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기(‘51년) - 훈장복을 타고난 안철환 대령
도솔산 지구 탈환작전 때 7중대 박격포소대장이었던 안철환(安澈奐)소위는 중대에서 보유하고 있는 3문의 60밀리 박격포를 적절하게 운용하여 7중대의 9목표 공격에 수훈을 장식함으로써 박격포 소대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을지훈장을 탄 무운과 훈장복을 타고난 행운의 지휘관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또한 벼슬운도 타고났던 그는 예편 후 최원석(崔元碩)회장이 거느리는 동아그룹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실업계에서도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충북 제천 출신(1932년생)으로 보성(普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50년 11월 해간 3기로 입대하여 육군종합학교를 거쳐 견습사관으로 임관함과 동시에 해병학교 일반학(작전업무) 교관으로 임명되어 교관 근무를 하다가 ’51년 4월 해병제1연대가 화천지구에서 작전을 하고 있을 때 전선으로 출동, 화천지구 전투를 거쳐 그해 6월 4일부터 개시된 도솔산 지구 탈환작전에 참가했는데 그 도솔산 지구 탈환작전 기간 중 안철환 소위는 특히 7중대가 2대대의 담당 목표인 9목표를 공격할 때 3문의 60밀리 박격포를 유효 적절하게 운용하여 근접지원을 잘해 냄으로써 그와 같은 훈장을 타게 된 것이라고 하며, 9목표처럼 경사가 가파른 고지일 경우 공격부대에 위험부담이 큰 항공기나 야포에 의한 근접지원보다는 오히려 60밀리 박격포에 의한 근접지원 사격이 더 효과적이라는 말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도솔산지구 탈환작전 때 을지훈장을 탄 안철환 대령은 7중대 선임장교로서 참가했던 1026고지 전투 때는 금성충무무공 훈장을 탔고, 장단지구 전투 때는 7중대장으로서 용맹을 떨쳤다.
한편 휴전 전 다시 해병학교로 복귀했던 안철환 대령은 11기 사관후보생 중대의 중대장 근무를 한 데 이어 약 2년 간 일반학과의 교관으로 근무했는데 담당과목이 상황판단과 작전명령을 다루는 작전업무였다고 하니 그 교과목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권위가 있었던 모양.
그 후 대대장․상남 훈련대장․ 부연대장․도서경비부대장 등을 역임하는 가운데 모군의 발전과 조국의 국방을 위해 이바지했던 안철환 대령은 ‘73년 3월 대령의 계급으로 예편하여 대한통운(주)에 입사, 순풍에 돛을 달 듯 영업부장, 사장 비서실장, 총무이사 등의 요직을 거쳐 상무이사로 승진하는 가운데 대한통운(주)의 발전을 위해 이바지했고 그 후 대전 MBC 사장, 동아생명 보험(주) 사장을 거쳐 최원석 회장이 거느리는 동아그룹의 부회장을 역임할 때까지 25년 간 최 회장의 절대한 신임을 받는 가운데 동아그룹의 발전을 위해 기여했고, 동아그룹 사령탑의 일원으로서 동아그룹과 함께 애환을 같이 했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1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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