려움을 훈련 속에서 악기 가득한 고함으로 이겨내었다. 하나님은 절대 우리 편이다. 부처님도 절대 우리 편이다. 해가 떠도 우리 편, 달이 떠도 우리 편... 살아서, 살아서 돌아오리라.


오전 11시, 부산항에 도착한 청룡들의 앞에는 25000톤급 미 해군 수송선 카이저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승선한 청룡들은 부두에 환송 나온 정일권 국무총리와 김성은 국방부 장관에게 목이 터져라고 이기고 돌아오겠습니다를 몇 번이나 복창하였다. 부산항 제3부두, 마침내 청룡들을 태운 거대한 수송선은 뱃고동을 몇 차례 길게 울리더니 이별의 서러움도 아랑곳 없이 죽음이 도사리는 월남 땅을 향하여 바야흐로 부산항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이역만리 머나먼 땅, 낯설고 물선 월남 땅으로 그렇게 청룡들은 떠나갔던 것이다.


출처 : http://blog.chosun.com/chikookp/4118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