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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기('50년) - 포판 없이 박격포를 쏜 고문갑 중령

머린코341(mc341) 2015. 10. 28. 16:34

6·25전쟁기('50년) - 포판 없이 박격포를 쏜 고문갑 중령


60밀리 박격포나 81밀리 박격포는 포신을 포판에 고착시켜 놓고 사격을 하게 돼 있는데, 진동리지구 전투 때 3중대 화기소대의 박격포분대장 고문갑(高文甲) 중사(해군7기․충남서산출신)는 적군의 돌발적인 공격으로 혼란이 야기된 위급한 상황에서 포판을 가진 대원이 눈에 띄지 않자 부득불 철모에 모래를 채운 다음 구 모래 속에 60밀리 박격포의 포신을 박고 쌍안경으로 탄착점을 유도해 준 수색소대장 김종식 중위의 협조 하에 18발의 명중탄을 집중시키게 됨으로써 500~600미터 전방의 하천지대에 나타난 적병들을 혼비백산케 했는데, 필자가 알고 있는 한 모래를 담은 철모에 포신을 박고 60밀리 박격포탄을 발사했던 예는 그때가 처음인것 같다.

 
그 날(50.8.3) 아군의 상황은 이러했었다. 즉 그 날 새벽 북괴군 6사단의 기동정찰대를 요격하여 뜻밖의 큰 전과를 거두었던 아군(김성은부대)은 해가 뜰 무렵 진지 전후방에 적이 나타나는 바람에 3중대의 엄호 하에 철수를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엄호 부대인 3중대마저 돌연 공격을 받게 되어 혼란이 야기된 그러한 상황에 쌍안경으로 전방의 하천지대를 살피고 있던 수색소개장 김종식 중위가 고문갑 중사에게 쌍안경을 건네 주며 전방의 적을 확인하게 한 다음 60밀리 박격포로 제압을 해 보라고 하자 고 중사는 급히 사격준비를 갖추던 중 포판을 가진 대원이 눈에 띄지 않자 눈앞에 나타난 박격포반 대원(김진수 해병)이 쓰고 있는 철모(어디서 주운 미군 철모)를 벗겨 그 철모에 모래를 채운 연후에 그 철모에 포신을 박았다.


그리고선 김진수 해병의 윗저고리를 벗겨 포신을 감아 쥐고 두 다리로 철모를 끌어 안고선 김진수 해병으로 하여금 포탄을 발사하게 했고, 그 포탄이 근탄이 되자 수색소대장의 유도에 따라 대충 거리를 조정한 것이 명중탄이 되어 보유하고 있던 18발을 계속 퍼부어 그 하천지대를 수라장으로 화하게 했는데, 그 전공으로 고문갑 중사는 6.25전쟁기간 중 해병대 장병들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정부의 은성훈장을 탄 수훈의 용사로 기억되고 있다.

 
그 후 통영상륙작전과 인천상륙작전, 수도탈환작전과 원산 함흥지구 전투에도 참가했던 고문갑 중사는 1.4후퇴 후 해간4기로 임관하여 924고지 탈환작전과 장단지구 전투에 참가했는데 특히 3중대 선임장교 및 중대장으로서 참가했던 장단지구 전투 때 고문갑씨(1929년생)는 6차에 걸친 67고지 역습전 때 두 차례나 역습대를 지휘한 용감한 지휘관으로 알려졌으며, 군복무기간 중 제일 먼저 탄 미국 은성훈장 외에 2개의 충무무공훈장과 1개의 화랑훈장을 탄 역전의 용사로 기억되고 있다. 68년 중령의 계급으로 예편했던 그는 현재 마산에서 거주하고 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1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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