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독립/ 원상회복 추진 역사와 관련하여(15)
○ 예비역에 대한 진단
해병대는 “한번 해병대는 영원한 해병대”라는 표어를 자랑하며, “자유와 정의를 위하여”라는 모토아래 애국애민의 정신으로 국가안보의 선봉에 서서 대국민 대정부 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고, 지자체별로 대주민 봉사활동을 오랜 세월동안 해왔다. 그리고 단결을 과시 해왔었다.
1980년대 초 해병대전우회 중앙회가 조직된 이래 30여년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참으로 많이 변해왔다. 초기의 전우회는 콘테이너 박스에 전우회 사무실을 만들어 놓고 여러 가지 사회봉사활동을 함으로서 신선한 감동을 주면서 국민으로부터 각광을 받았었다. 그런 여파를 타고 조직도 점차 확대되었다.
그러나 겉으로 비쳐지는 모습과는 달리 점차 변질되어갔다.
1, 해병대전우회 조직이 이원화가 되었고, 80만 해병대예비역의 구심점이 사라졌고 단결력은 와해되었다고 평가된다.
중앙회는 “임의단체”인데 반해, 16개연합회(그 예하 시군구 지회포함)는 광역시 및 도의 사단법인체로서 단결의 연결고리와 통제력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수틀리면 면전에서 욕지거리가 나오는 상황이 만연하고 따라서 총재나 중앙회 임원들에 대한 존경심이 완전히 소멸되었고, 상급자의 포용력도 기대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평가하면 회생의 약도 없을뿐더러 약효도 기대할 수 없다고 평가된다.
2, 해병대총수나 중앙회 임원들이라면 예비역의 발전의 정책, 활동방향, 행동양식을 제시하고 앞장서고 이끌어주는 본보기 노릇을 제대로 하였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긍정적으로 자신있게 답하기는 어렵다고 사료된다.
3, 사령관출신들이 총재 후보자로 등록하면서 해병대전우회를 양분하였고 갈등과 반목을 계속해왔다.
80년대 초부터 30여년 동안에 3회 이상을 그리했고 지금도 그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다.
4, 총재나 일부 중앙회 임원중에는 정치입문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고, 실제 정치계에 나간 사례가 분명 히 있으며, 후배들 또한 그러한 욕심 탓에 해병대전우회중앙회 임원직을 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전우회 창립목적과 근본적으로 다른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5, 중앙회에서는 그렇게 어렵게 획득하여 쓰는 예산을 정직하게 긴요하게 사용하지 못하였다. 는 평들이다.
그러니 말은 안 해도 존경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고인이 되었기에 확보된 항의 글이 있지만 공개 하 지는 않겠다).
또한 연합회 이하는 김영삼 정부에서 지방자치제가 시작된 후 중앙회로부터 지회에 이르기까지 지자체 지원금 좀 타보겠다고 해병대의 정체성과는 거리가 먼 「표 거수기」 쪽으로 변질되었다. 그리고 이 지원금을 사용이 정당하지 못해 회원간에 불신이 연합회나 지회에 만연되어 있다.
6, 총재 및 연합회장, 지회장을 막론하고 선출이 바람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치판보다 더 보기 흉한 꼼수를 다 동원한 곳도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조직은 분열되었고 선거 후 갈등의 골이 너무 깊어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제대별로 너무 오래 근무하여 평생직장처럼 생활하는 예비역도 있어 변화나 개혁을 방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7, 전우회 중앙회 총재 및 임원들의 사고는 전근대적인 사고에 빠져있는 것 같다.
즉, 해군이 해병대를 보는 시각보다 훨씬 더 오만한 자세로 자기들 외의 해병대 이름의 다른 조직들을 부인하고 거부하고 무시하려한다. 이병문 총재팀이 제1차 해병대원상회복추진위원회를, 김명환 총재팀이 제2차 원상회복추진위원회나 다른 조직들을, 김인식 총재팀이 인터넷전우회나 다른 조직은 물론 자기를 반대하는 예하 연합회까지도 부인하고 심지어 조직을 와해시키려고 타군에서도 볼 수 없는 별의별 꼼수를 다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 해병대사령관 출신의 총재님들이 폭넓은 이해나 포용력이 없음은 물론 소통의 리더쉽을 발휘하지 못 하고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1950년대 통솔의식으로 일색하고 있는 것 같다.
