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군 글/해사24기 정도영

해병대독립/ 원상회복 추진 역사와 관련하여(14)

머린코341(mc341) 2015. 11. 5. 01:04

해병대독립/ 원상회복 추진 역사와 관련하여(14)

 


■ 해병대 현실적인 문제
 
○ 해병대의 주임무 상륙작전이 해군의 주임무에 계속 남았다.


핵심은 1973, 10, 10 이전에는 주 임무 면에서 「해군은 해상작전을 주 임무로 하고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주 임무로 한다.」에서 보듯 해군과 해병대의 임무를 분명하게 구분하여 놓아 해군과 해병대가 각각의 예하부대를 관장 주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으나, 2011, 6, 23일 이후에는 「해군은 해상작전과 상륙작전을 주임무로하고,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주 임무로 한다.」라고 어정쩡하게 개정된 것은 해군이 계속적으로 해병대를 관장할 수 있는 여건을 유지해주었다. 참으로 해괴한 수사로 상식도 교리도 묵살함은 물론, 사기를 먹고 사는 군 특성도 까라 뭉개어 국가안보에 저해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여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사료된다.
 
☞ 해군은 뭉쳤는데, 해병대는 흩어져 단결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면, 해군들은 국방위를 항의 방문하여야 한다. 같이 동행하겠다. 하고 공개적으로 활동을 하였는데, 해병대는 함께 뭉쳐 활동하려는 노력도 모습도 없었다. 결과만 좋았다면 이런 지적을 할 필요 없겠지만, 해군의 주 임무는 해상작전과 상륙작전이다. 라고 모두가 뭉쳐서 상륙작전을 붙여 놓았다. 1973년 이전의 상륙작전교리에 명시되었던 상륙작전 정의는 무시하고 통폐합 후 새로 정리한 정의를 들어 상륙작전이 해군의 주 임무라고 우겨댄 것이다.
 
그러고는 상륙전헬기도 해군의 전력증강으로 이루어야한다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지 않는가? 바로 이런 이익을 위해서 해병대를 해군 소속으로 계속 유지하려고 사활을 걸고 덤비는 이유임을 바로 알아야한다. 이익이 있는 이런 부분은 사활을 걸고 챙기려하면서도 지난 7-8월 해병대사건이 발생했을 때 해병대를 대변하고 보호하려는 어떤 노력들이 있었는지 소문이나 지면이나 매스컴 등에서 들어본 바가 없다.
 
한마디로 압축하여 말하면 "해병대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였다." 는 것으로 해병대특유의 단결력을 활용하지도 발휘하지도 못한 것이고, 소군의 특성으로 계속 존재하고 있음을 나타내지 못한 결과이다.
 
더구나 해병대전우회의 조직을 제대로 능력발휘를 시키지 못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15년전에는 국내외에서 그토록 온 세계를 향해 외쳤던 일을 왜 해군만큼도 발휘하지 못했나.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 죽기 살기로 정미경의원의 입법발의 법안을 옹호했었다면 김관진장관의 조정안이 결정될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물론 이만큼 된 것도 하늘이 해병대가 달라져야 하는 부분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회를 더 주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 예비역은 구심점이 사라졌고, 현역은 기강이 무너졌다.
 
예비역의 구심점은 해병대전우회중앙회 총재가 80만 예비역의 대표성을 지녔고, 구심점이었으며, 해병대출신들은 물론 국민들도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서해구락부로 출발했던 예비역 모임을 해병대전우회 로 전환하고 총재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수없는 분열과 갈등을 만들어 왔다.
 
더욱 중요한 요소는 총재하신 분들이 전우회를 이끌면서 보여준 모습들은 희생적이고 양심적이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사료된다. 일부에서는 전역 후 개인의 영욕을 위한 자리로 활용한 분들도 있었다고 보아지기 때문에 화합도 단결도 안 된 것이다. 즉 여러 측면에서 해병대다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말이다. 현재도 그 모습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또한 현역의 모습은 어떠한가? 현역 역시 기강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평가된다. 우선 상층에서 일어난 사건은 사령관을 음해하였다 하여 2성 장군 2명이 구속되었다. 더구나 해병대사건을 해병대에서 해결치 못하고 타군이 체포해가도록 나두었다는 것은 기강이 무너진 대표적이고 핵심적인 사건이다. 이러한 모습은 바로 이어서 말단 병사들의 강화도 총기난사 사건으로 이어졌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지난 38년 해군해병으로 살아오는 동안 현역이나 예비역이나 더 이상 추락할 곳 없는 가장 밑바닥까지 추락하였다고 보아진다. 앞에서 언급한 해병대는 어떠한 군대인가? 에서 제시한 것 같은 해병대 정체성이나 특성과 자긍심에 걸맞게 활동했는가? 대해 말하라면 나는 그렇지 못했다라고 하겠다. 특별한 각성해야 한다면 섭섭하고 불쾌하다고 반론을 제기 할 수 있겠지?



■ 해병대 미래비전(현역과 예비역의 발전방향)
 
○ 현역에 대한 진단


해병대는 적지만 강한군대, 무적해병대, 귀신 잡는 해병대, 신화를 창조한 해병대, 국가안보의 최선봉군, 엄정한 군기의 세계 최고의 단결력을 자부하며 자긍심 강한군대임을 자부해왔다.
 
