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기(‘51년) - MI의 위력을 확인한 송기조 대위
도솔산지구 탈환작전이 끝난 후 해병제1연대는 그로부터 20여 일 간(홍천으로 이동할 때까지) 점령지역에 대한 방어전을 수행하는 가운데 7월 8일부터서는(3일간) 그 북쪽의 감제(瞰制)고지인 대우산(大愚山․△1178)을 공격하는 작전을 수행했는데, 방어작전으로 전환한 지 3일째가 되던 날 밤 미 해병7연대가 점령했던 24목표의 일부 진지를 방어하고 있던 1대대 3중대 2소대장 송기조(宋基兆) 소위(평남 용강 출신. 1930년생)는 심야에 방어선이 돌파당한 절박한 상황 속에서 한 크립의 실탄이 장진된 MI소총으로 한 줄로 서서 내려오는 8명의 적병을 사살하는 특이한 무용담을 남겼다.
그날 밤 적의 기습을 받아 불시에 진지를 돌파당했던 2소대 대원들은 경황없이 진지를 이탈하여 혼란이 빚어지고 있었는데, 다만 그 때 약간 후방의 위장된 벙커 속에 전령과 함께 들어가 있던 2소대장 송기조 소위는 소대원들이 진지를 빠져나간 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칼빈M2소총과 전령이 가지고 있는 MI소총을 바꾸어 들고 적병들이 내려올 것으로 예상되는 언덕받이 길목에 매복하고 있던 중 약 30리 후방에서 비치기 시작한(때때로 그랬지만) 우군부대(미군)의 서치라이트가 갑자기 투사되는 찰나에 그 불빛 속에 포착된 한 줄로 서서 내려오는 적병들을 바로 코앞에서 요격하자 그 적병들은 푸른 불빛이 명멸하는 그 순간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마치 영화 장면의 약속된 시인처럼 나뒹굴었고, 다음 순간 크립이 약실 밖으로 튕겨져 나오자 송 소위는 지체 없이 다른 크립을 장진하여 또 다른 상황에 대비하고 있던 중 갑자기 등 뒤쪽에서 총검을 내려 겨눈 채 접근해 오고 있는 적병들을 의식했던 나머지 전령과 함께 능선 아래로 굴러 내려 위기를 모면했는데, 미명을 기해 감행된 3소대의 역습으로 적을 격퇴시킨 뒤 진지로 돌아갔던 2소대장 송기조 소위는 자신이 매복해 있던 그 길목에서 한 방의 MI총탄이 몇 명의 배와 등을 꿰뚫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치 한 꼬챙이에 꿰어져 있는 생선을 연상케 하듯 총구가 불을 뿜은 그 지점에 한 줄로 고꾸라져 있는 8구의 적 시체를 전령과 함께 목격하곤 “역시 MI소총이군!”하며 엠원소총의 위력에 경탄을 했다고 하는데 6.25전쟁사를 통해 이러한 화제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도솔산지구 탈환작전 때 3중대 2소대(좌)의 우일선 소대장으로서 2소대와 함께 1목표를 공격했던 왕년의 3중대 1소대장 박용구(朴容九)씨(해간3기)의 말에 따르면 1소대가 1목표의 8부 능선에서 고전을 치르고 있을 때 그 위기를 구해 준 사람이 2소대장 송기조 소위였다고 말하면서 그는 전쟁의 재능을 타고난 사람처럼 공격도 잘하고 방어도 잘 하는 그런 지휘관으로 기억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924고지 탈환작전에도 참가했던 송기조 대위는 장단지구 전투 때는 1대대 중화기중대장(중위)으로서 중공군의 1차 추가공세 때(52.10.2) 빼앗긴 67고지에 대한 6차에 걸친 역습전 중 2․3중대의 잔여 병력과 화기중대 요원으로 급편된 3차 역습대를 지휘했으며, 56년 대위의 계급으로 예편했던 그는 금년 7월 지병으로 타계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1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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