국가도 지자체가 된 후에는 정부가 예하를 마음대로 못 하는 시대로 변한 것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중앙정부가 많은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회단체는 어떠한가? 각종 단체별로 거의 다가 정부부처나 지자체로부터 예산지원을 받고 있으나 통제는 미미하다. 반면 자기들이 예산을 확보하여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지원능력은 제로인 중앙회의 권한이나 권위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는 말이다.
특히 2011년 2월 24일 총재선거가 끝난 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선거후 반대세력을 아울러서 함께 하는 조직으로 보듬어 안지 못하고 적대시하고 급기야는 잘라내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상식적으로 이름도 등록되지 못한 자가 등록된 자에게 콩 놔라, 팥 놔라 하는 것을 옳다고 주장하는 것 처럼 착각하여 행동하면서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도 구분 못하는 슬픈 현실이 해병대전우회의 현주소다.
그러다 급기야는 중앙회와 5-6개의 연합회와는 갈등의 골이 깊어 수렁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연합회장 이/취임식이나 그 외 행사장에서 욕지거리를 하고 글로 쓰기에는 참으로 추하고 부끄럽기 그지없는 사건들이 벌어졌고 또 징계다, 퇴출이다. 하는 등 해괴하고 창피한 일이 지속되고 있다.
현 해병대전우회에는 3성장군도 없고 사병도 없다. 해병대의 위계질서나 단결이라는 모습은 어디에서 찾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해병대전우회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고 말았다고 여겨진다. 본인의 진단으로는 해병대전우회는 하나로 가기는 영 글렀다. 새로 짜야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9, 어떤 중요사안에 대한 조치에 있어 해병대다운 조치가 미흡하다고 보며 기회 놓치기 일쑤다.
해병대예비역들은 기가 다 나간듯하다. 그 예들을 들어 설명하면, 옛 말에 대우는 스스로 받는다고 한다. 즉 본인의 태도에 따라서 존경과 대우도 받을 수 있거나 멸시 당하고 무시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전우회에는 존경과 신뢰가 잘 유지되어 있는 실정은 못 된다. 뿐만 아니라 80만 해병대 예비역을 결집하기에는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
또한 연평도포격사건과 해병대독립법안 국회통과를 보면서 처리하는 모습과 방식이 해병대가 지향해왔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고 사료된다. 연평도포격 사건시 사건 발생 즉시 전우회 회원들이 연평도에 입도했어야 한다고 본다. 삼풍사건 때 즉시 현장에 투입 되었듯이 말이다. 함께 못 들어가면 당일에는 인천지역 전우회, 그 다음날에는 전국전우회가 전우회 차량 1대씩 다 들어갔다면, 국가안보의 선봉군임을 자랑하는 해병대전우회의 활동이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이고 북한 김정일과 인민군에도 대한민국 해병대에 대해서 섬찟함을 느끼도록 하였을 것이다.
이는 시기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좋은 예이다. 연평도사건 1주 후 광화문광장에서의 김정일 규탄대회가 과연 국민에게 어떤 감동을 주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다음으로 해병대독립법안 국회통과시에는 해병대사령관 연명 및 전우회 중앙회총재와 연합회장들의 연명으로 주요일간지에 라도 대국민감사의 광고 하나쯤은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반대한 분들의 입장은 아니라고 하시겠지만 그래도 연평도포격사건 후 해병대전투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국민여론에 힘입어 단기간 내에 법안이 수정되는 성과를 거두었는데 해병대를 대표했던 분들이 국민 앞에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전역 후에도 해병대전우회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전국적으로 교통봉사, 야간방범봉사 등 온갖 봉사를 해왔고, 국가안보의 선봉적 역할을 솔선수범하여 행해오고 있는 타군에서 찾아볼 수 없는 국민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아온 별난 군대였다면 더욱 그렇게 함이 해병대다운 행동이었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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