그러나 최근의 해병대현역들의 모습은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이를 대변할 수 있는 내용들을 언론보도나 내가 직접 겪어본 예화들을 들어 진단하고 평가해보고자 한다. 물론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알 수 있다는 옛말이 있음을 상기하면서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1. 해병대 근무자들의 도덕성에서도 군기 면에서도 최하위로서 신뢰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를 반증하는 사건으로 지난 2011, 5, 26 해병대소장 5명 중 2명이 상관(사령관)을 음해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다. 내막이야 어찌되었던 도덕성에서 분명하고 명쾌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2011, 7, 4 강화도 총기난사로 4명 사망, 2명 부상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해병대는 해병대원이 그토록 온 힘을 다해 지켜왔던 빨간 명찰을 박탈하는 제도가 생겨났다. 전통이 사라졌다고 판단되는 일화들로 사석에서는 장교 사병 할 것 없이 불러왔던 부라보 해병대(곤조가)의 군가 제목도 모르고, 해병대 창설일인 4, 15을 교육안한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이는 2011, 4-11중에 동원예비군교육을 가서 실제의 질문을 했을 때 답을 하는 자가 없었고 부라보 해병(해병대곤조가의 곡에 좋은 가사 붙임. 들어본 바가 없다고 대답함)하지 못하더라.
 
다음은 안타깝고 부끄러운 내용으로 단결, 단결력 운운하지만 해병대장교사회에 끼리끼리 즉 파벌이 심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홍재성파 유낙준파 하고 두 파로 나뉘어 접하다보니 두 소장이 구속된 것이다. 10여년 전에는 전임 사령관 감시하고 뒷조사를 하며 영창에 집어넣지를 않나 등등 윗분들의 기강이 이러니 부하들이 무엇을 배웠겠는가?



2. 군 기강이 너무 많이 무너졌다고 평가된다. 무너진 군기상태를 내가 실제 겪은 사건을 중심으로 또 다른 설명을 해보면, 해병대는 군기가 강하고 해병대 중에서는 헌병대가 표본이라고 생각해왔다. 2011, 7, 4. 18:00-18:50에 동원예비군에 대한 국가안보강의 있었다. 그러나 당일 인원이 많고 더워서 30분 늦춰 줄 것을 요구해서 시간을 조정하였고, 출입에 불편함이 없도록 조치하겠다는 담당 장교의 이야기를 듣고, 30분 늦추어 사령부에 도착했는데 우리가 현역생활을 할 때와는 달리 위병소에 아무 연락도 없었다.
 
위병소 근무자의 답인즉 퇴근시간이 지나 오장이 퇴근해서 모른다는 것이다. 그럼 육군에서 본 모습으로 을지연습이 한창인 9, 26. 20:00-20:50 에는 육군 72사 201연대에서 안보교육을 하러 갔다. 부대는 전방으로 전개하여 훈련 중이었는데도 해병대예비역장군이 강의하러 온다고 통보되어 훈련 중인 연대장 기다리고 작전참모가 직접영접하고 안내하였다.
 
11, 7. 18:00-18:50에는 해병대 사령부에 두 번째 교육을 하러갔다. 이 과정에서 다른 때와는 다르게 오후가 되어도 연락이 없어서 교육을 통보받았는지 어디서 교육하는지 등등 궁금하여 헌병대로 3번을 전화해도 통화를 할 수 없었다. 지난번 군 기강이 해이했던 모습도 생각나고 화도 나서 미리 도착하여 16:40 경에 도착하여 예고 없이 부사령관을 찾았다. 이처럼 땅에 떨어진 군기에 대해 지적을 하여야 할 상황이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부사령관은 내가 해병대제6여단장시절 대대장을 한 장군이었다.
 
나는 짧은 시간에 보고체제 확립이 안 된 문제, 하락한 군기문제, 해병대색깔의 퇴색된 문제, 병들 1기 차이에도 엄격했던 군기를 자랑했듯이 옛날에는 예비역장군들이 부대를 공식방문하면 영접행사를 했었던 장군사회에도 선배에 대한 깍뜻했던 전통과 모습(전우회회장들이 모군방문해도 영접 행사 함)이 완전히 사라진 해병대전통을 설명하였다. 장군 간에 기수가 없어졌는데 병들 간에 기수 발의 군기가 서 있겠는가? 보고 배울 대상이 없는데 말이다.
 
이 결과 기수가 없어지고, 빨간 명찰을 때어내고, 군인임을 확인하고 유지시켜주는 일일순검이나 주말점검 등 해병대 제도나 고유의 군사용어사용도 통제받아야 하는 현실에 놓인 것이다. 해병대는 제일 군기가 쌘 강한군대임을 자랑으로 삼았다. 이는 1개 기수 차이라도 깍듯이 예우하는 강한 군기를 자랑으로 한 군대 말이다.
 
또한 「누구나 해병대가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해병대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 강한 자부심을 뽐내왔다. 따라서 타군과 다른 빨강명찰을 닮에 무한한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군대, “귀신 잡는 해병대” “신화를 창조한 해병대” “무적해병대” 등 싸워 이긴 군대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온 군대이다.
 
해병대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해병대정신, 해병대 혼을 바탕으로 「한번 해병대면 영원한 해병대」임을 자긍심으로 삼았었고 나아가 대한민국 단결심의 표본임을 자부해왔다.



3. 해군해병으로 살아온 38년은 현역이나 예비역 할 것 없이 구심점이 살아졌고, 하늘을 찌를 것 같던 기가 다 빠졌다. 빠졌다고 함보다 아예 없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해병대 특유의 전통이 너무나 많이 변질되거나 사라졌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해병대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기필코 달성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약해졌다.